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환경 조사서
학창 시절 가정환경 조사라는 것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 집의 경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집은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집에 방은 몇 개인지, 화장실은 집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TV는 있는지, 라디오가 있는지, 등등. 지금이라면 개인정보 내지는 인권침해 요인도 있어 보이는 것들을 공공연히 조사하고 이를 가정환경 조사서라고 보관했다.
자동차가 있다고 손드는 친구는 본 적이 없으므로 내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피아노가 있다고 손드는 친구였다. 그 당시에도 집에 피아노가 있는 집이 한 반에 한 두 명은 되었다. 하여 내가 결혼하고 전셋집을 옮겨 다니면서도 제일 먼저 장만한 것이 피아노였다. 아이들 사교육도 피아노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바이엘과 체르니를 끝으로 피아노는 장식품이 되었고 이사할 때마다 이사 비용만 늘리는 애물단지로 전락하여 결국 싸게 팔아 버렸다.
1981년도에 내가 중학교에 부임하여 가정환경 조사 용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집에 가서 작성해 오라 하였다. 서울 변두리 학교인지라 그때도 승용차가 있다는 집은 전교에 두 세집 밖에 안 됐고 대부분 전세나 월세집에 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버지 직업란에 운수업이라 쓰여 있으면 택시나 트럭 기사를 의미했다. 건설업이라 쓰여 있으면 건설 공사 인부라는 뜻이고, 은행업은 은행 직원, 제조업은 공장 노동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버지 직업란에 ‘중노동’이라고 써온 학생이 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70명 가까이 교실을 꽉 채운 학생들의 이름을 4월이 지나도 모두 외우기 힘들다. 복도에서 싸우다 잡힌 학생에게 “너 몇 반이야?” 물었다가 “선생님 반인데요.”라는 답을 들으면 속으로 당황하기도 하고 미안하기 하여 대충 타일러서 보내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학생의 이름은 금방 각인이 되고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 공부는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주장이 분명하고 당당해서 반장에 당선되어 우리 반 반장이 되었다.
당시에 소풍은 교사들의 잔칫날이다. 각 반의 반장을 위시한 임원들은 담임을 위한 음식을 준비한다. 소풍날 점심시간에는 각 반에서 해온 음식으로 넘치게 되는데 우리 반에서 반장이 가져온 것은 김밥 두 줄이다. 나는 다른 반 담임들에게 미안하고 눈치가 보여 많은 음식들 사이에 슬그머니 갖다 놓았다. 선생님 식사로 김밥을 주면서 김밥 꽁뎅이까지 가져오는 것은 우리 반 김밥이 처음이다.
그 후 20년이 흘러 과학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다. 과학고는 학생들이 우수한 만큼 장학금도 많다. 성적이 우수해서 받는 장학금은 금액에 관계없이 자랑의 대상이다. 그러나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도 있고, 그것은 오롯이 담임의 재량이다. 가정환경 조사서를 근거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옛날처럼 자세하게 조사하는 것은 금지되었으므로 편모로 판단되는 학생을 선발하여 기뻐할 것을 기대하며 본인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나 학생의 반응이 기대와는 전혀 다르다. 다음날 어머니가 학교에 와서 나에게 거세게 항의한다. 왜 내 딸이 이런 장학금을 받느냐는 거다. 어제 집에 와서 울고 불고 날리였단다.
나는 한동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모녀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 선의로 한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으므로 사과를 해야 할지 설명을 해야 할지 당황했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과 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국가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대여 장학금이 있는데 내가 선발됐다는 거다. 졸업 때까지 학비 전액을 지원하며 졸업하고 형편이 좋으면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장학금을 받을 만큼 학점이 좋지도 않았고 그래서 장학금을 신청한 적도 없었다.
그때도 나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치 나의 불행을 모두에게 들킨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때 내 형편으로 보아 그 장학금이 아니었으면 졸업을 못했을 수도 있다.
그때 받은 장학금은 약속대로 상환해야 하지만 형편이 좋을 때라는 주관적인 상황이 어떤지도 판단이 안되지만 상환하라는 연락을 받은 적도 없고 상환했다는 사례도 없다. 아마도 처음부터 값을 것을 기대하며 기획된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학생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대여 장학금이라는 명목으로 지원했다고 선의로 해석하며 자신을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