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록들이 모여 언젠가 한 권의 이야기가 되리라 믿는다.
글을 쓰는 일이 지금의 나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 데에는 작은 이유가 있었다.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던 누군가를 내 마음에서 하나씩 지워내기 위해, 치유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인스타그램이었다. 글과 사진을 올리는 계정을 만들어, 쓸쓸하고 힘든 순간마다 주고받던 사랑의 언어들을 되새겼다. 다짐과 웃음, 다정한 행동과 사랑스러운 말들… 그 모든 기억을 글로 남기며 마음을 달랬다.
그때 내 글을 읽고 위로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몇몇은 지금까지도 안부를 나누며 연결되어 있다.
결국 글은 나를 다독이는 손길이자, 내가 다시 일어서기 위한 언어가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과 사색을 담아내는 방법이 된 것이다.
그때마다 마음이 힘들면, 나는 존경하는 멘토에게 자주 메일을 보냈다. 모든 마음을 다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글에는 늘 내 감정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멘토가 내게 물으셨다.
“수진, 네 글은 참 좋아. 솔직하고 담백해. 읽고 있으면 내가 너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듯 해. 네 글이 곧 너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계속해서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 지금처럼 수진다운 글을.”
그 말은 어린 나를 다정하게 칭찬해 주는 선생님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제가요? 아… 아니에요. 이건 그냥 간단한 안부 인사 같은 거예요. 저는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저는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쑥스럽게 웃으며 아이처럼 대답했다.
그러자 멘토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무슨 소리야. 수진이가 잘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내가 오래 지켜봤지만, 너는 아직 너를 다 발견하지 못했구나. 넌 글을 잘 써. 디자이너의 감각도 가지고 있고, 지금도 디자이너로 살아가고 있잖아. 캘리도 얼마나 잘 쓰는데! 너다운 모습이 이렇게 많은데, 정작 너는 모르고 있었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이셨다.
“글, 놓치지 말고 꼭 써봐. 네가 세상에 첫 책을 내게 되면, 내가 디자인해 줄게. 수진이의 첫 책을.”
“앗, 정말요? 그 약속 꼭 지키실 거죠?” 나는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나의 세상에서 그분을 닮고 싶었던 20대, 30대를 지나며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분 앞에 서면 나는 여전히 아이 같았다.
“너는 잘하는 게 많은 사람이야.”
그 한마디가 나에게 얼마나 큰 감격이었는지 모른다. 그분의 이름과 회사만 말해도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분이었기에, 그날의 대화는 지금도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다.
내 곁에서 언제나 응원과 격려, 자신감과 따스함을 주던 가까운 작가분도 마침 비슷한 말을 했었다.
“수진, 글을 써. 네 마음에 있는 감정과 슬픔, 환희와 고독, 고통과 아픔을 글로 풀어내면서 자기 자신을 표현해 봐. 나는 네 글이 좋아. 계속 써봐!"
그분은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그 말은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내 인생의 한 방향을 열어준 조언처럼 다가왔다.
그러다 시간이 흘렀다.
한국에서 다시 만난 그 작가는 또다시 내게 글쓰기를 권했다. 이번에는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을 자세히 설명해 주며, 그곳에 글을 쌓아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건넸다.
사실 나는 그 단어가 낯설었다. 캐나다에 살고 있었고, ‘작가’라는 말은 내 삶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단어 같았다. 무엇보다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늘 답답할 때, 혹은 마음을 풀고 싶을 때 블로그에 글을 쓰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여러 번의 권유 끝에, 나만의 글을 남겨보자는 마음으로 캐나다에 돌아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네 편쯤 올렸을까. 그런데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제야 ‘작가 신청’을 해야만 비로소 내 글이 다른 이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조심스레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정보를 입력한 뒤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며칠 후,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뜨거운 환희가 불꽃처럼 번져갔다. 누군가의 인정이 아닌, 나 스스로의 글이 나를 새로운 자리로 데려간 듯했다.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그 벅참은 더 오래 마음속에 머물렀다.
아는 지인들 중에도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가 여러 번 실패하고 결국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처럼 단번에 합격한 걸 두고 놀라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제야 ‘브런치 작가 되려면’을 검색해 보았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턱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나는 정말 아무런 정보도 없이 도전했고, 그저 글을 썼을 뿐인데, 뜻밖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다.
그 단어 하나가 내 안을 환히 밝히며 자신감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마치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 같았다. 그렇게 나는 기대를 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25년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이 선물 같은 기회는,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도전이었다. 동시에, 내 삶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일들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지금 나는 예전과는 다른 하루를 살고 있다. 캐나다의 자연에서 느낀 다정한 감정을 기록하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며 겪는 일상을 풀어내며, 내 마음의 온도를 글로 남기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구독자 수가 아직 많지 않아 때로는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는 이곳 캐나다에서 나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가려 한다.
살면서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던 ‘작가’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앞으로의 삶을 그려보니, 그저 행복하다.
나의 마음이 모이고, 나의 일상이 쌓여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지금의 삶과 함께 또 다른 길을 만들어가고 싶다. 글을 쓰며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내가 되길 바란다.
낯선 나라에서 하나씩 이루어낸 작은 꿈들처럼, 이제는 ‘작가’라는 더 큰 꿈도 차근차근 꾸어본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여전히 쓰는 중이다. 작은 기록들이 모여 나의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가 모여 언젠가 한 권의 이야기가 되리라 믿는다. 이제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내 삶을 천천히 적어 내려간다.
Just as I am, 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