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15년전, 나는 한국에서 기업PR 관련 일을 했었다. 그때만해도 일주일에 평균 3번은 점심시간마다 신문사 기자나 고객사하고 약속이 있었다. 오죽하면, 조용히 점심시간을 온전하게 업무를 쉬어 가는 시간으로 활용하는게 소원이던 시기였다. 기자들과 점심 식사를 할때는 주로 신문사 근처에서 만났다. 광화문이나 소공동 근처 국밥집이나 김치찌게집에서 진행되는 점심 미팅이 꽤 잦았다.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해야할 경우에는 한정식집이나 일식집으로 가는게 바이블처럼 여겨졌다.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은 주로 강남쪽에서 많았고, 이태리나 프렌치 식당을 주로 찾았다.
매일이 비지니스 런치의 연속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어느 한군데 '비지니스 런치' 메뉴를 운영하는 곳은 없었다. 주로 '점심특선'이나 오늘의 '추천요리' 정도의 메뉴중에서 적당한 음식을 고르거나, 미리 그동네 식당에 대해서 공부해서(그때만해도 지금처럼 맛집 정보가 풍부하지는 않았다) 빨리 나오는 대표 메뉴 위주로 주문하곤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홍보하고싶은 제품이나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요새 그쪽 동네 동향 파악하기 바쁜게 비지니스 런치였다.
두바이에 오니, 비지니스 런치의 개념이 내가 이제까지 한국에서 알던 그것과 사뭇 달랐다. 파인 다이닝을 자처하는 식당에서 평일 점심시간에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 3개 코스로 가성비 좋은 가격으로 제공하는게 비지니스 런치로 불린다. 그리고 이 비지니스 런치는 비즈니스맨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가성비 좋은 수준급 식사를 경험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활용하는 평일 점심 코스 메뉴라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겠다.
두바이에서 몇번 고급 식당의 비지니스 런치를 가본적이 있다. 평소에 가보고 싶던 경치 좋은 이태리 식당에서 가격 부담없이 코스요리를 즐기며 코스 중간에 비지니스 관련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음식이 나오는 적당한 타이밍은 상대방과의 어색함을 최소화하고, 비지니스에 대해서 적절한 속도로 논의할 수 있는 흐름을 제공한다. 빠르게 김치찌게를 흡입하며 언제 내 얘기를 하지 타이밍 맞추느라고 상대방 먹는 속도에 각을 세우던 15년전 비지니스 런치와는 참 다른 경험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행하던 비지니스 런치는 기자(님)과 클라이언트(님)이 도대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내가 하는 이 스토리를 Buying하는지, 그들의 요새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제아무리 맛집이라는 곳을 가도 음식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 그저 음식은 목적을 위해 수반되는 도구로만 활용되는것이었다. 그러나, 두바이에서의 비지니스 런치는 비지니스 목적이 있지만 음식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고 즐길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 '비즈니스' & '런치' 두가지 모두 목적에 부합한다.
한국에서 나에게 비지니스 런치가 주던 이미지는 '점심시간까지 일을해야하는 내팔자, 고단하다'였다면, 두바이에서의 비즈니스 런치는 '가성비 좋게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상대방과 친목을 쌓고 비지니스를 협의할수 있는 일석이조, 꿩먹고 알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아이템이다.
한국에도 이런 비지니스 런치 개념이 활성화되고, 나같은 직장인들이 낯선 상대와 음식을 먹는 행위가 고되지 않고 그와 함께 하는 그 시간과 공간, 음식을 즐길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직장생활이 조금은 덜 각박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