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놀이터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나 여름방학 때 호주 갔다왔어 "
"나도 가봤는데"
"호주 어디 갔는데?"
"음..어디더라? 뉴욕이었나?"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직장에서 나도 거짓말 했던 기억들이 갑자기 떠올라서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보면 증거가 명백한데도 "잘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거짓말하는 후보들을 너무나 많이 보게 된다. 그걸 보며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상태가 안 좋다고 혀를 차게 된다.
그러나 우리 역시도 살면서 알게 모르게 수많은 거짓말과 과장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심한 사람과 덜한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직장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했던 대표적인 거짓말, 과장, 은폐 사례는 다음이 있었다.
1. 회사 계단을 올라가다가 커피를 쏟았는데 귀찮아서 방치해 두었던 일이 있었다. 나중에 누가 그런거냐고 사람들이 수군거릴 때 모른척 하고 넘어갔다.
2. 강의장을 잘못 예약했던 일이 있었다. 해당 기간에 강의장 공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강의장을 예약한 것이라고 거짓말로 둘러대었다.
3. 야근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집안 경조사가 있어서 야근이 어렵다고 거짓말하고 슬며시 빠져나온 적이 있었다.
그 외에도 누가 내 학점이나 토익점수를 물어보면 뻥튀기로 대답한 적이 많이 있었다.
왜 거짓말을 하고 과장, 은폐하려는 것일까? 옳지 않은 행동임을 알면서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늘 지적받고 혼나는 일이 반복된다. 이게 쌓이다보니 비슷한 상황이 닥쳐오면 공포가 엄습하게 된다. 공포는 생각을 마비시키고 합리적인 판단을 어렵게 한다.
큰 트럭이 나에게 돌진해 올 때 당장 피해야 함에도 몸이 얼어붙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현상과 비슷하다. 당장의 위기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튀어나오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출신대학, 다니는 회사, 재산, 자녀 문제는 자존심과 직결된다. 여기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자존심을 높이게 된다. 수많은 학력 위조가 여기에서 발생하고 자기 재산을 뻥튀기하기도 한다.
쓸데없이 주량에 대해 자존심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술에 약한데도 주량이 소주 2병이라고 했다가 술자리에서 탄로나는 경우도 있다.
진작에 말했으면 꾸중 한 번 듣고 끝났을 일인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또한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결국은 살기 위해 거짓말을 계속 하게 된다.
내가 기침만 크게 해도 사람들이 째려보고 내가 말만 해도 말꼬리 잡고 빈정대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라면 나도 모르게 위축된다. 누가 나에게 말만 걸어도 놀라게 된다. 그런 상황을 바꾸고 싶기에 나를 좋게 포장하고 싶어진다. 거짓말과 과장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복잡한 건 질색이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대충 마무리짓고 싶다. 이런 심리가 있다면 다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다 해결되었다고 말하고 성급하게 일을 끝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거짓말이나 과장하는 것은 결국은 다 들통나게 되어 있다. 완전범죄는 없다고 하는 판인데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내뱉은 저도의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내려가게 된다.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성경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가 있다. 사도시대 초기에 믿음이 좋은 성도들은 자기 전 재산을 자발적으로 헌금으로 바치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부부였다. 이들은 전 재산을 바친 사람들처럼 칭송을 받고 싶었다. 그들은 자기 땅을 판 돈 절반을 헌금으로 바치었다. 이 때 교회의 지도자였던 베드로가 물었다.
"이것이 당신들의 전 재산이오?"
"네! 그렇습니다"
"당신들은 어찌 하나님을 속이려는 것이오?"
이 때 거짓말을 했던 부부는 하나님의 벌을 받아 갑자기 죽게 되었다.
이들이 죽은 이유가 무엇일까? 전 재산을 바치지 않고 재산 절반만 바쳐서? 아니다. 그러면 헌금을 한 푼도 안한 사람들은 왜 죽지 않았겠는가? 이들이 죽은 이유는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거짓말의 악영향은 크다. 좋은 일을 하고도 칭찬이 아니라 책망을 받게 되고 사람들의 신용을 잃게 된다.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명성이 한 순간에 다 무너지는 것이다.
