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한참 업무를 하고 있는데 연수원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팀 동료의 전화가 왔다.
"다음주 교육을 위해서 교육 진행용 노트북 한 대 확보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럴께요"
다른 업무가 급하기도 했고 다음주니까 아직 시간이 많이 있겠다 싶어서 내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세 시간쯤 지났을까? 그 동료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노트북은 어떻게 됐어요? 되는지 안되는지, 언제쯤 알아봐 주실 수 있는지 답이라도 주시지. 안되면 제가 직접 알아보려고요"
동료는 언제 알 수 있는지 통보가 없어 답답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입장을 잘 모른다. 부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탁을 하면 상대방이 만사 제쳐놓고 그 일을 처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반면에 들어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 일이 우선이다. 상대방 부탁이 왠만큼 중요한 일이 아닌 다음에는 내 일부터 처리하고 후순위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손이 많이 가는 업무를 부탁할 경우 더더욱 그렇다.
서로의 눈높이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수시로 조율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상이몽 즉,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꾸게 된다.
남자는 여자를 몰라요, 여자는 남자를 몰라요.
오래 전에 (15년도 더 된 옛날이다)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남녀탐구생활'의 타이틀이었다. 직장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사무실에 있어도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진행상황을 알려줘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부서 예산 담당자이다. 팀원 하나가 영업 대리점 리더십 교육을 위해 리더십 진단도구 결제를 하였다. 예산을 신청해서 비용 정산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다고 하자.
이 사람은 100만원을 결제했다. 누구나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빨리 비용 처리를 해서 빵꾸난 부분을 메꾸고 싶어한다.
당연히 일이 어떻게 되가는지 알고 싶어한다.
반면에 나에게 그 팀원의 비용은 별 관심사가 아니다. 내 돈 나간것도 아니고 그 팀원 비용 처리해주는게 내 중요 업무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결국 신경쓰지 않으면 진행상황을 알려주지 않고 놓치게 된다. 상대방은 깜깜이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한번에 몰아서 하는 것이 좋다. 내 업무를 하다가 중간에 업무 공유에 신경을 쓰게 되면 집중하지 못하고 실수가 나올 수 있게 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멀티태스킹을 잘 하지 못한다. 출근 직후, 점심 식사 이후나 퇴근 10분 전 등 업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에 한번에 보내자.
육하원칙을 생각하면서 보내자. 길게 보낼 필요 없이 아래처럼 핵심만 전달하면 된다.
부탁하신 교육용 노트북은 현재 IT지원팀에 신청한 상태이고, 내일 중 수령 가능하다고 하네요. 받는 즉시 퀵으로 보내드릴께요. 정확한 수령시간은 내일 알려드리겠습니다.
누가 부탁한 건 10분만 지나도 머릿 속에서 휙 사라진다. 나중에는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있었는지, 부탁을 받기는 했는데 누가 부탁했는지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지게 된다.
업무 요청은 꼭 기록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영업기획팀 김철수 과장 영업실적 자료 요청(2/15까지)"
이 정도로만 기록해 놓아도 된다 (솔직히 더 자세히 적을 여유도 없을 것이다)
요즘은 많은 기업들이 협업 툴을 도입하여 업무공유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팀즈, 슬랙, 노션, 트렐로, 잔디 등등 많은 툴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수시로 전화를 통해 들어오는 자잘한 부탁들을 일일이 다 협업 툴에 기록할 수는 없다. 결국은 다이어리나 엑셀을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내 고유업무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들 업무 요청을 챙겨야 하느냐고..
그러나 나 역시 필요할 때 다른 사람에게 업무 요청을 하게 된다. 업무 요청 때문에 고마움을 느낀 기억, 분노를 느낀 기억이 다들 있으실 것이다. 대부분의 업무는 같이 하는 업무이고 각자 고유 영역이 있기 때문에 업무 요청은 항상 이루어지게 된다.
업무 요청은 야구에서 포수의 공 잡기라고 생각하자. 투수의 공을 정확히 잡고 정확하게 건네줘야 투수가 체력을 아끼면서 다음 공을 준비할 수 있다. 볼을 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하는 프레이밍도 중요하다.
포수가 훌륭한 팀이 강팀이 되듯이, 업무 요청을 잘 받는 사람이 일잘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