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한 번 돌아보기
나는 운전하는 것을 싫어한다. 운전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건 아니다. 화가 나는 상황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
깜박이도 안 켜고 차선을 바꾸는 차, 밖으로 빠져 나가는 차선에 차들이 길게 줄지어 있으면 잽싸게 끼어드는 차, 조금만 늦게 출발하면 빵빵 경적을 울려대는 차..왜 이렇게 개념 없이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은걸까? 도저히 화를 참을 수가 없다.
까닥하면 분노 조절에 실패해서 큰 사고를 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운전은 되도록 잘 안 하려고 한다. 사실 나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아니다. 왠만큼 짜증나는 상황이 와도 "허허" 웃으면서 그냥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 내가 왜 운전만 하면 분노를 잘 참지 못하는 것일까?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은 난폭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
영국의 심리학자인 킹은 로드 레이지(Road rage) 즉, 도로 위에서의 분노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진 사람 중 유난히 운전할 때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킹 교수는 평소에 화가 나는 상황을 많이 겪음에도 적절하게 분노를 표출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사람이 로드 레이지를 자주 표출한다고 한다.
그 외에 자기 자신에 대해 높은 윤리가치를 부여하는 사람 역시도 운전 중에 자주 분노를 표출한다고 한다. 나는 철저하게 교통법규를 지키고 양보를 잘 하기에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응징을 하고 정의 구현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특히 회사에서 울분이 쌓여 있는 사람인 경우, 운전 중에 쉽게 분노하기 쉽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화가 나도 차마 상사에게 대들수는 없다. 아무리 동료나 후배라도 보는 눈이 있기에 대놓고 화내기 쉽지 않다.
특히나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일수록 감정 표현이 더 어렵다. 내가 화를 내면 일도 못하는데 성격도 별로라고 더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내 책임이 아닌데도 '일못러' 라고 한 번 주홍글씨가 새겨지면 늘 주눅들어 지내게 된다.
좋은 일이 있어도 크게 웃기 어렵다. 일도 못하면서 뭐가 그리 행복할까 눈총을 받는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제대로 화내기 힘들다. "인성도 별로네" 이런 소리를 듣기 쉽상인 것이다.
운전을 할 때 대부분 상대 운전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선팅을 진하게 하기에 더더욱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이건 온라인 익명 게시판과 똑같다. 상대가 보이지 않기에 그동안 억눌린 내 분노를 표출하기 딱 좋은 것이다. 어짜피 누군지도 모르고 두 번 다시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이다. 분노가 쉽게 튀어나오는 것이다.
운전 중에 쉽게 화를 내는 것! 결코 간단한 문제로 보면 안되는 이유이다. 그만큼 내 속에 억눌려있는 분노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증거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 처럼 '분노 보존의 법칙'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엄청나게 착하거나 엄청나게 못된 성격을 가진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사실 사람의 인성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화가 날 때 적절한 선에서 내 감정을 분출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그저 꾹꾹 참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 벙어리 삼 년' 으로 직장생활을 마치 조선 시대 때 시집살이 하듯이 인고의 시간으로 버티는 사람도 존재한다.
압력 밥솥의 김을 적절히 빼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폭발한다. 사람의 분노도 적절하게 표출하지 않으면 뜻하지 않은 순간에 갑자기 폭발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종종 직장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다.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회사에서 해고 당하거나 따돌림 당하는 것에 앙심을 품은 사람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제대로 된 분노 표출을 못하였기에 왜곡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분노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총기 규제가 강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쉽게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은 운전 중에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다. 정의 구현 등 이유를 들고 있지만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내 속에 억눌린 분노를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 밤 10시쯤 도서관 무인반납기에 책을 반납하러 간 적이 있다. 차는 하나도 없고 횡단보도는 좀처럼 초록불로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씨, 언제 켜지는거야"
혼자 짜증내다가 빨간불에 무단횡단을 했다.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교통법규 위반을 하는건 어쩔 수 없는 행동이고, 남이 위반하는 것은 천하의 죽일 놈으로 생각했구나. 내가 얼마나 내로남불 마인드를 가졌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거기서 거기였던 것이다.
화가 날 때는 적절하게 표출하자. 꾹 참는 것이 결코 최선이 아니다. 상대방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에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반복하게 된다.
욕하고 덤비라는 것이 아니다. 정중하게 불쾌한 감정을 전달하면 된다.
"이런거 하나 제대로 못하냐고 신입사원도 안하는 실수를 한다고 하셨는데
듣는 입장에서 솔직히 불쾌합니다.
저도 조심할테니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상사에게 이렇게까지 말하기는 물론 어렵지만, 기회가 되면 정중하게 내 의사를 표현해 보자.
운전할 때 조심한다고 화를 안 낼 수 있는게 결코 아니다. 순간순간 화가 날 때 적절하게 표출해야 한다. 그렇게 압력밥솥에서 김을 빼듯이 분노 총량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너무 높은 점수를 주지 말자. 내 인성도 사실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은 관대하게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