배달에 관하여
“밖에 택배 온 거 있나 봐봐”
엄마의 다그침에 나가보니 '히익' 소리가 나올 정도로 택배가 쌓여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총 여섯 개였다.
마침 옆집에서 이사 중이라 복도에는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지나다녔고 잠옷 차림을 들키고 싶지 않아 현관문 사이로 손만 뻗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개의 택배 상자를 하나씩 가져왔다.
'후우' 잠시 한숨을 돌리고 (누워만 있었더니 고새 무거운 걸 들었다고 숨이 찼다)
"엄마아! 이게 다 뭐야? 왜 이렇게 많이 시켰어?" 약간은 언성이 높아진 채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도 약간의 언성을 높이며 답했다. "나 혼자 먹으려고 샀니? 다 같이 먹으라고 산 거지."
택배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밤, 고구마, 깻잎무침, 배, 김, 앞으로 3년은 쓸 치약 더미가 들어있었다. 엄마의 말마따나 엄마, 아빠, 나 다 같이 쓰는 주로 먹는 것들이었다.
엄마는 괜히 자꾸 해명을 한다. 다 필요해서 샀네, 추워서 못 나가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나는 택배를 안 좋아한다.
택배 그리고 배달음식을 되도록이면 자제하고자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일회용품의 발생. 어쨌든 택배 배송이라는 것은 마트에 가서 사는 것보다 포장재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택배 박스라던가 신선식품을 시키면 아이스팩, 파손되기 쉬운 물건은 뽁뽁이 등 직접 가서 사면 불필요한, 상품의 보관과 배송 과정에서 쓰이는 부자재들이 발생한다. 한때 과대포장으로 비판을 받은 배송업체들이 친환경 포장과 재활용을 강조하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는데 애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싶다.
일회용기에 포장하는 배달음식은 말할 것도 없다. 소스 하나하나 플라스틱 일회용기에 따로 담아주는 그 정성, 그 위에 '리뷰는 큰 힘이 됩니다' 스티커는 빠지지 않는다. 소비자로서 만족스러우면서도, 별 5점 리뷰를 작성하면서도, 동시에 지구별에 사는 지구인으로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깨끗이 용기를 씻고 재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할 때마다 플라스틱 빨대를 먹은 바다거북, 위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된 새,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물고기의 모습이 연상된다.
둘째, 유통 및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연. 학교 앞에 작은 골목에 있는 방을 구해서 사는데 그 골목에 유독 오토바이가 많이 다닌다. 등교하는 아침이나, 하교하는 저녁이나, 외출했다가 귀가하는 밤이나 수시로 배달 오토바이를 마주친다. 감각이 예민한 나는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마다 내는 소음과 매연에 고통받는다. 오토바이나 차 근처에 가면 저절로 숨을 참고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한다. 학교를 갈 때마다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것 마냥 숨 참기, 뛰어가기를 시전한다.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보면 그랬는데 이제는 오토바이와 차가 보너스 장애물로 추가되었다.
셋째, 배달산업에 대한 의문. 이건 누구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의 의견에 반대한다면 꼭 댓글을 남겨주도록. 다양한 의견은 언제나 환영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배달이라는 일이 *부가가치를 발생하는 일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재료들을 가지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제조업이나 과학기술, 정보통신 등 지식기반 산업과 비교하면 뚜렷하게 알 수 있다. (**대체로 한국의 서비스업은 부가가치가 낮다)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니 엄마는 배달원 일자리가 창출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배달기사는 좋은 일자리라고 할 수 있는가? 현재 일하고 있는 배달원들의 고용안정성과 안전하고 유연한 근무환경은 잘 조성되어 있는가? 나는 이것도 잘 모르겠다. 지금 존재하는 종사자들의 직업 환경을 보장하지 못하면서 일자리를 계속해서 확대해나가는 것은 결국에 사회 문제를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부가가치: 투입 외에 추가로 생성된 가치
**참고자료: 서비스업의 고부가가치가 필요한 이유,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DBTAQ9720
그래 물론 배달시켜 먹고 택배 배송시키면 편리하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집 앞까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고 요즘에는 배달도 총알같이 빠르다. 근데 편리함의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교환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조금은 불편하게 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여섯 개의 택배 상자를 보며 생각해봤다.
+ 커버 이미지를 찾기 위해 검색해본 결과, 외국에서는 자전거로 음식을 배달하는 사진이 많았다. 생각을 해보니 외국 영화나 시리즈에서 자전거로 배달하는 장면은 봤어도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장면은 본 기억이 없다. 여행 가서도 오토바이는 폭주족 아닌 이상 보기 드물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챗GPT에게 물어봤다. (요즘은 딥시크한테 물어봐야 하나)
그렇다고 한다. 유독 한국만 그런 것인지 다른 요인들은 모르겠고 3번 자전거 도로가 부족하다는 말은 백 번 공감한다. (by 한때 따릉이 애용자)
커버 이미지 출처: Unsplash의 Egor Myzn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