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달항아리
도착한 곳은 대단지 단독주택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마당만 100평쯤은 되어 보였다. 문수는 '휴우' 하고 한숨을 내뱉고 초인종을 눌렀다.
"아이고, 김여사가 보낸 총각이구만. 들어오셔요."
초인종 안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미소가 이미 연락해 놨는지 문수가 방문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대문이 열리자 엄청나게 화려한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입장료를 내고 구경해도 모자랄 만큼 매우 멋있었다. 연못과 함께 바로 옆에 있는 버드나무가 장관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한참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정원을 한 바퀴 돌게 만들어 놓은 길은 긴장한 문수의 마음을 잠시 쉬게 해 줬다.
드디어 도착한 현관문. 문수가 노크를 하려고 주먹을 올리는 순간, 문이 열렸다.
"아이고, 선생님. 귀한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어오세요."
개량한복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자. 미소가 말한 남자가 이 남자구나. 일단 문수는 목적물부터 확인했다. 집 내부는 더 장관이었다. 샹들리에 전등부터 시작해 고급 앤틱가구가 넘쳐났다. 그리고 거실에는 유리큐브 속 큰 달항아리가 있었다. 저거구나. 문수는 벌써 모든 목적물을 확인했다.
일단 식탁으로 안내한 남자는 차를 끓여 왔다. 전통 다도식으로 차를 따라줬는데, 따라주는 순간부터 차 향이 그윽했다.
"인삼차예요. 귀한 손님이 올 때 대접하는 차죠. 드시죠."
문수는 이렇게 예의 바르고 공손한 사람을 목적 없이 죽일 동기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동기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미소에게 정체가 들킨 것 빼고는 없었다. 문수에겐 그것은 살인을 유발할 만큼 큰 동기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저희 집 사신다고요? 안 나가서 걱정 많이 했습니다. 저도 이제 정리하고 조용히 살려고 해서요."
"네, 큰 집을 찾고 있는데 김여사 님이 이곳을 추천하시더라고요. 미소씨도 그렇고요."
"미소도 아시나 봐요?"
"가끔 봤죠. 방학 때나."
문수는 거짓말이 꽤나 늘었다. 배우로서 성장한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에 잠시 문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나, 많이 성장했네. 하며 스스로를 기특해했다.
"무슨 불편한 일이라도..?"
문수가 고개를 떨구자 오해를 한 듯, 중년의 남자는 바로 문수의 안부를 물었다. 문수는 잠시 다른 생각을 했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눈으로 집을 한 바퀴 돌아보며 차 한 모금을 마셨다.
"달항아리가 예쁘네요."
문수는 그냥 한 말이었지만, 문수의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중년의 남자는 달항아리 이야기를 30분을 넘게 했다. 뭐 장인이 빚었네, 명인이 빚었네, 본인만을 위해서만 제작된 세상에 하나뿐인 것이라 했다.
이들 세계에는 세상에 하나뿐인 것이 참 많다. 원래 흔하디 흔한걸 그냥 하나만 만든 것뿐인데.
"아무튼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값을 매길 수가 없어요. 저도 선물 받은 지 3년이 되어갑니다만, 아직도 아름답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심신이 안정돼요."
"아, 네."
문수의 찻잔이 모두 비워졌다. 찻잔을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 이 남자는 문수를 데리고 이 방, 저 방 구경 시켜줬다. 본인을 서예가라고 소개하며 지금까지의 작품이 있는 곳도 자랑했다. 자랑을 하는 건지, 집을 팔 생각인 건지 이제 점점 듣기가 싫어졌다. 말이 어찌나 많은지 문수의 귀에서는 피가 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곳은 작업방이라며 여러 종류의 화선지들과 붓, 먹, 벼루를 소개했다. 저거다. 벼루. 저게 알맞겠다고 생각했다. 한방에 내리꽂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벼루에 대해 질문을 했다.
"저 벼루들이 특별해 보이네요. 저것도 맞춤이에요?"
화선지들을 자랑하고 있던 남자는 벼루 쪽으로 고개를 돌려 화색을 내비쳤다.
"아이고, 정말로 보는 눈 있으십니다. 벼루 전부 다 제 맞춤입니다. 특히 이거요. 두꺼비 벼루."
벼루 중에 가장 크고 유달리 두터워 보이는 벼루를 꺼낸 남성은 여기에 두꺼비가 있네, 두꺼비는 복을 상징하네, 어쩌고 저쩌고 또 30분간 설명했다. 그만 듣고 싶었다. 문수는 한계치에 다다랐다. 시끄러웠다. 이 남자가.
"저 한번 만져봐도 될까요? 두꺼비가 정말 특별하네요."
문수의 말 한마디에 의심 없이 벼루를 건넸다. 문수는 벼루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벼루에 있는 두꺼비로 남자의 관자놀이를 힘껏 쳤다. 화선지에 빨간 홍매화가 피었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퍽. 하고 쓰러졌다.
"심부름 1단계 끝."
문수는 사체를 밟고 거실로 나갔다. 바로 달항아리를 팔 생각이었다. 유리큐브는 대단한 보안장치 없이 그냥 유리를 들었더니 들렸다. 문수는 황당했다. 이것도 보관이라고.
달항아리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중년의 남성 핸드폰으로 중고거래 앱을 켜서 판매글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남자도 중고거래 앱이 깔려 있는 게 웃겼다. 세상에 하나뿐인 것은 좋아하면서, 남이 쓰던걸 산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이 남자의 마지막 거래는 3일 전이었다. 개량한복 하나를 샀다. 3일에 한 번이면 한동안은 생활반응이 있다는 뜻으로 보이겠지. 문수는 안심하고 글을 써 내려갔다.
[세상에 하나뿐인 달항아리 팝니다. 장인이 빚어 3년 전 선물 받았으나, 사정상 급처로 올립니다.]
달항아리, 이거 얼마 하려나? 문수는 혼자 가격을 매겨보았다. 100만 원이면 되려나? 일단 문수는 100만 원에 판매글을 올렸다.
문수는 값을 못 매긴다는 남자의 말이 생각났다. 값을 못 매기긴 뭘 못 매겨. 매기면 매길 수 있는 게 값이야.
몇 분이 지났을까. 소파에 기대 잠깐 졸던 문수는 중고거래 앱 알람 소리에 깼다. 채팅 내용을 확인한 문수는 핸드폰을 쥔 두 손이 떨려왔다.
[작가님, 제가 선물한 것 아닙니까? 이걸 왜 파시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