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신고의무 있습니다.

by silvergenuine

"선생님 반에 그 애 괜찮아요?"

"그 애가 왜요? 수업태도도 괜찮고 애들이랑도 잘 지내요. 별 문제는 없어요."

"내가 재작년에 힘들었던게 그 애 엄마 때문이잖아. 애는 괜찮은데 그 엄마 때문에 정말 교직 생활을 다시 생각했었다니깐"

3학년 담임을 맡을 때였다. 재작년 담임이셨던 선생님께서 우리반 여학생에 대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냥 내가 바라본 바로는 아이가 선행학습을 한 표가 났고 가정에서 학습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했다. 다소 소심하고 융통성 없는 면도 있었지만 평소 친구들과 잘 지내는 무난한 아이였다. 가정에서 할머니가 주로 돌봐주셨고, 어머니는 학부모 상담도 건너뛰고 직접 연락하는 일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많이 바쁘신가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엄마 때문에 힘들었다니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진짜요? 저는 그 어머니와 직접 이야기해본 적도 없어서 학교일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 줄 알았어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어느 날 아이 팔을 보니 빨갛게 부어오른 자국이 있는거야. 깜짝 놀라서 어디서 그랬냐고 물으니까 집에서 공부하다가 엄마한테 맞았다고 하잖아. 평소 집에서 공부할 때 아이가 못하면 '자'로 팔을 때린다고 하더라고. 내가 몰랐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알았는데 어떻게 그냥 있어. 교사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니깐 학대 인지를 했으면 신고를 할 수 밖에 없어. 그래서 절차대로 아동학대 신고를 했지. 기관에서 가정 조사를 하고 권고 수준에서 끝났거든? 그런데 그 뒤로 그 엄마가 나를 괴롭히는 거야.

'선생님이 어떻게 저를 신고할 수가 있어요? 저한테 먼저 말씀을 하셨어야죠.'하면서 따지고, 교실수업, 생활지도,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 트집 잡아서 '왜 교실에서 그렇게 하느냐? 선생님도 아동학대 아니냐?' 항의하고 교무실에 전화 걸어서 민원 넣으면서 아주 그냥 학년말까지 작정하고 괴롭히더라고."

"전 전혀 몰랐어요. 선생님께서 재작년에 힘들었단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어머니 때문일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


교사는 아동학대신고의무자로서 매년 아동학대신고의무자교육을 이수한다. 이 연수에 따르면 위 상황은 도구에 의한 신체적 학대에 해당하며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고, 민법상 부모의 징계권이 폐지(2021년)되었기에 아동학대 신고 요건이 충족된다.

우리나라 정서상 부모가 아이 공부를 시키다가 그 정도 체벌을 가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넘기기도 하지만, 그 판단을 교사가 하기에는 이미 법이 많이 앞서 나가고 있다. 만약 교사가 아동학대 의심정황를 인지하고도 주관적 판단으로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교육청 차원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정도 책임추궁이 따르는 것은 아동이 학대에 의해 심각한 상해나 사망에 이르러서 이 아이 주변의 아동학대신고의무자들은 대체 뭘하고 있었느냐는 조사가 들어올 때일 것이다. 그 정도 사안은 아닐 거라고 교사 주관으로 판단했다가 정말 뉴스에 나올만한 큰 일이 터지면 "저는 정말 몰랐어요."하고 잡아떼면 그만일 것인가?


학부모의 보복성 민원으로 피말리는 마음 고생을 한 그 선생님도 신고를 이행하기까지 이게 과연 신고를 할만한 사안인가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다. 고심 끝에 '이것은 교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저 절차에 따를 뿐'이라는 결론으로 매뉴얼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신고자의 익명성 보장이란 말은 무의미했고, 신고자를 지켜주는 시스템은 부재했다. 절차에 따라 의무를 이행했을 뿐인데, 그 결과 일년 내내 자신을 괴롭히는 보복이 뒤따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하셨을 것이다. 시스템에 대한 믿음 뿐 아니라 학부모가 아동학대신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훈육방식을 수정할 것이라고 믿었던 마음도 같이 무너졌다.

해가 바뀌고 그 어머니는 그 선생님에 대한 괴롭힘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이 몸에도 더는 손대지 않는 듯하다. 만약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내가 그 사실을 인지했다면 나도 그 선생님처럼 신고할 수 있었을까? 그처럼 일사분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한편 내가 학부모로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다면?

손이 유난히 매운 나는 어쩌다, 정말 머리보다 한 발 빠르게 손이 우리 아들들에게 등짝 스매시를 날리기도 한다. 그러면 아들도 학교에서 배운 게 있어서 "아동학대하지 마세요!"하고 소리친다.

'한 대 더 맞을래?'라는 말을 삼키고, 사실은 쫙 소리에 나도 놀라 "앗, 나도 모르게 손이 발사되었어. 등 한 번 보자." 하며 등짝을 체크한다.

