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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디자이너의 연봉협상

타이밍이 찾아와요.

by Soo 수진 Feb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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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한국에 가기 전 연봉 협상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북미에서는 이를 Performance Review라고 부르며, 관리자와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직원의 업무 성과를 공식적이고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이다.

처음 해보는 협상이라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매년 정해진 날짜에 오너와 연봉 협상을 했었지만, 사원, 대리, 과장 등 직급별로 인상률이 정해져 있어 별다른 협상 없이 자동으로 조정되곤 했다. 과장으로 일할 때도 매년 조금씩 오르는 수준이었다.


여기 캐나다의 경우는 어떤지 사실,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회사마다 다 다르기도 하고, 구글로 찾아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나보다 먼저 입사한 동료에게 분위기가 어떤지 묻는 게 더 확실할 것 같았다. 10월에 회사에 입사했으니, 한국 가기 전 12월에 연봉 협상을 끝내고, 2025년부터는 인상된 임금을 받기를 기대했다.


12월이 다가오니 마음이 급해졌다. 먼저 입사한 동료에게 물으니, 오너에게 연봉 협상 리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며칠 기다리면 날짜를 알려준다고 했다.

그런데 동료는 협상이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적어도 3번은 해야 한다고 했다.

‘아… 심란했다. 3번이라니. 이 불편한 연봉 협상을 3번이나 오너와 만나서 해야 한다니...’

‘하지 말까? 연봉 협상?’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서 머릿속에서는 이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오너에게 이메일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연봉 협상은 한국이나 캐나다나 쉽지 않구나'라고 느꼈다.

그러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해야 할 디자인 작업들이 쌓여가고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의 연봉 협상은 점점 잊혀갔고, 나는 바빠지면서 지쳐가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5시에 퇴근하지만, 퇴근 전까지의 일 강도는 꽤 센 편이다. 집중해서 마치 로봇처럼 일을 해내고, 5시가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한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한 나는 처음에 캐나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 5시 퇴근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때는 6시에 퇴근하더라도 30분을 넘기면 이사에게 불려 갔다.

"디자인 3팀 일이 없나 봐. 일찍 퇴근하는 걸 보니, 이 프로젝트 오늘부터 3팀이 맡아요!"

"회의할 때 그 프로젝트는 다른 팀이 맡기로 했잖아요. 저희 팀도 일이 많은데 힘듭니다."

퇴근시간에 퇴근을 하는데도, 야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팀의 일을 떠맡았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일이 없어도 야근을 했던 나날들이었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캐나다와 한국 직장 생활의 또 다른 차이점은 점심시간이다. 한국에서는 12시가 되면 팀원들과 함께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미리 얘기하고 곧바로 맛집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맛집에선 줄을 서야 하니 빠르게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본인이 싸 온 도시락을 자리에서 먹거나 음식을 픽업하거나 나가서 먹고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 같이 점심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아주 가끔 피자 한 판을 시켜 팀원들과 나눠 먹기도 하지만, 정해진 시간 없이 본인이 점심시간을 쓰고 싶을 때,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중요한 건 자기가 맡은 일을 시간 내에 잘 해내는 것이다.

처음엔 점심 문화가 한국과 달라서 고요한 점심시간이 어색했지만, 이제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만족스럽다. 사무실 주변을 산책하며 계절의 바람과 햇살을 느끼고, 그날 하루의 기분을 조금씩 느끼는 데 충분하다. 그 시간이 있어 바쁘게 보내는 하루 중에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몹시 지쳐 있던 어느 아침, 교통체증에 이미 지친 출근길, 며칠 동안 쌓여있는 일들, 불면증으로 잠을 잘 수 없어 예민해진 날이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을 때, 오너가 내 자리로 왔다.

"Soo, 오늘 네가 해야 할 일은..." 옆에서 나에게 해야 할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지만, 나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디자인 시안은 계속해서 쌓여갔고, 머릿속은 텅 비어 있는 듯했다.

 "Okay! 알겠어, 디자인 시안을 곧 보여줄게."

두 가지 디자인 시안을 들고 오너가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오너는 시안을 보고 마음에 든 듯 하나를 선택했다.

나는 할 말이 있는 듯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전날 몸이 좋지 않아 패밀리 닥터를 만나러 가야 해서 두 시간 정도 일찍 퇴근했었고, 나를 바라보는 오너는 무언가 일이 있음을 짐작한 것 같았다.

"Soo! 무슨 일 있어?" 오너가 내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있잖아, 할 말이 있어."

"무슨 일이야? 말해봐." 오너가 물었지만, 갑자기 내 상태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마저도 귀찮게 느껴졌다.

"아니, 아무것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뒤돌아서려는 순간, 오너가 내 손목을 붙잡고 눈을 마주치며 촉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Soo, 무슨 일이야. 어제 패밀리 닥터 만나고 왔잖아."


