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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개의 로마(5)

-보편제국 이념을 중심으로-

by 글쓰는 인문학도 Jan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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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로마적 정체성을 둘러싼 인식과 해석



- 보편제국 이념의 탄생




 1. 들어가며: '로마적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여러분이 중세 유럽 역사를 처음 접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동로마 제국, 신성 로마 제국, 교황령 국가... 이름만 들어도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나라가 모두 '로마'라는 이름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그들은 왜 스스로를 '로마'와 연결 지으려 했을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로마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적 정체성'은 단순히 로마라는 국가나 민족에 대한 소속감을 넘어, '영원한 보편 제국'으로서의 로마가 가진 이상과 가치를 의미합니다. 즉, 전 세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통일된 제국,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보편적인 법과 질서 아래 살아가는 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바로 '로마적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은 중세 시대 내내 유럽의 정치, 사회,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동로마 제국, 신성 로마 제국, 교황령 국가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 '로마적 정체성'의 뿌리: 고대 그리스 철학과 로마 제국의 팽창


  그렇다면 '영원한 보편 제국'이라는 이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2.1. 플라톤의 이상 국가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모든 국가가 따라야 할 이상적인 국가의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플라톤이 꿈꾼 이상 국가는 단순히 한 도시나 민족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를 포괄하고 모든 국가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와 질서를 담고 있는 국가였습니다. 비록 현실에 완벽하게 구현되기는 어렵지만, 모든 국가가 추구해야 할 이상향으로서의 '보편 국가'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입니다.


2.2. 스토아학파의 보편주의


  플라톤 이후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보편적 공동체에 대한 사상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이들은 모든 인간이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 동등하며,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공동체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보편주의(Universalism) 사상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과 함께 헬레니즘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면서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했고, 스토아학파의 보편주의는 이러한 제국 이념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2.3. 로마 제국의 팽창과 세계 제국 이념


  한편, 서쪽의 작은 도시 국가였던 로마는 기원전 1세기 무렵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로마는 정복한 지역에 로마법과 행정 제도를 보급하고,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용하면서 세계 제국으로 팽창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팽창에 발맞춰 로마에서도 '로마'와 '세계'를 하나로 보는 사상, 즉 세계 제국 이념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세계(orbis terrarum)'와 '제국(imperium)'은 동일한 개념으로 여겨졌고, 로마 제국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제국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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