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큰아이가 얼마 전부터 발바닥 통증을 호소했다. 별거 아니려니 하고 넘겼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신경이 쓰인다. 한밤중 늦게 퇴근한 아이가 누워있는 내 품을 파고드는데 염증 냄새가 심하게 올라왔다. 나는 다짜고짜 양말을 벗기고 상태를 들여다보았다. 노란색의 물집이 발바닥 전체에 퍼져있고 군데군데 고름도 맺혀있다. 발바닥을 살짝 건드리니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속상한 마음에 “ 넌 어떻게 발이 이 상태가 되도록 병원을 안 갔니? ” 하며 언성을 높였다. 아들은 그렇잖아도 몇 번 엄마한테 얘기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좀 섭섭했다고 한다.
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욕실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발을 닦아주겠다고 했다. 아들은 멋쩍어하면서도 싫지 않았는지 대야에 발을 수줍게 담근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아들의 발을 들여다보았다. 털이 듬성듬성 나있고 발가락도 우렁찬 완전한 남자의 발이다. 20여 년의 족적이 드러나듯 제법 굳은살도 박여있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손발을 닦고 씻겨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는데 빠르게 흘러간 세월의 크기만큼 아들의 발이 낯설게 느껴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의 발을 찬찬히 들여다볼 새가 없었던 무심한 엄마인가 싶어 자책감도 들었다. 불쑥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양가적인 감정이 올라와 눈가가 촉촉해진다.
나는 어느 때보다도 경건하게 아들의 발을 조심히 들어 올렸다. 비누 거품을 얌전히 내어 아들의 발을 정성껏 닦아주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울음을 삼킨 코끝이 시큰해졌지만 감정을 숨기느라 부러 밝은 척을 했다.
흔한 말로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자식의 말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비춰보고 견주어 보면서 조금씩 성장해 온 것 같다. 결혼, 출산, 양육을 거치면서 내게만 향해져 있던 관심이 자연스레 가족으로 옮겨지고 특히, 아이들에게 향하다 보니 참 부모가 되기 위한 성장통을 내내 겪어왔다. 소위 자아 성찰과 반성으로 얻은 깨달음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은 값진 교훈은 학창 시절 스승을 통해 얻은 것과 비견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참부모, 참인간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게 해 준 아이들에게 부모의 진정한 스승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엄마이지만 아이들이 내준 숙제를 성실히 완료해서 후에 ‘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들의 발을 씻기며 새삼스레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 세족 ’은 섬김을 의미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주는 진정한 사랑이 섬김이다. 반대로 기꺼이 상대에게 발을 내어주며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것 또한 진정한 용기이자 참 신뢰라고 생각한다. 오늘 밤 자신의 발을 엄마한테 맡기며 해맑게 웃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유난히 사랑스러운 것은 섬기고 섬김 받아 마땅한 소중한 사람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이유일 것이다. 세족식? 은 짧게 끝이 났지만 아들의 커다란 발이 내 가슴에 들어와 콕콕 박힌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