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가 멋졌다

by silvergenuine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반에 키는 나보다 작으면서 좀 영악하고 짖궂은 남학생이 있었는데, 어느날 청소 시간에 그 녀석이 여학생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저 겁이 많고 조용했던 그 여학생을 그 녀석이 이유 없이 몰아세워 윽박지르며 때리고 있었다. 선생님께 이를 줄도 모르고 친구도 없던 그애는 그저 겁에 질려 몸을 움츠리고만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두드러지는 까만 점이 하나 있고, 몹시 마르고 허약해보이는 여자애였다.

평소 목소리가 컸던 그 남자애는 늘상 눈에 띄었지만, 같은 반이었던 그 여학생을 난 그날 비로소 처음 본 듯 했다. 그 상황에 나는 본능적으로 끼어들었다.

"야, 너 왜 힘없는 여자애를 때리는데! 그만해!"

"니가 뭔데? 얘가 니 친구냐?"

그 녀석이 비웃듯이 말했다. 그 남자애가 그애에게 그러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그 애와 친구면 자기도 같이 무시당할 수 있다는 듯 주변의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 묘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뭐긴 뭔데, 사람이다 왜!"

그 녀석이 위협했다.

"니가 무슨 상관인데, 니도 맞아볼래?"

"내가 너한테 왜 맞는데? 너는 왜 비겁하게 사람을 때리노!"

"뭐? 너 나하고 맞짱 뜰래?"

그 녀석은 덩치는 작지만 싸움을 잘한다고 꽤 소문나 있던 애였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이제 그 녀석과 나를 에워싸고는 누구도 말리지 않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난 꼬리내리는 법을 몰랐고, 좋게 얼버무리는 방법도 몰랐다. 자기가 잘 싸운들 내가 맞기만 하겠냐는 심산이 들었고, 기싸움도 지기 싫었다.

"그러든가! 니가 먼저 때려, 난 너처럼 비겁하지 않아서 먼저 때리지는 못하겠으니깐."

근데 이 말이 어떻게 먹혔는지 인마가 선공을 안 하는 것이었다. 난 진짜 그 녀석이 선공하면 개싸움을 시작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둘이 서로 노려만 볼 뿐 계속 거리를 유지했다. 교실 공기는 싸늘하고도 후끈했다. 난 진심을 담아 또 도발했다.

"뭐하는데? 니가 먼저 때리라고!"

그 녀석이 한참을 노려보더니

"됐다, 다음에 두고보자."

하더니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뭘 두고본다는 건지 내가 생각하는 사이 아이들은 흩어져 제 할 일을 찾았고, 나도 청소를 마저 다. 다른 여자친구가 남몰래 다가와 아까 멋있었다며 말해줬지만 어딘지 떳떳하지 않았다. 그 일 이후에도 그 여자애의 처지는 나아진 것이 없었고 나도 선뜻 친해지지 못했다. 다만 그 녀석이 또 그 여자애를 괴롭히면 난 또 끼어들어 나와 그 놈의 싸움 구도를 만들었다.


어떤 시비였는지 그 놈에게 실제로 맞은 적도 여러번 있었는데 부모님의 힘이라도 빌릴까 싶어서 집에 와서 눈물을 짜며 같은 반 남자애가 때렸다고 호소해본 적이 있다. 부모님은 자식이 밖에서 맞고 와서 울면 그보다 속상한 게 없다며 화를 내실 뿐 그 시절이 그랬는지 딱히 도움을 주시지는 않았다. 괜히 말을 꺼냈다는 후회만 들었다.

편치 않았던 5학년을 지나 그 남자애, 나, 그 여자애 모두 다른 반으로 흩어졌고 더 이상 그들과 얽힐 일은 없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중2의 어느 날, 옆반에 들렀던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힘없고 유령같은 아이로 기억되었던 그 여자애가 너무나 활기차게 웃으며 다른 여자 친구의 무릎에 앉아 같이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무릎을 내준 친구는 반장, 부반장을 도맡아하는 인기 많은 친구였다.

"너희 둘이 친해?"

라고 묻자 그 친구가 당당하게 말했다.

"당연하지. 얘가 얼마나 착하고 귀여운데, 얜 내 친구야!"

정말 멋있었다. 그거면 되는 거였다.


내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무엇이었는지 그제서야 깨달아졌다. 정작 나는 그 여자애와 친구가 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 싸워주며 사실은 그 여자애를 남들과 다른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그 부반장 친구처럼 남들이 뭐라하든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아이가 미처 내보이지 못했던 반짝임을 알아봐주는 것, 위하는 척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친구가 되는 것. 그로 인해 유령 친구는 보통의 여중생이 되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교사가 되어 왕따 지도를 할 때 나의 이 경험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왕따피해자를 돕고 싶다면 가해자에게 주먹들어 맞서싸우지 않아도 된다. 소외된 아이 곁에 친구로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보호막이 될 것이다. 너도 왕따냐며 비웃으면, '그렇게 말하는 네가 이상한 거'라고 당당하게 받아쳐라. 서로가 있어 즐거운 너희 곁에는 다른 친구들도 함께 하고 싶어할 거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친구가 되고 우정을 지켜. 친구가 되고 친구의 장점을 봐주는 것, 그게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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