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Luddite
우리 주변에 ‘인공지능(AI)’이란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스며들었습니다. 스마트폰의 음성비서, 얼굴 인식 기술, 자율주행 차량 등 이미 AI는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AI를 다룰 때, 우리는 흔히 ‘프롬프트(Prompt)’라는 단어를 접하게 됩니다. 프롬프트는 컴퓨터나 AI와 소통하기 위해 사용되는 텍스트 기반의 명령어나 질문을 뜻합니다. 처음 듣기엔 생소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일상적으로 프롬프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검색 엔진에 검색어를 입력하고, 스마트폰에서 음성 명령을 내리는 것도 일종의 ‘프롬프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명령어를 입력하는 행위를 왜 이토록 강조할까요? 그리고 프롬프트가 왜 ‘창의성’과 맞물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기술의 발전 속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고, 이는 일자리와 사회 구조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단순 작업을 넘어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프롬프터로서의 역량’, 곧 창의성이 핵심 가치로 떠오릅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산업혁명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방직기계, 철도 등으로 대표되는 기술 혁신의 시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직조기의 발명은 직물을 만드는 방직공들에게 재앙에 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많은 방직공이 일일이 손으로 옷감을 짜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효율이 훨씬 좋은 기계가 등장하면서, 이들은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방직공이 분노했고, 기계를 파괴하며 저항을 시작했는데, 이를 가리켜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라고 합니다. 이 운동은 노동자들이 기계를 거부하려 들었을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역사는 기계를 파괴한다고 기술 발전이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결국 기계가 새로운 생산성을 제공하는 한,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도태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기계를 설치·운영·보수하는 새로운 직업이 나타났고, 산업현장에는 더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는 직무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기술 발전은 과거에도 일자리를 없애기도 하고,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했습니다.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것’으로만 보던 시선은 점차 ‘기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접근으로 바뀌었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남깁니다. 하나는 기술 발전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다는 사실입니다.
19세기 산업혁명이 기계를 통한 대량 생산의 물결을 일으켰다면,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며 ‘정보화 시대’가 열렸습니다. 기업과 정부, 가정에 보급된 컴퓨터는 수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인터넷은 세계 각지의 정보와 사람들을 연결했습니다. 그 결과, 데이터를 입력하고 처리하는 단순 업무는 컴퓨터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반면에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 즉 프로그래머나 시스템 관리자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해졌습니다.
이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AI 기술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그리고 연산 능력의 발전에 힘입어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언어 모델(ChatGPT), 이미지 생성 모델, 자율주행 기술 등은 더 이상 실험실 안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실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AI가 우리 생활과 산업 현장에 적극 도입되면서, 단순 코더나 일러스트레이터, 회계나 문서 정리 등 ‘규칙적 반복 업무’를 맡던 이들은 기계나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코더나 예술가의 모든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계가 할 수 없는 창조적 작업’을 수행하는 이들은 더욱 귀중한 인재가 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직조기가 발명되어 단순 방직공이 사라졌던 과거와 비슷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전문성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컴퓨터는 0과 1로만 구성된 이진법을 기반으로 동작합니다. 겉보기에 이는 매우 단순하고 “멍청한” 방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초 원리를 가지고도 인터넷, AI, 국가 행정 시스템 등 수많은 혁신이 탄생했습니다. 결국 이 ‘멍청한’ 도구에게 무엇을 시키고, 어떤 식으로 가르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프롬프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AI에게 정확한 지시와 질문을 던졌을 때, AI는 우리가 의도한 답변 혹은 결과물을 생성해 줍니다. 이때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지, 어떤 값을 바탕으로 결과를 얻고 싶은지, 조건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AI는 훨씬 더 세밀하고 정확한 결과를 내놓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대충~” 명령을 내리면, 당연히 AI가 뭘 해야 할지 몰라 헤매게 됩니다.
산업혁명 시기에 중요한 기술이 ‘기계를 만드는 기술’이었다면, AI 시대에는 ‘AI에게 무엇을 시키는지 기획하고 관리하는 기술’이 중요해졌습니다. AI가 우리의 기획과 방향성에 따라 결과물을 생성한다면, 결국 명령을 만드는 사람이 곧 설계자가 됩니다.
