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여행기5
(*커버 이미지는 오울루의 트레이드 마크 경찰관 동상이다, 놀라지 마시길 (c) 2025. 장윤서 All rights reserved.)
오울루에서 겪었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북유럽 문화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사우나의 원조 핀란드에서 사우나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핀란드 사람들의 말로는 일주일에 한 번은 사우나를 한다고 한다. 핀란드 사우나만의 특징은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바로 입수!하는 것이다.
오울루의 사우나는 신기하게도 물 위에 떠있어 사우나에 들어가려면 간이 뗏목을 타야 했다. 이전에 스웨덴에서 했던 사우나 경험에서 언급했듯 핀란드 사우나는 나무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장작으로 불을 때는 방식이다. 방은 굉장히 어두웠는데 이층으로 되어 있어 문을 열 때 내부 구조를 잘 봐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어두워 자리를 찾아 앉기가 어려웠다. 가운데에는 불을 피우는 곳이 있고 그 위에 뜨거운 돌을 올려놓아 돌에 물을 부으면 스팀이 확 올라와 얼굴과 귀가 불에 탈 것처럼 무척이나 뜨거워졌다. 한국에서도 사우나를 가봤지만 한국보다 훨씬 더 뜨거운 수준이었다.
처음에 들어가면 ‘뜨겁다’인데 돌에 물을 부으면 뜨거운 열기가 위로 올라와 얼굴과 귀, 목이 타는 느낌이 난다. 이렇게 15분을 있다가 답답해진다 싶을 때면 바로 앞에 있는 강에 뛰어들었다. 수영을 즐기다가 다시 사우나에 들어가는 마치 온탕과 냉탕을 반복하는 그런 시스템이다. ‘15분 사우나, 5분 수영’, 3회 반복, 이것이 핀란드 사람들의 사우나 국룰인 것 같았다.
사우나 안은 보통 조용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되게 신기하게 보는 것만은 확실했다. 도시 자체에 아시아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오울루 사우나에서는 다들 정말 내가 수영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우나를 하면서 최근 북한에 관한 책을 읽었다는 핀란드 아저씨와 북한에 관한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보면 또 핀란드 사람들이라고 해서 꼭꼭 닫혀 있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오울루의 플리마켓도 좋았다.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도 세컨핸드샵이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역시 핀란드에서도 중고장터가 사람들의 삶에 녹아있었다. 적십자에서 하는 플리마켓도 있고 특히 핀란드의 풍부한 겨울옷이 독일의 적십자 센터를 거쳐 우크라이나 등 필요로 한 곳에 분배된다고 한다.
나는 무하와 밀레나가 추천해준 오울루 세컨핸드마켓에 방문하였다. 새학기가 되면 오울루 대학교 학생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몰려와 시끌벅적해진다는 오울루에서 가장 큰 중고장터였다. 듣던 대로 옷, 그릇, 그림, 책과 DVD 등 생필품을 비롯한 아주 다양한 품목의 물건들이 있었다. 가격도 무척이나 저렴했다.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방문했던 힙한 스타일의 세컨핸드샵은 중고지만 중고 같지 않은 가격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원피스와 반팔 탑을 각각 4유로에 구매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줄 메이드 인 핀란드 장갑도 사고 (이건 새 상품이었다), 2유로에 크레용까지 포함된 핀란드를 대표하는 캐릭터, 무민 컬러링북도 샀다.
이것저것 구경해보는 재미가 있었고 피팅룸도 있어 중고 상품이지만 입어볼 수 있었다. 내가 안 쓰는 물건을 타인이 쓸 수 있는, 내가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자원 절약의 차원에서 굉장히 좋은 문화였다.
그 외에 특이했던 점들을 꼽자면 북유럽에는 인상적이게도 어느 도시를 가나 식물원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료이고 열대 식물부터 건조 기후 식물까지 식물원 관리를 굉장히 잘 해놓았다. 또 8월 초였지만 옷 4겹을 입고 다녔다는 것도 신기해 기록에 남겨놓았다. 길거리에서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보면 경악할 만한 피자 자판기를 보았다. 메뉴도 엄청 많았는데 3분 만에 주문한 피자가 나오는 즉석 피자 자판기였다. 웃긴 게 8.9유로를 내면 차가운 피자를 주고 9.4유로를 내면 따뜻하게 데워주는 철저한 자본주의 피자였다.
사실 오울루에 들리는 것을 고민했을 정도로 큰 기대가 없었던 도시였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즐기다 간 도시였다.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쫓기듯 관광하는 여행이 아니라 자연 가까이 느긋하게 편한 마음으로 도시의 이모저모를 둘러보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적합한 곳이었다. 이틀이면 충분히 도시를 재밌게 즐기다 갈 수 있는 오울루는 이번 여행에서 나의 힐링 데스티네이션이었다.
특이하게 오울루는 관광객이 많이 없는데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오울루에 있으면서 관광객이라고 할만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도 활성화되어 있고 심지어 거리에 팝업 관광안내소를 설치해 직원이 서있는 것도 보았다. 마켓홀에 가도 영어 메뉴판이 잘 나와있고 북유럽 사람들이 그렇듯 다들 영어를 잘했다.
오울루는 사람들도 그렇고 도시가 전체적으로 힙하면서도 동시에 순박한 느낌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메탈 좋아하는 것 같고 다들 타투 하나씩은 있을 것 같고 뭐랄까 와일드한 매력이 있는데 막상 속으로 들어가보면 물가도 저렴하고 사람들도 친절한,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 다음 편은 헬싱키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