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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쏟아낸 할머니는 그제야 방으로 돌아갔다.

by 청주체험가 Feb 25. 2025

나에게 동네 친구가 있었다. 그 애 집에 곧잘 놀러 가고, 라면도 끓여 먹고, 오락실도 같이 다녔다.


할머니는 평소 안방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특히 엄마가 있을 때는. 그날은 우리 가족이 모두 집에 없었다. 할머니만 빼고. 그날은 무슨 용기였을까? 할머니와 둘이 있기 싫었던 건가? 나도 잘 이해를 못 하겠다.


친구를 안방에 초대했다. 친구랑은 뭘 하고 놀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안방은 미닫이 유리문이었다. 문틀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큰 유리들이 나무틀 사이에 껴있는 문. 문 크기는 3미터는 돼 보였다. 엄청 큰 문이었다.


그 문은 가끔 초 칠을 안 하면 드르륵 거리며 시끄럽고 무서운 소리를 냈다. 친구와 신나게 노는 중 갑자기 드르륵 문이 열렸다. 나와 내 친구는 얼음이 되었다.


시작되는 할머니만의 SHOW ME THE MONEY와 펜싱, 검도. 모르겠다.


난 무서워서 검은색 장롱과 벽이 만나는 지점에 붙어 서있었다. 아팠다. 자동반사로 인해 손가락이 아팠다.


할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모든 걸 쏟아낸 할머니는 그제야 방으로 돌아갔다.


친구는 많이 놀랐다. 그 후 난 다시는 우리 집에 친구를 초대하지 않았다. 난 엄마에게 친구와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말했다. 엄마는 속상해했다. 엄마의 딸로 태어난 나는 아팠다. 이제 더 이상 안방은 안전지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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