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대처하는 러너의 자세
나이가 들어서라고 핑계를 대기 싫지만 어쨌든 금요일 저녁에 별다른 약속이 없는 경우가 많고, 술자리도 일부러 찾아가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차라리 금요일에 일찍 자고 토요일 이른 아침에 뛰는 걸 더 즐기는 편이다.
일어나서 집에서 운동복을 챙겨 입고 미지근한 물 한 컵 마시고 플랭크와 몇 가지 맨몸 운동으로 달릴 때 필요한 근육들을 자극시켜 깨워준 후 러닝화를 고쳐 신고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나가서 10km 정도를 뛰고 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서 가족과 먹을 아침을 사서 집에 온 후 후다닥 씻고 나오면 와이프가 계란프라이와 베이컨을 구워놓고 난 드립커피를 내려 아들램과 함께 어젯밤에 한 '나 혼자 산다'를 다시 보기로 보며 함께 웃고 오늘 뭘 할지를 고민하는 게 토요일 루틴이다.
지난 토요일도 역시나 새벽에 눈을 떠서 매트 운동을 하고, 오늘은 얼마나 추울까 걱정하며 재킷을 입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파트 입구를 나가보니 비인지 눈인지 모를게 내린다. 맞고 갈까 싶어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가봤는데.. 빗방울이 꽤나 두껍고, 빗물 덕분에 체감 온도는 극도로 떨어졌다. 뛰면 뛰겠지만 괜히 감기 걸릴까 걱정됐고, 하필 하얀색이라 진흙이라도 튀면 바로 빨아줘야 하는 러닝화도 신경 쓰여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멍해졌다.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그냥 포기하고 미리 사둔 식빵에 계란물을 묻혀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었다. 러닝의 부록으로 아침을 사 오는 건 즐겁지만, 아침을 사기 위해 일부러 나가는 건, 그것도 이 추운 날에 우산 쓰고 나가는 건 더더 귀찮으니까.
아무래도 한 겨울의 러닝은 실외 보다 실내가 편한 건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야외에서 뛰는 걸 좋아한다.
왜냐하면, 실내 트레드밀에서 뛰면 춥진 않은데, 대신 바람이 안 부니 뛰다 보면 덥고 땀이 많이 난다. 열이 오르면 심박이 올라가고, 땀이 나면 수분이 부족해져 기력이 떨어지고, 러닝 머신을 뛰다가 중간에 물을 마시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신 실외에서 뛰면 조금 춥긴 해도 덕분에 땀이 덜 나고 체온이 오르는 걸 주변 공기가 낮춰주니 확실히 심박이 덜 올라간다. 그럼 확실히 덜 지치고 오래 달릴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추워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걸지도 모른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냉탕을 들어갔을 때 처음엔 춥지만 나중엔 개운한 그런 느낌이랄까?
요즘 같은 한 겨울에 밖에서 러닝 한다는 건, 이불 밖은 위험하단 심리적 불안을 해결하는 것 외에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정답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겨울철 러닝 루틴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겨울에 더 중요해지는 게 운동 전 스트레칭이다. 물론 나가서 뛰기 바로 직전에 하는 것도 좋은데, 일단 추울 때 밖에 나가면 몸이 움츠러들고 제대로 스트레칭을 하기 힘들다. 결국 깨작깨작 거리다가 굳은 상태로 대충 달리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부상이 오기 십상이다.
어차피 집에서 밖까지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니 겨울에는 집에서 충분히 스트레칭을 하고 가자. 그리고 아파트 입구를 나서기 전에 다시 한번 발목, 무릎, 허리, 어깨, 목을 풀어주고 제자리 뛰기나 팔 벌려 뛰기처럼 심박/체온을 올려주는 운동을 하고 나가자. 말 그대로 웜업이 중요한데, 추운 데에서는 그 시점까지 올리기가 정말 힘들다.
