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술래가 된다. 저 멀리 도망가는 그를 잡는.
안부 (安否)
: 어떤 사람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아니한지에 대한 소식. 또는 인사로 그것을 전하거나 묻는 일.
그렇다. 안부를 묻는 것은 그 사람이 편안히 잘 지내고 있는지, 아닌지를 물어보는 말이다. 쉽게 풀면 "뭐 해?" 도 안 부에 해당하겠고 "오늘 하루 잘 보냈어?" 이렇게 안부를 물어보는 건 가족 간에도 저녁 시간 모든 식구들이 모이면 주고받는 인사이다.
나는 285일째 곰신 생활 중이다. 연애는 스물 하나,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린 나이에 만나서 거의 매일 같이 투닥이며 606일째 연애 중이다. 그리고 나의 첫사랑이다.
나는 각자 떨어져 지내며 하루를 보내는 남자친구에게 하루 끝자락에 우리가 만났을 때 나의 하루를 물어봐주길 바랐다. 사실 큰 바람은 아닌 것 같다. 정말 말 그대로 안부를 물어보는 것뿐이니. 바라기만 한 건 아니고 나 또한 늘 남자친구에게 물어본다. "오늘 하루 어땠어? 다친 곳은 없었어? 오늘 밥은 뭐 먹었어?" 나는 그에게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근데 정작 그는 나에게 궁금한 게 없었다. 왜 물어봐주지 않냐는 물음엔 "잘 보냈겠지."라는 가시 돋친 말이 돌아왔고 이를 남자친구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냥 물어봐주기로 했다. 나는 그래도 남자친구가 나의 일상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봐주는 줄 알고 어린아이처럼 마냥 들떠서 조잘거렸다.
하루는 남자친구가 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게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고 그게 서운했다. 결국 터질 게 터졌다. 남자친구는 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았고 바로 전에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조차 못했다. 화가 난 나는 화를 냈고 그이어 그에게 돌아온 말은 너무 아팠다. "물어봐달라 그래서 물어봐줬고 대충 맞장구도 쳐줬어. 뭐가 문제야?" 과연 이게 연인에게 듣는 말이 맞나 싶었다. 누군가 내 머리를 뒤에서 내려 찧은 것 같았다. 안부를 묻는 일이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인가?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고 날 사랑한다는 사람에게서 들을 말은 정말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잘 지냈겠지라는 기준은 다 본인 스스로에게 있다. 나는 그날 잘 지낸 하루가 아니었고 남자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일상을 공유한다는 거. 그거 만큼 장거리 커플에게 필요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사랑하는 남자를 군대에 보낸 곰신 커플이면 더더욱.
그는 알까? 내가 하루에도 수십 통의 사랑고백을 카톡으로 남기고 싶은지를.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바로 이야기하고 싶은 내 마음을. 나름 10장 찍어 고심해서 보낸 2장의 셀카를 보내고 역시 내 여자 친구가 가장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내 마음을 그는 알까? 곰신 커플이기에 나는 그가 저녁 9시에 폰을 내면 내 하루 일상을 카톡에 남기곤 했다. 근데 그는 그걸 다 읽는 것도 일이고 답장해 주는 것도 귀찮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젠 보내지 않고 참았다가 그가 나의 일상을 궁금해하며 "오늘 하루 뭐 했어?"라는 질문을 받길 기다렸다. 그날도 그랬다. 나의 첫 경험들을 생생히 공유하고 싶었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즐거움이었나 보다.
"왜 내 하루를 궁금해하지 않을까?"의 대답은 슬프게도 "너무 가까워서, 편해서, 뻔하게 잘 지냈을 거니까."였다. 하필 나는 그날 하루를 뻔하게 보내질 않았다. 난생처음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 보건소에서 시력 검사도 하고 왔고 보건증이라는 걸 처음으로 발급받기 위하여 항문에 면봉도 쑤셔본 날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에세이 작가를 해보겠다는 마음에 도서관에서 글을 쓰는 법에 대한 책도 읽었다. 그리고 우리 미래를 위한 진로를 생각하기 위하여 책을 또 한 권 더 읽어봤다. 이처럼 나는 23년 살면서 처음 해보는 일들이 많았던 날인데 이걸 그는 그냥 뻔한 하루였을 거라 혼자 생각하고 나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게 연인 관계가 맞나 싶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사랑해"였다.
이게 바로 회피형과 불안형의 연애이다. 다 잡아갈 때쯤 더 멀어져 가는. 그걸 잡으려 더 애써서 전력질주 하여 달려가 손을 뻗는. 나는 우리 연애에서 늘 술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