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문자

7. 거래

by 수수

"맞지?"


여자는 얼굴을 더 맞댔다. 문수는 여자 집주인 이름이 김금자인지 모른다. 그리고 여기서 시인하게 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잘했어."


여자는 문수의 어깨를 두 번 툭툭치곤, 캐리어 들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소파에 눕더니 고개를 바닥으로 향하게 두고 거꾸로 문수를 바라봤다. 잘했다니, 무슨 뜻이지? 문수는 헷갈렸다. 기분 나쁜 여자였다.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죽여버렸을 거야. 아주 귀찮은 여자였거든. 근데, 아빠는? 너 설마 아빠도 죽였니?"


문수는 또 한 번 대답을 못했다. 시인하기 싫었다. 특히 저 예측 안 가는 여자에겐 더더욱.


"아빠도 죽였어? 푸하하. 잘했어. 아, 덕분에 다 끝났네. 너무 지겨웠던 싸움이었지. 와인 마실래? 축배." 라며 와인 냉장고로 향하는 여자는 짙은 향수 냄새를 풍겼다. 꽃집향기 냄새가 났는데, 아주 짙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문수는 여자가 와인을 따서 와인잔에 따르는 순간까지도 꼼짝하지 못했다. 저 여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 마셔. 축배라니까. 덕분이야. 고마워."


여자는 문수에게 잔을 건넸다. 얼떨결에 여자와 건배까지 했다. 건배하는 유리잔 소리가 묵직한 비밀이 생겼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여자는 와인잔을 천천히 돌리며 문수에게도 마시라며 손짓을 했다. 그 자리에서 꼼짝 못 하던 문수는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저 여자, 뭘까.

여자의 향수 냄새 때문에 와인의 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핏빛 와인향을 덮어 버릴 만큼 짙은 향수였다.


"오다 보니까 슈퍼카 있던데. 네 거야?"


여자의 질문에 문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성진도 죽였구나. 푸하하. 재밌네." 무슨 의미의 웃음인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여자는 김성진을 알고 있다. 그걸 경계해야 한다.

소파에 앉아 와인을 한 모금씩 마시던 여자는 문수를 천천히 치켜 올려다보며 말했다.


"청소 다 했으면 가봐. 갈 데가 있으면."


이 여자는 문수의 정체를 안다. 문수가 김성진과 자신의 부모를 모두 죽였다는 걸 눈치챘으면서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축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여자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묻고 싶지도 않았다. 묻다 보면 결국 이 여자에게 굴복하게 될 것만 같았다. 일단 이 집을 빠져나가야 했다.


"무슨 말씀하시는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청소.. 마음에 드셨다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문수는 식탁에 와인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꾸벅. 90도로 인사까지 하면서 말이다.


여자는 대답대신 손가락으로 '오케이' 원을 그리며 문수를 바라봤다. 그러나 문수는 갈 데가 없다. 그래도 일단 나가야 한다.


"갈 데가 없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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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앞에서 서성이던 문수의 뒤통수에 여자의 말이 꽂혔다. 문수는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굼떴나? 그럴 리가 없는데. 빠르게 움직였는데. 저 여자 대체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부모를 죽였다고 축배를 들고, 김성진도 죽였다고 웃는 저 여자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여자는 말을 이어갔다.


"이 집에서 며칠 머물다가 가든가. 보답쯤으로 생각해."


문수는 도저히 참지 못하겠어서 소파에 앉은 여자를 향해 물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라고 짧고 강력하게. 정말 '뭐 하시는' 거냐고. 하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턱을 치켜들어 캐리어 두 개를 가리켰다. "캐리어부터 정리해 줘. 짐이 좀 많아."

문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이 여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문수는 캐리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하던 여자는 "아, 시차 적응이 안 되네. 청소하러 왔다고 했으니까 침구는 당연히 갈았지?" 문수에게 물었다. 문수가 머뭇거리자 "농담이야. 나 한숨 잔다. 넌 나 못 죽일 거 알아. 쉬고 있어. 진짜 집 청소해 주면 더 좋고." 여자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방문을 잠그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문수는 다시 한번 감옥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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