겨울엔 정말 부상당하기가 쉽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그늘진 곳에서는 얼어있는 곳이 자주 있다. 특히 콘크리트로 매끈하게 포장된 바닥은 그런 얼음이 생기기 더 쉬운 구간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트레일 러닝화가 좋긴 한데, 굳이 겨울 한철을 위해 사는 건 무리인 것 같고, 적어도 밑창이 살아있는 러닝화를 신자.
사실 신다 보면 밑창이 닳게 마련이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밑창이 닳은 게 큰 영향을 주진 않는데, 밑창이 완전히 닳아 반들반들하다면 미끄러운 곳을 밟았을 때 더 위험할 수 있다. 물론 새 신발이라고 해서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영하의 날씨에는 밑창이 더 살아있는 러닝화를 고르자.
어차피 러닝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지름신이 발동하여, 대회용, 지속훈련용, 러닝머신용 등등 지네도 아닌데 여러 신발을 구비하고 있지 않는가. 오랜 기간 애착으로 신고 있던 밑창이 닳은 LSD용 러닝화는 겨울에는 조금 쉬게 해 주자.
한 겨울에 러닝 할 때 복장은 참 어렵다. 어떤 사람은 패딩 조끼를 입고 뛰고, 어떤 사람은 경량 패딩을, 어떤 사람은 어차피 뛰면 더워지니 처음에 춥더라도 그냥 긴팔만 입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에는 충전재가 들어가 있는 집업을 입고 나가서 뛰다가 열이 나면 벗어서 허리에 두르고 뛰는 걸 좋아한다.
왜냐하면, 패딩 조끼는 입고 뛰다 보면 더워지고, 경량 패딩은 더 더워진다. 그리고 오리털 베이스인 의류는 세탁이 걸린다. 자주 빨면 오리털 의류의 핵심인 복원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폴리 보온재가 들어가 있는 옷은 상대적으로 자주 빨아도 부담이 없다. 그리고 요즘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여간한 경량 오리털 패딩보다 따뜻한 재킷이 많다. 얼마 전에 커뮤니티에서 추천하길래 샀었던 '나x키 언리미티드 서마핏 다용도 재킷'이 너무 마음에 들어 혹시나 고민하고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
어딘가에 벗어두지 않고 허리에 두르고 뛰는 이유는, 한 겨울에는 달리기가 끝나고 멈춤과 동시에 몸이 식기 때문에 달리기를 멈추자마자 바로 재킷을 입기 위함이다.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다들 생존을 위해 이렇게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열심히 달리면 근육이 열심히 팽창하고 근육 사이에 젖산이 박히게 된다. 그래서 근육을 천천히 수축시키기 위해 쿨 다운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겨울에는 그 쿨 다운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추운 날씨 덕분에 근육이 급격히 축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젖산이 충분히 빠져나가지 못하고 남아있게 되어 근육통이 생길 수 있고 회복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쿨 다운이 아닌 웜 다운을 추천한다. 만약 여름에 뛰고 난 후 걷기로 쿨 다운을 했다면 겨울에는 더 긴 거리를 더 빠른 속도로 뛰어주는 게 좋다. 예를 들어, 600 페이스로 뛰었다면 650으로 10분, 750으로 10분 정도를 천천히 달리고 몸이 완전히 식기 전에 집으로 들어간다. 몸이 완전히 식는 건 좋지 않다. 가능하다면 열이 남아 있을 때 집에서 회복 스트레칭을 한다면 금상첨화 일 것이다.
겨울이라고 훈련을 안 했다간 금방 체중이 늘고 그럼 봄에 다시 뛸 때 정말 힘들어진다. 또한 봄부터 대회가 줄줄이 시작되는데, 겨울에 준비하지 않으면 PB는커녕 DNF를 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춥다고 안 하기엔 이미 당신은 러닝에 너무 빠져있지 않은가. 건강하게 겨울을 보내기 위해 이것만 기억하자.
겨울은 뛰는 것보다 뛰기 위한 준비와 뛴 후 정리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