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문자

12. 세 번째 연극

by 수수

둘째 딸은 손목을 스르륵 놔줬다.


"넌 분명히 최미소의 약점이 될 거야. 가봐."


둘째 딸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문수는 다시는 이 자매랑 엮이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빌라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이 동네를 향해 오줌도 싸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더러운 동네, 하찮은 주민들. 사주팔자에 미쳐서 풀떼기 하나를 돈백만원에 사고파는 인간들, 자기 사업은 지키면서 본인 목숨 하나는 지키지 못하는 바보천치들.


다시 여관으로 돌아온 문수는 하루 종일 TV만 시청했다. 그러다 너무 배고파지면 여관 옆 편의점으로 나가 얼른 즉석식품을 사 와 먹었다.


다행히 여관주인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문수를 못 알아보는 듯했다.


TV 속 문수는 악마와 괴물처럼 그려졌고, 최대 사형 구형이라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만 지껄였다. 여관 안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본인 하나 못 잡으면서 사형 구형? 문수는 웃기지도 않았다.

경찰은 수사의 난항을 겪고 있다고 했다. 지문이 뚝뚝 끊겨 있어 지문 인식이 어렵다는 것이다.


문수는 자신의 손바닥을 펴봤다. 생활비가 급해 잠시 어선을 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그물을 맨손으로 만져 양 손바닥이 크게 다쳤는데, 그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게 이렇게 사람을 도울 줄 몰랐네.


TV에선 날카로운 곳을 짚었다. "이런 지문 모양이면 어선을 탔던 사람이거나, 타는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선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문수에겐 멍청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바보 같은 놈, 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수사하게? 문수는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 하나같이 웃겼다. 자신도 저런 말은 기가 막히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경험자로서 말이다. 어선 종류가 몇인데 모든 항구 다 뒤져가며 이런 손바닥 알고 계시냐고 묻게? 문수는 실소가 나왔다.


문수는 2주의 장기투숙이 끝나고, 그 동네와 가장 먼 시골로 내려갔다. 단정했던 외모는 없어지고 다시 수더분해진 문수는 몽타주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사이 살도 많이 빠졌다. 몽타주나 신원정보로는 문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동네 분위기는 조용했다. 고층빌딩은 하나도 없는 저층 빌딩만이 존재했다. 차가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작은 상점들이 멀찌감치 서로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녔다. 문수처럼 젊은이들은 1~2명 보이고, 대부분은 주름이 나이를 말해주는 노인들뿐이었다.


사실 전문가의 '어선' 얘기에 비웃긴 했지만, 혹시 몰라 농촌 시골로 내려왔다. 수사망이 일단은 '어선'으로 좁혀질 테니 어촌은 피했다. 정확히는 다시 감옥에 가서 다시 그놈을 만날까 봐 무서웠다.


이제 문수의 세 번째 연극이 시작됐다. 김성진과, 최미소의 특별출연이 끝났다. 그리고 이제 펼쳐질 새로운 연극 장치들은 뭘까.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바로 이게 내 연극의 묘미지.



버스 터미널에서 그리 많이 떨어져 있지 않은 부동산의 문을 열었다.


짤랑.

부동산 문의 종소리가 울렸다.


"저, 사장님. 혼자 살 건데 매물 있나요?"

keyword
이전 11화마지막 방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