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곶은 간절곶에 있어요

그래, 맞네

by silvergenuine

3학년 사회 교과에서는 각 지역별로 '우리 고장'을 중점적으로 배운다. 3학년 담임을 맡아 내가 거주하는 우리 고장 울산에 대해 가르치던 중 전체학생 대상으로 발문을 던졌다.

"여러분, 우리 울산에서는 일출을 보러 간절곶에 많이 가지요? 간절곶이 어디에 있을까요?"

간절곶이 울산에서 나름 유명한 곳이라 한 번쯤 가본 학생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수업 흐름에 도움이 될만한 답변을 기다렸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의 모습까지 열 살 아이들과 다 나누고 싶었다.

발문을 던진 지 0.5초 만에 경쾌한 답변이 들려왔다.

"간절곶이요."

'띵... 간절곶이 간절곶에 있다고?

그렇군. 내가 왜 그런 질문을 던져가지고 이런 답변을 듣고 있지? 아, 집에 가고 싶다.'

웃어줄까, 화를 낼까.

웃어 넘기기에는 내 냄비의 과열로 이미 퓨즈가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정색하기로 했다.

"간절곶이 어디 있는지 묻는데 간절곶에 있다고 대답한 거야? 도대체 그 대답의 의도는 뭐지? 선생님 질문에 제일 먼저 대답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제발 질문을 이해하고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대답을 하자. 모르면 굳이 네가 대답하지 않아도 돼. 다른 사람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면 되니까.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한 후에 말을 해야지, 뇌를 거치지 않고 듣자마자 바로 입이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방금 네 대답에 솔직히 난 화도 나고 힘도 빠져. 적어도 바닷가 정도의 대답만 해주어도 그대로 수업을 이어갈 텐데, 아까 그 대답은 수업을 툭 끊는 느낌이야. 설마 그 대답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누군가는 재미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아니야.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교실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었고, 녀석도 그 시간만큼은 입을 닫았다.

너무 심하게 말했나? 어린 마음에 상처를 주었을까?

살짝 든 염려가 무색하게 요 녀석은 굴하지 않고 그 뒤로도 일 년 내내 '발문 직후 자동 발사 내가 대답할 거야!'를 포기하지 않았다. 새침한 도련님 같은 첫인상을 주었던 이 친구는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싶어 하는 마음에 비해 타인에 대한 이해나 너그러움,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 부족했기에 친구들과도 갈등이 잦았다. 이렇게 보면 인간관계의 기본 태도와 수업 태도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누구나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잘 듣는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의 발현이고, 잘 들으면 말의 이면까지 파악하게 되어 상대가 바라는 리액션을 할 수 있다.

반면 제대로 듣지 않고 상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과는 대화다운 대화가 되지 않는다.


수업도 마찬가지라서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그 수업을 살린다. 수업을 이끄는 교사, 발표하는 친구에게 눈길을 고정하고 듣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사람은 수업에 빛과 같은 존재다.

반대로 수업 주제, 발문 의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떠오르는 말을 내뱉는 행동은 수업의 맥을 끊고 교사를 지치게 한다.

간절곶이 간절곶에 있다는 대답에 웃어줄 수 없었던 나는 그 친구의 그런 행동에 자주 진이 빠졌고 그만큼 자주 나무랐다.


다음해 그 친구가 4학년이 되어 새로 만난 담임선생님께 여쭈어보니 놀랍게도 그 분은 그 친구의 행동에 크게 개의치 않으셨고 그에 부응해 아이도 그런 행동을 많이 줄이게 된 것 같았다. 그것만 빼면 장점이 더 많은 아이였는데, 어찌 보면 나 또한 그 아이의 진짜 말을 못 들어준 건지도 모른다.

'간절곶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간절곶 있는 곳에 있을 거고요, 난 선생님께 인정받고 싶고 친구들을 웃기고도 싶어요. 그런데 똥볼을 찼나 봐요, 다음에 다시 만회해 볼래요.'

관심을 끄는 방식이 서툴렀던 그 아이를 성가신 방해자로 여기지 말고 좀더 여유있게 바라봐야 했다. 잘못된 행동에 반응하기보다 바른 행동을 할 때 더 큰 관심을 줬다면 아이도 점차 더 건강한 소통 방식을 배워갔을 것이다.

사실 그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겐 쉽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그 해 자꾸만 달궈졌던 내 냄비가 다 식은 이제서야 그 아이가 아닌 나의 부족함이 만져진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나도 아직 자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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