나는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출퇴근길의 피곤함은 정말 크다. 캐나다의 도로는 통행료가 있는 유료 고속도로와 없는 무료 고속도로가 있다. 유료 도로를 이용하면 출근할 때마다 $23.33의 비용이 발생하고, 퇴근할 때도 또 같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하루, 한 달이 지나면 그 비용이 모여 큰 부담이 된다. 특히 연간으로 보면 그 금액이 꽤 큰 액수여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막히는 무료 고속도로를 타게 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내 바람은 연봉 협상도 중요하지만, 출퇴근길에 유료 고속도로를 이용해 교통체증을 겪으며 매일 피곤함을 느끼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 월급에서 매일 통행료를 지불하며 출퇴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연말이 되어 끝내야 하는 잡지들과 쌓여있는 일들, 그에 따른 피곤함과 지치는 나날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은 늘 꽉 막혀 한 시간이 훌쩍 넘기 일쑤였다. 5시에 퇴근해도 집에 도착하면 6시 10분에서 20분. 피곤한 날엔 그 시간이 더 길고 지치게 느껴졌다. 유료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단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지만, 그 비용을 내 월급에서 부담하고 싶진 않았다. 회사가 이를 지원해 주길 바랐지만, 먼저 꺼내진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연봉협상을 더 좋은 흐름으로 풀어나가고 싶었다.

그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양과 피로를 오너에게 토로할 뿐이었다.


그런데 출퇴근 시간이 힘들다고 말한 순간, 오너가 먼저 말을 꺼냈다.

"Soo! 내일부터 유료 고속도로를 타. 왜 그동안 힘든데 유료 고속도로를 안 탔어? 힘들었겠다." 하며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사실, 나는 이 부분만 해결되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오너가 먼저 그걸 해주겠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었다. 그 순간 문득 연봉협상이 생각났다. 늘 출퇴근만 해결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연봉협상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기회’였다. 이때 아니면 또다시 연봉협상 때문에 이메일을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것 같았고, 여러 번의 협상으로 지치고 싶지 않았다.

"나, Performance Review도 해야 해. 할 때가 됐어. 그리고 내가 지금 내 일을 잘하고 있는지, 회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피드백을 받고 싶어."

"그래! Soo, 유료 고속도로도 타고, Performance Review도 하자!"

와우! 이렇게 한 번에 두 가지를, 그것도 오너가 먼저 말하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Soo, 너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고, 너와 함께 계속 일하고 싶어. 그리고 그동안 네가 한 일들은 놀랄만한 일이었어. 앞으로 그렇게 함께 일하자. 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그녀의 말은 거짓이 섞이지 않은 진심이었다. 그녀의 초롱거리고 감정이 섞인 촉촉한 눈빛을 보니 그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 내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을 잘 처리하고 있는, 내 몫을 잘 해내고 있는 디자이너였구나!'

내 생각과 달리 나는 인정받고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녀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 자리로 돌아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가만히 눈을 감고, 처음 회사에 들어온 날과 지금까지의 나를 뒤돌아 봤다. 캐나다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일이 내가 대학 다닐 때 늘 했던 말이었다.

'나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 있는 디자이너가 될 거야' 그 말은 그저 하나의 바람 같은 거였다. 그 바람은 늘 말버릇처럼 내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캐나다라는 세상에서 디자이너로 살고 있지 않은가? 나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HTJ_magazine_Vol_8_2024 디자인 작업_ 2024년 좋은 피드백을 받았던 디자인.


오너와의 대화를 마친 뒤, 총무팀에서 곧바로 유료 고속도로 이용을 위한 정보와 함께 내가 그동안 어떤 디자이너로 일해왔는지에 대한 간략한 성과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그리고 Performance Review 미팅 날짜도 명시되어 있었다. 그동안 고민하며 미뤄왔던 일들이 한꺼번에 해결된 순간이었다. 오히려 회사 측에서 나에게 세심하게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을 미안해할 정도였다. 마치 그동안의 힘듦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며칠 후, 10가지의 Performance Review 질문을 받았고, 각 질문에 대한 답을 작성해 제출해야 했다.

질문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지난 평가 기간 동안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나요?

본인의 가장 큰 성취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며, 업무에 어떻게 기여했나요?

동료 또는 팀과의 협업을 어땠나요?

클라이언트와 팀원들은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앞으로의 업무 목표는 무엇인가요?

추가적으로 배우고 싶은 기술이나 개발하고 싶은 역량이 있나요?

회사나 팀이 본인의 성장을 위해 어떤 지원을 해 주었으면 좋겠나요?

이메일로 답변을 보낸 후 며칠 뒤, 아트디렉터와 총무팀 매니저를 다시 만나 Performance Review를 진행했다.

그들은 마치 면접을 보듯 한 사람씩 돌아가며 몇 가지 질문을 했고, 나는 차례로 답변했다. 내 대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나의 노고와 태도를 칭찬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제시한 금액과 내가 원했던 금액의 중간 지점에서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연봉 협상은 좋은 타이밍과 흐름 속에서 원만하게 마무리되었고, 머뭇거렸던 시간이 결국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성급하지 않고 내 기준을 정해 차분히 접근했던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간을 통해 내가 배운 점이 있다면,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는 것과 기회는 찾아오고, 준비된 사람이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내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았고, 그저 내 할 일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 나를 회사는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내 자리에서, 내가 사랑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내고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준비를 하며, 기회가 찾아올 때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 작업에 자신이 있고, 성과를 낼 만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클라이언트와 동료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때 연봉 협상을 해도 늦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연봉을 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충분한 성과를 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걸.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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