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이 알고 싶다
육아휴직 연장을 위해 꽃봄이를 싸안고 오랜만에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매일 오르내리던 출퇴근길이 어제도 왔던 것처럼 익숙하면서 반갑습니다. 휴직매직! 복직 때도 설레게 돌아오고 싶네요. 글을 쓰는 지금은 낮잠에 든 꽃봄이의 엄마침대 역할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마침 쉬는 시간에 도착하니 중앙현관 앞 광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남학생이 보입니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확실치는 않았지만 작년 1학년 새 학기에 아침마다 아빠와 눈물의 이별을 했던 준하 같습니다.
'역시 학교에 들어오면 잘 노는군! 너는 이제 걱정이 안 된다.' 속으로 웃으며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아이를 그대로 지나쳐 교장실부터 찾았습니다.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리자 교장선생님은 아기를 보고 홀린 듯 함께 교무실로 향하셨습니다. 교감선생님과 휴직연장 신청 서류를 검토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나누는 동안 교장선생님께서 꽃봄이를 안고 내내 놀아주셨답니다. 교감선생님은 그런 교장선생님께 나중에 본인 손주도 좀 키워달라고 졸라댑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낯가리는 9개월 아기가 교장선생님 품에 안겨서는 울지도 않고 한참을 놀지 않겠습니까. 행여 엄마를 찾다 보챌까 싶으면 신속히 새로운 볼거리, 소리자극을 만들어내며 아기의 눈을 고정시켜 놓으셨습니다.
작년 준하에게 신경 써주셨던 교장선생님께 준하의 학교생활을 여쭤보았습니다.
"아, 준하? 이제 교문에서 아빠하고 헤어지고 혼자 잘 올라온다."
딱 그 말씀 하나십니다. 우리 준하는 그것만 되면 다 되는 아이니까요.
작년에 자폐스펙트림이 있는 별님이를 보조하며 우리반 아이들을 다 지켜보셨던 특수실무사님께서 교무실에 잠시 들르셨습니다. 앞머리를 내서 작년보다 더 어려 보이십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2학년이 된 작년 제자들의 근황을 여쭸습니다.
별님이는 통합수업으로 일반학급에 올 때마다 인기폭발이라고 합니다. 착석도 안 되고, 편식도 심했던 별님이가 특수선생님과 실무사님의 지도 아래 점점 기본생활습관을 잡고 친구들의 사랑도 듬뿍 받는 것이 가장 뿌듯하고 기쁘신 듯했습니다. 별님이가 다름 그대로 친구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즐겁게 생활한다니 다행입니다.
햇님이는 여전히 특수교육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학습은 거의 안 되지만 사회관계성 지능은 보통 수준이었던 만큼 요즘은 친구들 말을 따라 하지 않고 수업에 방해되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체육활동 규칙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햇님이와 같은 모둠이 되면 아이들이 싫은 티를 낸다고 하네요. 어떻게든 눈치껏 어울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햇님이인데 안 좋은 경험이 누적되면 우울감, 분노, 무력감이 커질까 봐 우려가 됩니다.
달님이와 여왕벌 소식도 궁금했지만 실무사님이 바쁘셔서 보내드려야 했어요. 둘이 서로 다른 반이니 이젠 달님이가 기 펴고 잘 살고 있을 거라 바라봅니다.
교무실에 인사를 하고 교장선생님과 같이 1층으로 내려오다 작년 남학생 지석이를 만났습니다. 요즘 제가 머릿속 단어 인출이 잘 안 되는데 다행히 얼굴을 보자 저절로 이름이 튀어나왔습니다.
"우와, 지석아! 지석이 맞지? 너 정말 많이 컸다. 못 알아보겠어. 팔은 어쩌다 다친 거야?"
팔에 반깁스를 하고 놀고 있었는데 1년 만에 보는 선생님이 신기한지 그 대답은 얼버무리고 씨익 웃다 돌아가네요.
옆에 계시던 교장선생님이 말씀을 얹으십니다.
"저 녀석이 같은 반 여학생 업어주다가 애가 팔이 부러졌다."
누구 팔인지 제 귀가 의심스럽습니다.
"네? 여학생을 업어주다가 자기 팔이 부러졌다고요?"
"아니, 여학생 팔이 부러졌다고."
"헐, 큰일 났었네요. 근데 자기 팔은 왜 그래요?"
"그건 나도 모르고."
지석이... 학부모 상담 때 집에서 티비를 2대나 해 먹었다고 하던 그 이야기가 이제 떠오르네요. 개구쟁이일 뿐인데 위험인물입니다. 훠이훠이, 그의 운동 반경을 감당할 수 없는 자는 그와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중앙현관을 나서니 아까 쉬는 시간에 뛰놀던 준하가 이번 쉬는 시간에도 나와서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제 앞에 와서 딱 서더니 고개를 갸웃합니다.
"누구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래, 준하야, 어디서 본 것 같지? 너 그런데 선생님 이름 기억해?"
"이름이? 아, 뭐였더라?"
1학년 제자가 담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섭섭하지 않을 만큼의 경력은 충분히 쌓여있는데, 뜸을 들이던 준하가 갑자기 제 이름을 정확하게 말해주었습니다.
"우와, 내 이름을 기억한다고? 너 진짜 대단하다.
!"
저의 감탄을 뒤로하고 준하는 수업 종소리를 따라 교실로 쪼르르 가버렸습니다. 준하는 정말 잘 지내고 있네요.
그러고 보니 오늘 우연히 마주친 남학생 두 명 다 제 품에 안겨있는 꽃봄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답니다. 선생님 아기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역시 1학년 아니, 2학년 남학생도 엄청납니다. 아마도 그들 눈에는 안 보인 것 같아요.
하긴 작년 종업식까지 우리반 학생 누구도 임신 6개월 차였던 제 임신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답니다. 옆반 선생님께 얘기하니 1학년은 원래 만삭이어도 몰라본대요.
올해 벌써 3학년에 올라갈 그 아이들이 놀랍습니다. 예전에 3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는 새로 맞이한 학생들이 클 만큼 커서 올라온 거라 여겼는데, 1학년 시절을 다 지켜본 그 아이들이 3학년이 된다니 아직도 저에겐 어리게만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아이들 내면이 많이 무르익어있겠지요. 몸도 쑥쑥 자라고 있고요.
우당탕탕 부딪치며 단단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 근황이 반가웠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