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주문을 걸어 보자.
필라테스에 한창 빠져 수업을 들을 때면, 나는 강사님의 멘트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동작을 따라 하느라 숨이 가쁜 순간에도, 귀는 항상 강사의 말에 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인상 깊었던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큐잉(cueing)이었다.
큐잉은 정확한 근육을 사용하도록 자세를 ‘설명’하는 대신, 이미지로 몸을 안내하는 언어다. 필라테스는 어떤 근육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운동 효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운동이다. 그래서 큐잉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수업의 핵심에 가깝다.
예를 들어 어떤 동작을 하면서 강사가
“복횡근을 활성화하세요”라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 말을 듣는 순간, 특히 초심자는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복횡근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활성화’라는 말이 힘을 주라는 건지, 당기라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해부학을 공부하러 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강사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배꼽을 등 쪽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긴다고 상상해 보세요.”
“허리 아래에 얇은 종이를 깔아 두고, 그걸 놓치지 않는 느낌이에요.”
이 순간, 몸은 설명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이미지를 따라 반응한다. 그래서 큐잉의 중요한 점은, 딱딱한 지시가 아니라 이미지화다. 생각을 거치지 않고 몸이 바로 움직이게 만드는 말. 그게 좋은 큐잉이다.
그러다 어느 날, 러닝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큐잉은 러닝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러닝 할 때에도 코치의 강습을 받으며 하는 경우도 있지만, 헬스 PT나 필라테스처럼 강습을 받으며 하는 경우는 드물긴 하다. 그렇다 결국 대부분의 러닝은 혼자 하거나, 함께 뛴다고 하더라도 같이 뛰는 것이지 강습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트랙 위에서, 강변에서, 새벽의 러닝머신 위에서 우리는 달린다. 누군가 계속해서 “지금 자세 무너졌어요”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러닝에서는 누가 큐잉을 해줄까? 그래서 Nike Running Club 같은 러닝 오디오 가이드에서도 이런 조언을 한다.
"내가 선수이고, 내가 코치입니다. 내 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 이기 때문에 항상 몸이 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고 그에 맞게 코칭을 해줘야 합니다."
결국 내가 코치가 되고, 내가 선수가 되는 수밖에 없다. 달리는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지금 숨은 어떤지, 몸은 어디로 쏠리는지, 불필요한 힘은 들어가 있지 않은지. 그리고 그 말은 길고 복잡한 분석이 아니라, 짧고 즉각적인 큐잉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나에게 해주는 큐잉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날 잘 아는 건 나이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큐잉을 만들어 보자.
호흡은 러닝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신경 써야 하는 요소다. 개인적으로 나는 ‘잘 들이마시려면, 먼저 잘 내뱉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숨을 쉴 때마다 풍선을 불듯, 입과 코로 천천히 내쉰다. 그리고 마치 숨이 차지 않은 사람처럼 깊게 호흡하려고 노력한다. 짧게 헐떡이면 숨은 급해지지만, 정작 산소는 충분히 들어오지 않는다. 내 큐잉은 늘 같다.
"하나도 안 힘든 것처럼 천천히 깊게 숨 쉬세요. 풍선 불 듯 깊게 내쉬고 끝까지 들이마시세요."
깊은 호흡이 중요한 건 심박수를 낮추는 것도 있지만 또 한 가지는 몸에 불필요한 힘을 빼주는 것도 있다. 특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을 때 깊게 숨을 내쉬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내려가고 힘이 빠지게 된다.
착지는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더 큰 건 무릎에 충격이다. 미드풋을 의식하되, 발로 바닥을 ‘찍으려’ 하지 않는다. 발이 몸 아래를 조용히 스쳐 지나가듯 착지한다는 이미지다. 자연스럽게 케이던스는 짧아지고, 소리는 줄어든다.
“발이 땅에 오래 머물지 않게. 깃털처럼 가볍게 발을 바닥에 터치하세요.”
착지할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엄지발가락이다. 예전에 물리치료사 선생님께 받은 조언이었는데, 바닥을 치고 나갈 때 그냥 치는 거소가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치고 나가는 것이 큰 차이가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뛰다 보면 그걸 잊게 된다. 그래서 큐잉이 필요하다.
