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로 성장하기
오늘따라 출근길 지하철이 엄청나게 붐빈다. 3일 연휴가 끝나기도 했고 하필 가장 몰리는 시간 지하철을 탔다.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눌려서 30분 동안 이동해야 했다.
내리는 순간 아차 싶었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휴대용 선풍기가 사라진 것이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가 주머니에서 빠진걸 몰랐던것 같다.
구입한지 얼마 안됐는데..너무 속상했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만원 지하철 안에서 선풍기 잃어버린 이야기를 옆자리 동료에게 이야기했다. 아마도 나는 위로의 말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동료는..
"아까웠겠네요"
딱 6글자의 말만 하고 다시 모니터만 응시하고 있었다.
왠지 속상했다. 선풍기 잃어버린게 나만 속상하지 다른 사람이야 뭐 자기 일 아니니까 애써 위로하였다. 그래도 뭔가 속상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집에서 또는 회사에서 우리는 가족들이나 동료들에게 내가 겪었던 일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내가 얘기해도 늘 건성으로 듣고 잊어버리는 동료가 있어"
"지하철에서 앞자리가 비어서 앉으려고 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쪼르르 달려와서 앉아버리더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심리가 무엇일까? 상대방이 내 문제를 듣고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듣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 처음에는 들어주다가 조금 지나면 본인 경험 말하기 바쁜 사람
- 조용히 들어주면서 내가 더 이야기할 수 있게 북돋아주는 사람
- 별 관심없다는 듯 반응하는 사람
어떤 모습이 가장 좋아보이는가?
물론 한 사람이 하나의 반응 유형만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꼭 조언하고 싶으면 첫번째 유형처럼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말할 수도 있다. 진짜 내가 바빠서 들어주기 힘들다면 세번째 유형처럼 반응할 수 밖에 없다.
만일 내가 바쁘거나 내 지식을 적극적으로 말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일단 상대방 말을 들어주면 좋다. 물론 내가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나에게 지장이 오지 않는 범위 하에서 경청하라는 의미이다.
"오늘 왜 이렇게 지하철에 사람이 많은거야. 땀은 나고 가방에서 선풍기 꺼내서 바람 쐬다가 사람들한테 밀리는 바람에 선풍기를 떨어뜨렸네. 어디 갔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를 않는거 있지"
→ "지하철 출근길에 진짜 사람 많지요. 그거 잃어버려서 슬프시겠어요"
→ "조심하시지 그랬어요. 3월인데 무슨 선풍기예요. 뭐가 덥다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 어떤 대답이 더 따뜻하게 느껴질까? 당연히 전자일 것이다. 상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감정을 위로하는 대답에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
눈을 마주치는 것은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람은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을 때 몸이 그 사람 쪽으로 향하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이 하는 몸짓을 따라하게 된다. 이걸 활용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것에서 중요한 부분을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상대방은 내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경청과 공감 방법으로 유명한 데일 카네기 저서에서도 핵심은 상대방 말의 핵심을 내가 다시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 약간의 내 생각이나 추측을 더하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사람들한테 밀리다가 선풍기를 잃어버렸네요"
→ "선풍기를 손에서 놓치셨나봐요"
"내가 남편한테 세탁기 다 끝나면 건조기에다 넣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안했지 뭐야"
→ "남편분이 세탁기 끝나는 시간에 다른일 하다 잊어버렸나보네요"
상대방은 말하고 싶고 위로받고 싶다. 내 어려움, 속상함을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위로하는 것이다.
→ "선풍기 산지 얼마 안되셨는데 아쉬우시겠어요"
→ "가족처럼 같이 산 강아지가 하늘나라로 갔다니 얼마나 슬프시겠어요"
상대방은 위로받고 싶은 것이지 조언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종종 듣는 사람이 오히려 입장이 바뀌어 온갖 인생철학을 주입하는 경우가 있다. 섣부른 조언은 삼가도록 하자.
"그거 선풍기 몇 푼이나 한다고. 그리고 소중한 물건은 절대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 않는거야. 그런데서 잃어버리면 너만 손해지"
상대가 위로를 원한다고 해서 무작정 오랜시간 그 이야기를 나눌수는 없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일하는 곳이기에 필요 이상의 사적인 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정도 대화가 이루어졌거나 내가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으면 정중하게 끝을 맺자.
"그거 아쉬워서 어떡하냐. 내가 이거 끝내고 커피나 마시면서 이야기하자"
내가 잘 모르거나 섣불리 끼어들기 곤란한 주제라면 조용히 듣는 것이 좋다. 낯선 주제이거나 남을 흉보는 자리일 경우가 많다. 이 때는 굳이 응대할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 듣고 자리를 뜨거나 화제를 전환하자.
'1,2,3 대화법'이라는 것이 있다.
- 한번 말하고
- 두번 듣고
- 세번 맞장구 치자
그만큼 맞장구의 힘이 큰 것이다.
"오! 대단하다"
"멋지네"
"정말? 진짜?"
"그랬구나"
맞장구는 상대방이 내 말에 동의한다는걸 보여주기에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을 갖게 한다.
내가 상담사도 아닌데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상대방 하는 말을 들어줘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 말을 들어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은 힘을 얻는다.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밖으로 드러낼 때 맺힌 것이 풀리기 때문이다.
예전에 회색당이라는 시간 도둑과 싸우는 '모모'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모모의 장점은 다른 사람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정말 별 말 없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주의깊게 듣는다.
사람들은 모모에게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행복해한다. 어느새 모모는 그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만큼 신뢰를 얻는데 경청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경청의 태도는 우리가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다 (데일 카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