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 엄마에게 전달 부탁드립니다.

내년에는 같은 반이 되지 않게 비나이다

by silvergenuine

아파트 층간 소음 민원을 경비실을 거쳐 전달하면

한 단계 완충작용이 일어나서 직접 말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서로 간의 직접적인 감정 충돌을 피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주민들이 경비원을 그저 전달자로 여길 뿐 그분이 어떤 생각과 평가를 하든 말든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한편 자녀가 교실 친구와 갈등 상황이 있을 때

"상대방 부모에게 이러이러한 입장을 전달부탁드립니다."라고 담임에게 부탁한다면?

...별로 산뜻하지 않은 일들이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자녀의 친구 문제로 속이 썩었던 친구가 담임샘에게 보낸 문자를 나에게 보여주며 같은 교사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냐고 물어왔다.


내용인즉슨,

4학년 여학생인 그들은 학교 댄스 공연에 같이 올라가기로 했다. 연습 시간을 맞추는데 딸의 친구가 변덕을 부리고, 본인집에 와서 집안 물건들에 함부로 손을 댔다. 뭐가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같이 공연을 안 하겠다고 협박하고 가스라이팅을 일삼았다. 공연 당일에는 딸의 무대의상을 일방적으로 뺏어 입었다.

참고 참으며 공연까지는 마무리했지만, 이런 일이 있었음을 상대방 부모님께 전달해 줄 것과 내년에는 절대 같은 반이 되지 않도록 해줄 것을 담임샘께 문자로 부탁드렸다.


"친구야, 무슨 상황인지 정말 이해가 돼. 진짜 속상하고 힘들었겠다. 선생님도 교실에서 아이들을 보지만 여학생 사이의 감정대립, 관계변화, 학교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까지는 다 파악하기가 어려워. 들어보니 네 딸이 감내하고 이겨낸 것들이 많다. 이번에 친구 관계에서 휘둘리지 않는 방법 같은 것들을 많이 배운 것 같아, 큰 경험했어.

일단 내년 반편성에 반영해 달라고 부탁드린 건 잘했어! 지금이 반편성을 앞둔 시기라서 타이밍이 딱 좋고, 이런 민원이 많지 않아서 웬만하면 반영해 주실 거야.

음, 그런데 그 친구 부모에게 전달해 달라는 건 잘 안 될 수도 있어.

네 말대로 전달했다고 쳐보자. 상대 엄마가 그냥 듣기만 할까? 이건 내 경험인데, 나도 예전에 이런 부탁을 받고 중간에서 나름대로 좋게 좋게 전했는데 상대엄마가 나를 공격하더라. 선생님은 왜 그쪽 말만 듣고 자기 아이만 안 좋게 보냐고 따지더라고. 둘 사이는 당연히 안 좋아지고 중간에 낀 나는 양쪽의 화살받이가 되었었지.


너희 담임선생님 답장을 보니 교실에서 지도는 하겠지만 전달은 안 하시겠네. 그래도 네가 더 독촉하지 않아서 그쯤에서 끝내고, 반편성에서 서로 분리되면 그걸로도 괜찮겠지?


만약 그쪽 부모가 이번 일을 좀 알았으면 좋겠고 앞으로 더 이상 같은 문제가 없도록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네가 직접 통화하면 좋겠어.

방법은 2가지가 있어.

담임샘을 통해서 상대 부모의 동의 하에 연락처를 받아서 직접 통화하는 거야.

아니면 아이들을 통해서 부모님과 통화하게 해달라고 해서 이야기하는 방법이 있지. 둘 다 괜찮아.


난 두 번째 방법으로 상대 학부모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어. 일 년 동안 우리 아이에게 쌓였던 일들과 감정들을 쏟아내시는데 처음 듣는 일들이라 당황은 했지만 그쪽 입장을 직접 들으며 바로 대화하고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어. 힘은 들었지.

언질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동안 담임샘에게는 몇 번 호소했다는데 우리 담임샘은 나에게 전해주지 않으셨거든.

너의 그 친구 엄마가 자기 아이의 행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네가 사실 위주로 말해준다면 그쪽 자녀교육에 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사람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네 아이와의 관계는 바꿀 수 있지. 안 부딪치게 하기라도."



부모들은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애지중지 기른다. 자녀가 남들 보기에 잘났든 못났든 부모에게 내 자식은 불가침의 대상이다. 그런 부모에게 그 자녀에 대한 어떤 말을 전달하고 싶다면 그 사랑에 대한 공감과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누군가 내 자식을 탓한다면 부모가 그 또한 조심스레 숙성시켜 자식을 위한 거름으로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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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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