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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트

by 지슈 Ma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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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여름 해변으로 유명한 프랑스 니스에서 차갑고 쫀득한 젤라또를 손에 들고 야금야금 먹을 때면 엄청난 행복을 쥔 듯했다. 하루는 형형색색의 쇼케이스 앞에서 무슨 맛으로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로즈나 라벤더 같은 꽃 이름의 젤라또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향오일을 넣어 만든 듯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입 베어 물었을 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꽃 향이 입안과 코끝까지 퍼져 두 눈이 저절로 찡긋해졌다. 떠나는 날 하얀 차양이 넓게 펴진 가게에서 마지막으로 먹은 젤라또는 바로 비올레트였는데, 열매인지 아니면 향신료인지 감이 안 잡혀 나중에 찾아보니 프랑스어로 바이올렛 꽃이었다.


 ‘비올레트’라는 단어를 수집만 하려다 글을 쓰고 싶어 핸드폰의 새 메모를 켰다. 눈을 감고 선명한 진보라색 둥그런 꽃을 연상하니 순간 멍 자국이 생각났다. 짧은 옷을 주로 입는 여름에 꼭 한두 개씩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속에도 아직 비올레트가 있었다. 그래, 내 마음에도 멍을 준 사람이 있었지. 이젠 서서히 멀어져 버린 관계가 떠올랐다.


 몇 년 간 '바쁘다'는 뉘앙스를 겹겹이 들었다. 현재 중요 우선순위에 나의 존재는 한참 밀려 보이지도 않는 현실을 체감했을 때, 두 손에 있던 물고기를 놓아주듯 보내주었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눈꺼풀을 지그시 감은 채로 받아들였다. 한 번만 더 참아야 했나, 기껏 이별을 택하고서 되뇌었다.


 과거의 시간이 축적될수록 겁은 많아지고 이타성과 새로운 관계에 대한 기대는 점점 메마른다. 인생에서 몇 번의 절망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그 뒤에 오는 사색의 시간은 자아를 무르익도록 해준다. 상대에게 행복을 갈구하던 미성숙함에서 벗어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행동을 훨씬 이해하기 쉽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 세계가 정답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일과 같다.


 인간은 내면에 절망, 고통, 무력감이 있고 이런 불쾌한 감정을 잊기 위해 관계 맺기에 집중하거나 자극적인 일로 시선을 분산시킨다고 한다. 처음엔 한없이 공감했지만 며칠 동안 나의 내면을 파고들어 보니 내 식대로 조금 바꾸고 싶어졌다. 사람은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행복을 갈구하여 이타성을 회복한다고. 과거보다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내 얼굴엔 눈물 자국보다 웃음 자국이 훨씬 많았으니, 어딘가 있을 인연의 끈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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