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냥 40대
어렸을 때 TV에서는 늘 ‘오렌지족’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강남 거리를 활보하며 외제차를 타는 젊은이들을 보며, 어른들은 세상이 망한다고 했다.
나는 그 뉴스를 보며 ‘어른들은 왜 저 사람들을 저렇게 미워할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더 자라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거대한 힙합 바지를 질질 끌고 다녔다. 부모님은 ‘저러다 공부는 언제 하냐’며 한숨을 쉬셨다.
고등학생이 되자 IMF가 찾아왔다. 친구 아버지 회사가 망했고, 학교 매점이 문을 닫았다.
대학생이 되고 이듬 해엔 2002년 월드컵이 열렸고, 새벽마다 거리로 뛰쳐나가 붉은 티셔츠를 흔들었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서 숨이 찼다. 그래도 따라잡아야 했다. 변화를 놓치면 시대가 나를 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다. 여전히 변화를 따라가고 있는데, 이젠 ‘왜 따라가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요즘 여기저기서 들리는 ‘영포티(Young Forty)’ 논쟁이 바로 그 얘기다.
나도 40대가 됐다.
사실 MZ의 끝자락쯤에 걸쳐 있다고들 하지만, 스스로를 MZ라고 부른 적은 없다.
그저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해왔을 뿐인데, 어느새 누군가는 나를 ‘영포티’라 부른다.
젊은 척한다고, 트렌드에 억지로 올라타려고 한다고.
나는 단지 새로운 걸 배우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새로운 앱을 깔고, 낯선 용어를 배우고, 젊은 팀원들의 대화 속 유행어를 따라 해본 게 전부다.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 ‘억지 젊음’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팀장이라는 자리는 애매하다.
부하 직원에게는 ‘시대에 맞는 리더’여야 하고, 윗사람에게는 ‘너무 나대지 않는 중간 관리자’여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낡았다고 하고, 배우면 영포티라고 한다.
가끔은 이 세대의 중간쯤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사실 ‘영포티’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나도 웃으며 넘겼다.
‘그래, 나도 아직 젊어 보이면 좋지’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어는 점점 낙인처럼 느껴졌다.
마치 ‘젊음을 흉내 내는 가짜 어른들’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 같았다.
나는 젊음을 흉내 내려는 게 아니다.
단지 새로운 세상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젊은 세대가 만들어가는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노력이 ‘젊은 척’으로 번역되는 걸 보면, 조금 서글프다.
요즘 팀 회의에서 나는 종종 통역사가 된 기분이다.
윗세대의 언어를 아랫세대에게, 아랫세대의 문화를 윗세대에게 전달하는 중간자.
누군가 “그건 갓생이에요”라고 하면 윗사람에게 “성실하게 사는 걸 요즘 그렇게 말한대요”라고 설명하고,
윗사람이 “요즘 애들은 왜 저래” 하면 “요즘은 그게 자연스러운 방식이에요”라며 웃는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이 때로는 양쪽 모두에게 미심쩍은 존재로 보이는 것 같다.
윗사람은 “괜히 젊은 척한다”고,
젊은 직원은 “아재가 괜히 맞춰보려 한다”고 느낀다.
나는 그저 중간에서 소통의 다리가 되고 싶을 뿐인데 말이다.
그래도 나는 계속 배운다.
새로운 트렌드를 보고, 젊은 팀원의 말투를 익히고, 요즘 음악을 들어본다.
왜냐면 배움은 나이를 먹어도 멈출 수 없는 습관이기 때문이다.
어릴 땐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배웠다면, 지금은 세상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 배운다.
어쩌면 ‘영포티’라는 말이 싫은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나이 들면 달라야 한다’는 암묵적 기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달라지고 싶지 않다.
그저 계속 배우고, 계속 움직이고, 계속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
그게 꼭 ‘젊음’일 필요는 없으니까.
팀장으로서 나는 매일 생각한다.
리더십이란 결국 세대 차이를 관리하는 일이라고.
어떤 날은 젊은 팀원에게서 배운 단어 하나가 회의를 부드럽게 만들고,
어떤 날은 선배의 한마디가 팀의 균형을 잡아준다.
그 사이를 잇는 게 내 역할이라면, 기꺼이 하겠다.
누군가는 나를 영포티라 부르고,
누군가는 꼰대라 부르겠지만,
그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나는 오늘도 배운다.
배움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배움이, 나를 여전히 ‘살아 있게’ 만든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제는 젊지 않다’는 말에 마음 한켠이 쿡 찔렸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우리 세대는 젊음을 흉내 내는 세대가 아니라,
변화를 멈추지 않으려는 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