• 어떤 데이터를 선택해서 AI에게 학습시킬 것인지
• 어떤 변수와 가중치를 활용해 모델을 튜닝할 것인지
• 최종적으로 무엇을 해결하거나 만들어내고 싶은지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능력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즉,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정의하는 상상력, 실행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유연성, 그리고 결과물의 가치를 높이는 통찰력이 프롬프트 작성 과정 전반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코딩은 흔히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운다고 표현합니다. “언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알파벳과 단어를 암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소통’ 하기 위한 것이죠. 프로그램 언어 역시 컴퓨터나 AI와 소통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단순 문법과 함수를 외우는 단계는 ‘알파벳과 단어’를 암기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코드(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여 “내가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AI 기술은 몇 줄의 간단한 명령어만으로도 코드를 생성해 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코딩 자체를 배울 필요가 없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코딩을 배우지 않고 AI가 써준 코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는, 원하는 결과물을 제대로 얻어내기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AI가 만들어 준 코드를 수정하거나 에러를 찾고, 추가 기능을 얹고 싶다면, 결국 코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마치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번역기를 돌려 문장을 얻었다고 해도, 그 내용이 정확한지 잘못된 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결국 코딩을 배우고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프롬프트를 능숙하게 다루는 바탕이 됩니다.
코딩을 배운다고 해서 무조건 대단한 프로그램이나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아이들이 작은 레고 블록 하나에서 시작하여 점차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어 내듯, 우리도 작은 코드 조각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Hello World!’ 같은 간단한 문구를 출력해 보며, 문법과 구조를 익히던 이가 점차 로직을 발전시켜 간단한 계산기, 간단한 게임, 웹사이트 등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경험을 토대로,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사고력, 그리고 나만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창의력이 자랍니다.
코딩과 AI는 전적으로 수학·과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와 통계 분석은 기본적으로 수학적 개념을 이해해야 정확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효율성을 따질 때도, 시간 복잡도와 공간 복잡도를 계산하는 과정이 수반됩니다. 따라서 수과학적 지식은 AI를 깊이 이해하고, 최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프롬프트를 효율적으로 작성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이 결여되어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고 풍부하게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우수한 수학·과학 지식이 있어도, 프롬프트 작성 능력이 떨어지면 AI가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인문학은 우리의 생각을 구조화하고 언어로 정교하게 표현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또한 역사, 철학, 문학 등에서 비롯되는 통찰력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질문과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여,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이 문제를 풀고 싶은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
사회가 원하는 가치, 혹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기술만으로는 답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것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통찰입니다. 그리하여 문과와 이과의 경계를 허무는 복합적 사고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의 사례가 보여주었듯이, 우리는 기술 발전을 거부만 해서는 사회적·개인적 발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율성과 이윤은 곧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AI가 가져다주는 혁신은 ‘이대로 가면 인간의 많은 역할이 사라진다’는 공포감도 안기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줍니다. 따라서 우리가 선택할 길은 AI를 부정하기보다는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적응해 나가는 것입니다.
결국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은 프롬프트를 잘 다루는 능력입니다. 프롬프트는 컴퓨터나 AI에게 던지는 ‘명령어’나 ‘질문’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생각’과 ‘의도’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곧 창의성의 발현이며, 미래를 만들어갈 핵심 도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코딩 능력을 통해 AI의 본질을 이해하고, 프롬프트를 기술적으로 정교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고, AI에게 요구할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복합적 사고력으로 기술과 인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융합해 전에 없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단순 노무나 반복 작업에 의존해 왔던 직업들이 줄어들 가능성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에도 그러한 변화를 반복적으로 겪어 왔으며, 그때마다 사람들은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제는 그 기술의 양상이 AI로 바뀌었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술에 어떤 명령을 내리고, 어떤 가치를 실현하도록 이끄는가?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와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뺏는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이 거대한 도구를 활용해 인간이 어떤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가”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여는 열쇠가 바로 프롬프트라는 점,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의 창의성이자 의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술 발전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계속해서 진보하고, 세상을 바꿔나갑니다. 그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프롬프트를 잘 다루는 ‘프롬프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국 창의성을 잃지 않고 기술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코딩은 그 기술적 기반을 익히는 훌륭한 통로가 되고, 인문학적 통찰은 기술을 가치 있게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우리는 진정으로 AI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이 “기계를 거부함으로써” 기술 발전의 흐름을 잠시 흔들었지만, 결국에는 새로운 직업과 교육의 기회를 창출했던 과거를 떠올려봅시다. 그때처럼 지금도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거부하기보다, 그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넓혀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거대한 혁신의 시대에, ‘프롬프트’가 단순히 명령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창의적 기획이라는 점을 인식할 때, 우리의 역할과 가치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