거짓말 하는 습관을 자기 의지만으로 고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을 다 안다. 그럼에도 하게 된다. 이 문제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아이는 게임을 정말 좋아한다. 첫째 아이는 한 때 늘 나와 함께 자고 싶어했다. 그 이유는 바로 아빠 스마트폰으로 밤에 게임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와이프가 이걸 눈치채고 규칙을 만들었다.
첫번째로 발각되면 나는 생활비 카드 일주일 간 정지, 아이는 일주일 간 게임 금지
두번째로 발각되면 나는 생활비 카드 한 달 간 정지, 아이는 한 달 간 게임 금지
이 때 내가 몰래 게임을 시켜주다가 와이프에게 걸리면 과연 나는 거짓말을 안 할 것인가? 십중팔구 거짓말하게 될 것이다. 불이익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즉, 거짓말을 안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나오지 않도록 애초에 환경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회사에서 실수하고 대충 일하고 이러면 상사의 질책을 받게 되고 이 때 거짓말로 모면하려고 하게 된다.
1) 이메일이나 보고서, 회의 내용은 꼭 정독하고 중요한 내용은 기록하자
2) 지시사항은 내 언어로 정리해서 다시 한 번 물어보자
3) 지금 하고 있는 업무의 앞, 뒤로 이어지는 업무를 같이 생각하고 더 챙길 것은 없는지 고민하자
이 세 가지만 잘해도 실수의 80% 이상 막을 수 있다. 거짓말 해야 하는 위기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거짓말 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조리있게 말을 잘하지 못한다. 평소에는 말을 잘하지만 갑작스러운 질문이 나오거나 긴장하게 되면 급격하게 얼어붙는다. 머릿 속이 하얘지고 평소에 알던 것도 생각나지 않게 된다. 이 때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생각나지 않을 때 억지로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면 잘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게 되고 이게 결국 거짓말이 된다. 생각나지 않으면 자료를 찾아보고 바로 말하겠다고 하자. 한번 머릿 속이 하얘지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되살리기 어렵다. 분위기를 전환한 다음에 차분하게 찾아보고 정확하게 대답하자.
"이번주 키오스크 판매실적이 얼마나 되지?"
→ "음... 70대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X)
→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자료 찾아보고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O)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거짓말을 할 때 사람은 쭈뼛거리고 머뭇거리게 된다.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에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만 해도 사실관계는 금방 드러나게 된다.
여기에서 거짓말로 모면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나는 일 못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내가 한 번 더 혼난다고 해서 뭐 크게 달라지는게 있겠는가?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인정하자. 물론 이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게 되면 한 번 혼날 일을 두 번 혼나는 것이다. 혹 떼려야 혹 하나 더 붙이는 상황을 맞이하게 됨을 명심하자.
사실 4번은 내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이다. 나와 잘 맞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는 부서에서는 거짓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하기에 끝임없이 벗어나고자 한다. 대화를 많이 안하고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적다 보니 물어보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잘못 대답하면 졸지에 거짓말쟁이가 되버린다.
장기적으로는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보고 그 부서로 가자. 아니면 이직도 생각해 보자. 내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과감하게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거짓말 하는 것을 개인의 인성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내면의 문제, 외부환경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거짓말을 안 하기 위해서는 인성을 가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환경을 바꾸는 방법은 결국은 일에 있어서 실수를 막고 디테일을 챙기는 것이다. 굳이 거짓말 할 상황을 처음부터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움츠러들게 하고 힘들게 하는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그 곳을 떠나자. 사람은 보호 본능이 있기에 누가 날 해치려고 하면 반사적으로 나를 지키려고 한다. 힘 없는 내가 나를 지킬 방법은 결국 거짓말 밖에 없는 것이다. 거짓말 하기 싫으면 그 곳을 떠나자.
그리고 용기를 내자. 거짓말로는 결코 상황을 모면할 수 없다. 한 대 맞고 끝낼 일을 두 대 이상 곱배기로 얻어맞게 된다. 어짜피 내가 일 못하는거 다들 안다. 뭘 더 잃을게 있다고 거짓말로 나를 지키려고 하는가? 그냥 솔직해지자. 그게 더 후련하다.
한 가지 거짓말을 참말로 믿게 하기 위해서는 일곱가지 거짓말을 더 해야 한다.
- 마틴 루터 (16세기 종교개혁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