"엄지발가락이 내 몸을 다 튕겨 내듯이 바닥을 치고 나가세요."
장거리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힘으로 긴 시간을 달릴 수 있느냐 이다. 무릎을 높게 올리게 되면 동작이 커지고 장거리 달리기는 상하 운동을 최소화하고 앞으로 나가는데 힘을 써야 하는데 불필요한 곳에 힘을 쓰게 된다. 그래서 무릎을 살짝 구부린 상태로 가볍게 착지하며, 발이 몸의 무게 중심 아래에 닿도록 해야 한다.
얼마 전 강습을 받을 때도 강사분이 이런 말을 하셨었다.
"자전거를 타듯 롤링이 되어야 합니다.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으면 결국 어딘가 아파요. 자연스러운 자세를 찾으세요. 꼭 어떻게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자세가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한다.
"자전거 타 듯 무릎을 굴리고, 물 흐르듯 부드럽게 리듬을 타세요."
오래 달릴 때 허리와 코어의 유지도 매우 중요하다. 몸의 중심이 무너지면 동작이 무너지고 관절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서 코어 운동도 틈틈이 해줘야 한다고 강사들은 강조한다. 또한 나중에 정 버티기 힘들 때 중심이 무너지더라도 달리면서 무의식 적으로 중심이 무너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중심을 세워줘야 한다. 이때 내가 쓰는 큐잉은 이거다.
"누군가 허리에 줄을 매달아 앞에서 잡아당긴다고 생각하고 달려주세요."
누군가 끌어 당기 듯 달리면 허리는 자연스럽게 세워진다. 복근에 가볍게 힘을 주고, 허리는 꺾이지 않게. 단단하지만 경직되지 않게.
일반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걸을 때 가슴을 움츠리고 걷는 경우가 많다. 극도로 움츠리진 않겠지만 사관생도처럼 가슴을 완전히 펴고 걷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달리는 자세를 보면 약간 움츠리고 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움츠리고 달릴 때의 문제점은 흉부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서 호흡하는 양이 줄어드는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더 큰 문제는 팔 치기가 어려워진다. 제대로 된 팔 치기는 뒤로 쳐지면서 힘을 줘야 하는데 가슴이 움츠러 들어 있으면 상대적으로 어깨가 앞으로 모이고 뒤로 치기가 힘들다. 그래서 가슴을 펴고 견갑골을 열어주는 게 중요하다. 대신 너무 과하게 내밀면 오히려 허리가 뒤로 꺾이니 적당한 정도를 찾아보자.
"당당하게 가슴 펴고 어깨는 뒤로 보내세요."
바로 앞에서도 말했지만 달리기 메커니즘 상 팔은 뒤로 처져야 몸의 균형이 맞는다. 앞으로 치는 팔은 오히려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달리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달리다 보면 힘이 들고 어느 순간 팔 치는 게 소홀해지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외치자.
"내 뒤에 있는 벽을 팔꿈치로 치듯 힘차게 팔꿈치를 뒤로 보내세요."
다리가 추진력이 약해질 때마다 팔 치기를 신경 써주면 다시 페이스를 올리기 좋다.
팔 치기를 할 때 손의 모양이 항상 신경 쓰인다. 손을 펴고 달리면 손목이 꺾이고 팔이 날리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고 주먹을 꽉 쥐면 어깨까지 긴장하게 된다. 어느 책에서 보니 손에 감자칩을 쥐고 있는 듯 가볍게 엄지와 검지를 닿게 하고 달린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그게 크게 공감이 되었다.
"손 끝에 감자칩을 쥐고 있는 것처럼 가볍게 손을 모으고 달리세요."
러닝 기술을 설명하는 말은 많다. 하지만 달리는 도중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그래서 러닝에서도 큐잉은 중요하다. 길고 정확한 설명보다, 짧고 살아 있는 이미지 하나가 몸을 더 잘 움직이게 한다.
오늘도 달리면서 나는 나에게 말을 건다.
코치처럼, 하지만 다그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하면서.
어쩌면 러닝은, 내 몸과 내가 나누는 가장 솔직한 대화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