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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만난 따뜻한 독서모임

9월의 모임을 기다리는 설레는 모임하나.

by Soo 수진

캐나다에서 독서모임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구독자 @별빛소정 작가님의 글에서 독서모임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도 저런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미친 PD 작가님의 북토크 후기를 읽을 때면 괜히 마음 한구석이 부럽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 이곳 캐나다에서는 내게 바람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책을 그저 가볍게 읽는 편이었다. 좋아하는 책은 소장품처럼 책장에 꽂아두는 걸로 만족했고, 가끔은 한국의 친구가 보내주는 선물 같은 책을 받아 읽곤 했다. 이곳에서는 한국 베스트셀러를 쉽게 찾을 수 없으니,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봐도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가까운 작가가 추천해 주는 책들은 대개 문학적인 작품들이라 내겐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책을 가까이하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물론 변명일 수도 있다. 전자책을 읽을 수도 있고, 한국 서점에서 주문해 받아볼 수도 있고, 영어 원서를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한글로 된 종이책을 직접 넘기며, 손끝에 종이의 감촉을 느끼고, 마음에 닿는 문장에 줄을 그으며 읽고 싶은 사람이다.


한국에 있을 때, 가까운 작가의 작업실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의 책들은 마치 하나의 그림처럼 반듯하게 전시된 듯 놓여 있었다. 정갈했고, 크기와 두께가 다양한 책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이 책들을 정말 다 읽으셨어요?”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면 그의 지식은 얼마나 깊을까? 상상력은 또 얼마나 풍부할까? 얼마나 조리 있게, 지혜롭게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그의 작업실에 가득한 책들을 보며, 나는 그의 이미지를 한층 더 크게 그려보았다. 그의 탁월한 말솜씨와 대화를 이끄는 성숙함, 그리고 어른스러움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다 글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을 때 알게 되었다. 내 글이 아직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표현도, 단어도 어딘가 서툴고 비어 있다는 걸 느끼면서 책을 더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글을 쓰려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단 한 번도 꾼 적은 없었지만, 글을 쓸수록 책이 그리워졌다.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접하면서, 나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계의 문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글을 읽을 때면, 크고 거대한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상상을 하곤 한다.

도서관에서 한국 책을 찾으면 다섯 권 중 두세 권만 겨우 나온다. 그래서 자주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동네에 작은 책방이 하나 있다면, 그곳에서 독서모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사는 이곳에는 그런 공간이 없기에, 마음속에 조용히 담아둔다.

때로는 이렇게도 상상해 본다. ‘차라리 내가 책방을 만들어버릴까?’ 그런 상상은 내게 희망을 준다. 마치 하얀 구름을 타고 떠다니는 듯한 가벼운 설렘을. 책에 둘러싸여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햇살이 살랑이는 오후에 커피 한잔과 음악을 곁들이며 글을 쓰는 시간.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풍경 아닐까.


얼마 전, 생각만 하던 독서모임이 실제로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여러 검색창에 찾아보니 없던 모임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캐나다 독서모임’을 발견했다. 아마도 나처럼 갈급했던 누군가가 만든 방일 것이다. 8명 정도 모여 있는 작은 채팅방. 며칠 전에는 8월에 읽은 책을 나누는 줌 미팅을 했다.

“안녕하세요.”
다정한 인사와 함께 시작된 대화. 그 순간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눈다는 것, 나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살면서 ‘독서모임’에 직접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는 곳이 달라 온라인으로 만났지만, 저녁시간에 모여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책을 중심으로 모였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말에 차분히 귀 기울이며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비록 직접 만나서 감정을 주고받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저 이런 모임이 내 삶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날의 주제는 한강 작가의 『아랍어 시간』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세상에 나오고, 또 그 글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요. 한강 작가님의 문장은 하나하나가 너무도 정교하고, 그냥 쓰인 문장이 없어요.”

누군가의 말에 모두가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다. 각자가 느낀 책의 세계를, 저마다의 언어로 풀어내며 우리는 깊고 잔잔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책을 사랑하고, 한국 책을 구하기 어려운 이곳에서 낯선 이들과 모국어로 감정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귀한지,
그날 모임이 끝나고 나는 오래도록 마음이 즐거웠다.

“나와 같은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즐겁고,

삶이 조금 더 넓어진 기분이었다. 이제는 다음에 있을 9월의 모임이 벌써 기다려진다.
모두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지금도 내 마음은 따뜻하다.

‘나에게 책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 함께 나눌 수 있는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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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모임을 위해 읽고 있는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다운타운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탈 때 이제는 책을 가지고 다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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