내 손바닥의 크기와 가격 방향이 정확하게 드러난다. 나도 아들도 손자국이 신기하고 어이없어서 같이 웃고 말지만, 내 속으로는 아찔한 생각도 든다. 만약 다음날 아이가 교실에서 선생님께 이 얘기를 하면서 슬프고 심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면 선생님도 그냥은 못 넘기실 것이다. 그래서 옷을 제껴봤더니 손바닥 자국이 뙇 보인다면 선생님은 절차대로 사진을 찍고, 학교장에게 보고를 하겠지. 아동학대 업무담당 선생님이 절차대로 신고하고 나면 곧이어 나에겐 학대담당경찰의 연락이 올 것이다.

이 상황에서 담임선생님이든 학교든, 경찰이든 부모가 원망해도 되는 대상은 없다. 무조건 수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저도 모르게 등짝 스매시를 날리고 말았는데 아이가 그렇게 힘들어할 줄 몰랐습니다.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해명하지도, 아이를 탓하지도 말고 이러한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경각심을 가지고 올바른 훈육방식을 배우는게 부모의 몫일 수 밖에 없다.


위 아이의 부모처럼 아동학대 신고에 대해 보복 심리를 가지고 신고자를 괴롭히는 행동은 아동학대신고의무자가 신고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학교의 아동학대신고절차에서는 신고의무자의 주관적판단을 최대한 배제한다. 아동학대 의심정황을 인지했기에 기계적, 자동적으로 신고했을 뿐 신고자가 아동의 부모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피신고자도 충분히 인식하도록 해야한다.

내가 학교의 아동학대업무를 맡았던 재작년에도 앞서 언급한 일과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었다.

징후 포착

2학년 여학생의 팔에 '자' 같은 것에 맞은 자국이 붉게 남아있었는데 급식실 순시로 전교생을 살피시는 교장 선생님이 마침 그걸 포착하셨다. 아이의 진술에 따르면 친구와 학원을 빼먹고 놀러갔다왔는데 아빠가 집에 있던 막대기로 때렸다고 했다.

증거 확보 및 즉시 신고

아빠의 입장을 들을 것도 없이 바로 신고 절차에 들어갔다. 업무담당인 내가 호출되었고, 담임은 아이의 옷을 들쳐 다른 폭행 자국이 없는지 확인하고 팔에 남아있는 붉은 자국을 증거사진으로 찍어 나에게 넘겨줬다.

그 아이를 본 적도 없고 그 아이 아버지도 전혀 모르는 내가 담임을 통해 전해들은 정황을 그대로 서술하고 사진을 첨부하여 신고를 접수했다.

수사기관 인계

그 뒤의 전개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경찰의 몫으로 넘어간다. 바로 그날 관할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경찰이 아이의 아버지를 직접 조사했다.

학교는 신고 의무에 따라 판단을 배제하고 절차대로 신고했을 뿐 이 사안에 대한 조사와 아동학대 여부에 대한 판단은 관련기관의 몫이다.

그 아버지의 진술에 따르면 아이가 평소에도 학원을 자주 빠뜨리고 말을 안들어서 훈육차원에서 매를 댔다고 한다. 관련기관은 이 사례를 아동학대보다는 '일반사례'로 분류하였고 학대로 번지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의 상담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 아이의 아버지는 이 일로 학교에 항의하지 않았고 자신의 훈육방식을 돌아보고 개선하는 계기로 삼으셨던 것 같다.


가정은 일반적으로 따뜻한 보금자리로 인식되지만, 현관문만 닫으면 그 어느 곳보다 폐쇄적인 공간이기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외부인이 볼 수가 없다. 가정의 가장 약자인 아이가 학대를 당하고 있다면 그걸 알아챌 수 있고, 알아채야만 하는 가장 가까운 존재는 그 아이를 담당하는 교사가 맞다.

이런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의무를 이행했을 때 학대행위자의 보복 대상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관 중심 신고 체계를 내실화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신고대상자가 교사와 학교에 대해 보복성 민원이나 고소를 자행할 경우, 무고에 대해 책임을 묻고 피해를 보상하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아동학대신고의무자는 교사 뿐 아니라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직업군의 종사자들이 모두 해당된다. 그들의 신고가 가정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아니라 아이를 위기에서 구하고 건강한 가정을 회복하도록 돕는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인식을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동학대와 그 신고의무자에 대한 보복성 민원을 생각하며 글을 시작했습니다.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 정인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어린이집에서 3번이나 학대신고를 했음에도 구조되지 못했던 게 경찰과 관련기관들의 대응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 분노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신고를 할 때마다 결국 집으로 돌려보내지고 정인이는 더 힘들어졌던 그 무력한 상황, 엄청난 고통에도 아픔을 표현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가만히 안겨있는 정인이 모습, 그런 정인이를 보듬는 선생님 모습에 눈물이 솟았습니다. 이제는 그 때보다는 낫겠지요? 제발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제 글 속의 사례들은 정인이 사건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부모의 훈육방식이 그릇되어 일어나는 아동학대 의심신고의 일부 사례였지요. 많고 많은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이렇게 일반사례로 분류되더라도 정말 도움이 필요한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보복성 민원 따위, 안일한 기관 대응을 미리 걱정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습니다.


2026년 1월 1일입니다. 브런치에서 만난 소중한 구독자님, 작가님 모두 2026년 한 해도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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