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으로 두 배 즐거운 여행 만들기
1월은 아들램의 생일이 있는 달이다. 아직 초딩인 아들램은 생일 전부터 이번 생일 때는 어디로 여행을 가냐며 난리다.
언제부턴가 1월은 가족 여행의 달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된 시작은 아이의 뜬금없는 선물 선택이었다.
"oo아, 이번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어? 레고 닌자고 해줄까? 아니면 그때 하고 싶다던 보드게임 사줄까?"
"아빠, 선물은 괜찮고 선물 대신에 여행 가면 안돼요? 난 엄마랑 아빠랑 여행 가는 게 선물보다 좋아요!"
사실 그때 내가 바쁘긴 했다. 그래서 연말에 가려던 여행도 와이프랑 애랑 둘만 가기도 했었다. 물리적으로 못 갈 정도는 아녔는데 심적으로 어려워 못 간다고 했었다. 아이는 내심 그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렇게 첫해는 부산으로, 다음 해는 강릉으로, 그리고 올해는 마침 시작한 한국사 공부에 맞춰 경주를 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3박 4일의 국내여행이라 짐을 쌀 게 별로 없긴 했는데 싸다 보니 몇 개 짐이 새롭게 실렸다.
바로 러닝 용품이다. 그때 호주에서 새벽에 혼자 달려본 후 이제 여행지에서 아침 러닝은 루틴이 되었다.
요새 여행 관련 유튭 콘텐츠에 항상 등장하는 왓츠 인 마이 백을 해보자면,
1. 러닝화: 마일리지용. 혹시나 비가 올 수도 있어서 더러워져도 아무 타격 없는 친구로 골랐다.
2. 러닝 양말 두 켤레: 3일은 뛰겠지만 첫날은 뛰고 땀이 많이 났다면 빨아서 말리고 한번 더 신기로 했다. 러닝 양말은 어차피 몇 개 없어서 다 가져왔다간 여행 다음날에 신을 게 없을 수도 있으니.
3. 땀 흡수 잘 되는 긴팔 옷, 긴바지 한 세트: 겨울이라 땀이 많이 안 나길 빌며 한 세트만 챙겼다. 혼자 여행이면 몇 벌 더 챙기겠지만 주객이 전도되면 와이프랑 아들램에게 핀잔 듣기 십상이다. 다리엔 땀이 별로 안나 만약 땀이 많이 난다면 뛰고 나서 샤워할 때 상의를 같이 빨고 잘 말리면 건조한 실내를 고려할 때 다음날까지 마르기 충분하다.
4. 헤어밴드, 비니, 장갑 등: 머리에 뭐 안 쓰면 겨울엔 정말 춥다. 헤어밴드는 눈으로 땀이 흘러내리는 걸 막아줘서 애정하는 러닝템이다.
5. 두껍지 않지만 따뜻한 외투: 긴팔 기능성 티만 입으면 얼어 죽는다. 그렇다고 패딩 입으면 더워 죽는다. 얇은 경량 패딩 조끼나 충전재가 들어가 있는 러닝 재킷이 좋다. 어차피 뛰면 열이 오르니 얇은 재킷도 영하까지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위에도 말했지만 중요한 건 주객전도를 피하는 것이다. 이 여행은 당신이 달리러 가는 여행이 아니다.
자주 가던 곳이라면 대충 어디를 뛸지 감이 오니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여행은 대부분 처음 가는 곳이기에 어디를 뛰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특히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추천 코스는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에 숙소가 랜드마크 근처가 아니라면 좀 애매해진다.
그래서 내가 쓰는 방법은 strava 앱의 maps를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가민이나 코로스 워치처럼 워치 자체에서 지원하는 기능도 있지만 strava는 앱만 있으면 가능하다.
현재 스트라바가 국내 플레이스토어에서 내려가서 기존에 받지 않았다면 vpn을 써야 하는 문제가 있긴 한데 설치만 하면 계속 쓸 수 있으니 조금의 수고는 감수할 만하다.
하단에 Maps를 누르면 지금 있는 곳 근처에 괜찮은 코스를 알아서 찾아준다. 말 그대로 made for you이다. 처음 찾아준 4.5km는 첫날 가볍게 뛰는 코스로 정했고
두 번째 날은 보문호수를 도는 코스, 마지막 날은 체크아웃이 있으니 가볍게 5km 코스로 정했다.
폰에 경로를 다운로드하여 따라 달리는 방법도 있는데 그건 유료 구독을 해야 하는 거라 지도를 미리 잘 봐두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전문적인 러닝 워치가 당기긴 하는데.. 낭만러너는 전자시계 차고 뛰는데 내 까짓게.. 서브 3 하면 그때나 생각해 봐야지.
경로를 짤 때 또 고려해야 할 게 있다. 만약 조식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동행자(들)와 함께 먹을 조식을 살 곳을 넣어둬야 한다. 뭐라도 들고 가야지 아침에 씻느라 늦거나 낮에 혹시나 조금 피곤해도 덜 미안해진다. 만약 조식을 호텔에서 먹는다면 현지에서 유명한 커피를 한잔 사가는 것도 좋다. 전에 호주 여행 때는 대부분 카페가 아침 6시면 열어서 그건 참 좋았다.
평소 훈련하듯 무리하게 뛰진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눈치를 챙기지 않으면 앞으로 여행 중 뛰는 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당신 혼자만 가는 여행이 아니라면.
극한84를 보면 현지에서 활동하는 크루와 같이 뛰는, 말하자면 초대 캠핑처럼 초대 크루로 같이 뛰는 게 있는데, 사실 나 혼자라면 그 정도까지는 못하겠지만 한번 해보면 좋을 것도 같다. 버킷 리스트에 적어두고 나중에 해보는 걸로!
여행지에서 아침 러닝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다. 매일 뛰는 루틴을 유지하는 것도 있고 생경한 곳에서 상쾌하게 아침을 여는 것도 있고, 차로 혹은 걸어서는 보기 힘든 곳을 혼자 둘러볼 수 있다는 점도 있다. 특히 새벽의 풍경은 그 동네 사람들의 하루 시작을 같이 느낄 수 있어 더 좋다. 뛰다 보면 기분이 좋아 나도 모르게 눈인사를 하게 되고, 운 좋다면 응원도 받을 수 있다.
미리 챙기는 게 조금 귀찮진 하지만, 슬쩍 러닝 용품을 챙기고 첫날 도착해서 자기 전에 지도를 펴서 경로를 한번 그려보자. 괜히 잠들며 웃음이 나고 다음날 아침 나도 모르게 번쩍 눈이 떠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