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문자

11. 둘째 딸

by 수수

한경수는 또 누구야, 아이씨. 문수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미소에게 완전히 속은 것이다. 그 집에서 살라고 했던 것은 그냥 잡혀 들어가란 소리였다. 문수는 꽤나 연극이 재밌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문수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앉은 어르신의 모자를 훔쳐 쓰고 버스 터미널을 나갔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야 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이마저도 재킷을 벗는 일이 전부였다. 문수는 재킷을 벗고서 곧바로 주변 전당포를 찾아 차고 있던 시계를 맡기고 50만 원의 돈을 챙겼다. 50만 원 중 일부로 마스크, 후드티, 청바지, 운동화를 산 문수는 주변 여관에 들어가 장기투숙 손님으로 결제했다.


여관에 들어오자 쿰쿰한 냄새가 났다. 옛날 옥방살이 할 때 매일같이 맡았던 이 냄새. 문수는 고작 몇 달 만에 이 냄새가 악취로 느껴졌다. TV를 틀어놓고 뉴스를 보며 몸을 잽싸게 씻은 후 언제나 도망갈 수 있도록 실내에서도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뉴스는 24시간 동안 사건을 취재했으며, 아직 문수의 행방은 밝혀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김성진이 살인자 명단에서 빠진 것.


진짜 김성진으로 만들어 준다던 미소의 말이 생각났다. 이번엔 믿어도 되는 걸까. 문수는 재킷 안에 있는 김성진의 지갑에서 김성진의 주민등록증과 카드들을 확인했다. 아직 김성진의 행방을 경찰이 눈치채지 못한 거면 미소의 말처럼 문수는 김성진으로 살아갈 수가 있었다.


지갑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뉴스박스에서 한경수라는 사람이 직접 나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보자, 저 사람이 그 도자기 명장인가 하는 놈인가.


"중고거래 앱으로 이 사실을 인지하셨다고요."


앵커는 침착하게 물었다.


"네, 김채환 작가는 절대 그 달항아리를 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달항아리가 두 분 사이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저와의 우정 증표입니다. 절대 팔리가 없어요. 김채환 작가는 어제도 저와 만났습니다. 우리 사이에 아무런 이상징후가 없었어요."


하, 문수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저런 달항아리인 줄 알면서 팔라고 했던 미소의 꿍꿍이는 뭐였을까. 자기 아버지 사업 자기가 물려받고 싶어서? 설마 그것 때문에 그런 거라면 단단히 미친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해서 인터뷰는 이어졌다.


"그럼 한경수 명인은 어떤 부분에서 고 김채환 작가가 아니라는 점을 눈치 채신 건가요?"


"우리가 장소를 지정할 사이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장소를 지정하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못 올 것 같다며 대문에서 갖고 가라고 하더라고요. 이건 완전 문전박대입니다. 그럴 리가 없지요."


"이번 사건 최초 신고자이신데요, 앞으로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이 됐으면 하시나요?"


"범인을 꼭 잡아야 합니다. 몸이 많이 아프셨어요. 이제 조용히 사시는가 싶었는데 이렇게 세상 시끄럽게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반드시 꼭 잡혀서 엄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빌어먹을. 문수는 저런 의미에 달항아리라면 자신도 충격이 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미소, 이 미친년. 미소부터 찾고 싶었다. 도대체 저의가 무엇이냐고. 그냥 본인 부모님 죽었을 때, 신고를 했으면 될걸. 왜 일을 더 키워서 본인까지 괴롭게 만드는지 이유를 묻고 싶었다.


밤이 깊었다.


슬슬 인적이 드물어졌을 때, 문수는 미소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미 비밀번호는 바뀌어 있었다. 현관문을 쾅쾅 두드려 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문수는 현관문틈 사이로 조용하게 말했다. "지금 문 안 열면 나 소리 질러 버린다." 그래도 묵묵부답인 현관문.


"아이씨ㅂ..."


띠리링.

현관문이 열렸다.


"들어와, 얼마나 억울할까. 꼴 좀 봐. 하하하."


미소는 집 안에서 문수를 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문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미소를 가벽으로 밀어붙여 이게 다 어떻게 된 거냐며 물었다.


"이거 안 놓으면 말 안 해, 나도."



문수보다 더 살기 가득한 눈으로 문수를 노려보며 옅은 웃음을 짓고 있는 미소.

미소를 놔주고 다시 한번 어떻게 된 건지 되물었다.


"보이는 그대로야. 넌 스스로 걸려든 거고. 우리 부모님의 죽음은 김채환 선생님 죽음에 가려져 조용하게 회사 승계받고. 너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그걸 내가 왜 말해야 되는데?"


"나한테 말해야 할걸? 너도 눈치챘겠지만 김성진은 피해자 명단에 오르지도 않았어. 이유가 뭘까? 다 내 덕이지. 내가 말했잖아. 너를 김성진으로 만들어주겠다고."


그때였다. 현관문 카드키가 닿아 현관문이 열렸다.

둘째 딸이었다. 이미 뉴스를 본 듯한 표정이었고, 문수와 미소를 번갈아 쳐다봤다.


"새 남자는 아닌 거 같고. 누구야? "


미소와 닮은 듯 안 닮은 둘째 딸은 미소에게 물었다.


"그것까지 내가 너한테 일러 받쳐야 해?"


자매 사이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문수는 일단 미소에게서 김성진 신분은 확보가 되었다는 대답을 들었으니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둘째 딸이 현관문 밖으로 나와 문수의 손목을 잡았다. 놀란 문수는 손목을 빼내려고 했지만 힘이 어찌나 센지 손목이 빠지지 않았다.


둘째 딸은 미소처럼 동공이 확장되다 못해 초점을 잃은 눈으로 문수에게 말했다.


"야, 너구나? 네가 우리 언니한테 승계권 기회 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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