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극복하기
사람은 수심 몇 미터까지 잠수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경우 10~20미터까지 들어갈 수 있다. 특수장비를 갖춘 경우라도 수심 50미터 이상은 절대 들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잠수함은? 두꺼운 강철로 제작된 잠수함은 깊게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반적으로 300미터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그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잠수함은 물론이고 승조원들의 생명도 위태로워지게 된다.
그 이하로 내려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물의 압력인 수압 때문이다. 수심 10미터만 내려가도 수압은 물 밖의 2배 크기이다. 수심 100미터에서는 11배, 300미터에서는 31배까지 늘어난다. 위에 있는 물이 누르는 압력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심한 경우는 철판으로 된 잠수함까지 찌그러뜨릴 정도라고 한다. 물의 압력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만큼 남들이 가보지 않은 단계에 도달한 사람들은 엄청난 압력을 견뎌 내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은 부러워할지 몰라도, 당사자들은 언제 추락할지 몰라 늘 살얼음판을 걷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골목식당, 장사천재 백사장 등 프로그램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백종원씨가 최근에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가 잘 나갈 때는 비교대상이 없을 만큼 독보적이었다. 가게 하나를 차릴 때도 이렇게 시야를 넓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까지 다 신경쓰는구나 그저 놀랍기만 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리는 존재이다. 언제 찬양했는지 무섭게 순식간에 마음이 돌아선 것이다. 물론 공업용으로 사용해야 할 분무기를 요리 제조에 쓰는 등 그의 과실도 분명히 크다. 그러나 평소에 백종원씨를 아니꼽게 본 사람, 질투하던 사람, 성공한 사람은 어떻게든 끌어 내리고 싶은 사람들이 "위아더월드!" 를 외치며 합동 공격을 하는 모습은 참 씁쓸하기만 하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셨다. 그 때 군중들은 자기 옷을 바닥에 펼쳐서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며,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했다.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뒤 군중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군중들이 예수님께 기대했던 것은 당장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먹을 것도 해결해주고 아픈 몸도 치료해주는 역할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로부터 해방, 영혼 구원만을 강조하셨다. 실망한 군중들은 태도를 바꾸었다. 일주일 뒤 그들은 소리높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대표팀 축구 감독이던 시절, 그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베트남이 상상하기 힘든 수준으로 엄청난 성적을 연거푸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국부였던 호치민 바로 아래가 박항서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나 박항서 감독은 늘 겸손했다. 군중들의 인기는 연기와도 같고, 언제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눌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적이 좋은 때는 환호하지만, 조금이라도 성적이 떨어지는 순간 비난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언제든 사표쓸 준비를 하고 살았다고 한다.
대중은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 자기의 환상을 투영한다. 예를 들어 팀장은 나에게 다정다감해야 하고 내 말을 경청하며 나를 핵심인재로 여기기를 바란다.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팀장은 좋은 팀장, 그렇지 않은 팀장은 나쁜 팀장 이렇게 낙인 찍는다.
즉,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로 판단한다. 나에게 예전처럼 이익이 되지 않는 경우, 언제든 비난의 표적이 된다.
회사에 회장 일가친척이 임원으로 같이 일하는 경우,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감시의 대상이 된다. 조금이라도 지각하거나 점심 시간에 오랫동안 나가 있으면 바로 회사 전체에 근태가 나쁘다고 소문이 쫙 퍼진다. 자기가 지각한 것은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거고, 위에 있는 사람이 지각한 것은 정신머리가 잘못 박힌 것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연예인이 실수했을 때, 공인이라는 이유로 돌을 맞는 것도 비슷한 경우이다.
사람들은 못된 심리가 있다. 잘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겉으로는 칭찬해주지만 속으로는 질투한다. 이 사람들이 실패하게 되면 진심으로 기뻐하고 환호한다.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유명한 사람이 실패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한다.
지금 내가 회사에서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달나라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는 판에 잘되고, 유명해지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그러나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지금은 힘들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내 강점을 개발한다면 빛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분묑티 찾아온다. 이건 장담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올라섰을 때, 마치 바다 속으로 깊게 들어가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수심 3미터 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수압이 30미터에 다다르는 순간 엄청나게 느껴질 것이다. 내 모든 것들은 주목받게 된다. 점점 부담스러워 지는 것이다.
초심을 잃지 말자. 내가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을 생각하자. 아직도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새기고, 겸손함을 잃지 말자.
나는 이직 과정에서 두 달 정도 공백기가 있었다. 그 때는 한겨울이었다. 그 추운 날 한강을 혼자 걸으면서 생각했다. 훗날 내가 잘되는 날이 오고 교만해진다면 한겨울에 다시 한강을 걷겠다고 말이다. 칼바람을 맞으면서 힘들었던 시절을 다시 떠올리고 싶다. 그런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보자. 초심을 유지하게 만드는 공간 말이다. 이전에 힘들게 배달을 했다면 그 주변을 가보는 것도 좋다. 권고사직을 당했던 회사가 있다면 그 주변을 가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힘들었던 시절을 되새겨 보자.
사람은 잘 나갈 때가 정말 위험하다. 바다 속 수심 100미터 이상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빛은 들어오지 않아 캄캄하고 수압은 땅 위의 무려 11배이다. 팔 하나를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코르시카 섬 출신의 시골뜨기 나폴레옹도 초심을 잘 유지할 때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초심을 잃고 황제에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자기 형제들을 주변국 황제 자리에 앉히며 스스로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초심을 절대로 잃지 말자. 쥐구멍에 볕이 들고 있다면, 빛이 들어오지 않았던 그 때를 기억해보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것은 무너지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