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마라톤 대회 선택하기
아직 날은 춥지만, 슬슬 마라톤 대회 공고가 올라오는 걸 보면 곧 봄이 온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하게 된다. 벚꽃 개화 소식보다도 러너에게 봄을 먼저 알려주는 건, 어쩌면 접수 오픈 알림일지도 모르겠다.
마라톤 대회는 러너에게 참 떨리는 이벤트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뛴다는 것, 좋은 풍경의 코스를 달리거나 평소엔 뛰지 못했던 도심 한가운데를 내 발로 통과해 볼 수 있다는 점도 분명 매력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칫 무료해질 수 있는 ‘달리기’라는 취미에 분명한 지향점을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목표가 생기면 훈련은 이유를 얻고, 이유가 생기면 달리기는 훨씬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세 달에 한 번 정도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려고 한다. 최근 몇 년간 달리기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인기 있는 대회는 이제 ‘신청’이 아니라 ‘티켓팅’에 가깝다. 접수 시작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몇 분만 늦어도 마감되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다행히도 대회 자체는 여기저기에서 많이 열리고 있다. 꼭 이름난 대회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눈을 돌리면 참가 자체가 어렵지 않은 대회는 여전히 많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다.
어떤 마라톤을 뛰는 게 좋을까?
이번에 마라톤을 신청하면서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좋은 대회를 고르는 법’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되도록 피하고 싶은 대회의 유형을 나열해 보는 쪽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 같다.
올해 열리는 인기 대회 중 하나인 JTBC 서울 마라톤의 풀코스 참가비가 15만 원이라는 소식을 보고, 솔직히 조금 놀랐다.
예전부터 달려왔다는 러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때 마라톤은 대회 당일 현장 접수도 가능했고 참가비도 2~3만 원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물론 시대가 바뀌었고, 물가도 올랐으며, 대회 규모와 서비스가 달라졌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럼에도 15만 원은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작년에 참가했던 시드니 마라톤을 떠올리면, 아무런 경품도 없이 5km가 7만 원이었으니 해외 대회에 비해 국내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 대회의 경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도 크고, 서울시에 지불하는 비용 역시 생각보다 과도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비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렇게까지 달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 결국 선택지에서 빠지게 된다. 그래서 올해 제마는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하프 기준 6만 원 정도가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만약 그 이상이 부담된다면, 차라리 경품을 없애고 참가비를 올리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코스는 반환점 없이 한 방향으로 쭉 이어지는 코스다. 작년에 참가했던 MBN 서울 마라톤은 광화문 광장에서 출발해 잠실종합운동장까지 달리는 단일 코스였는데, 지루할 틈 없이 꽤 즐겁게 달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이런 코스는 도로 통제 구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컷오프가 타이트해진다는 단점도 있다.
이번에 신청한 궁평항 마라톤은 시기상 다른 대회 선택지가 거의 없어 고민 끝에 신청했다. 같은 코스를 네 번이나 돌아야 하는 구조라, 내가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는지 헷갈릴 것 같기도 하고, 훈련인지 대회인지 애매한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가비가 6만 원이고, 풀코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32.195km라는 거리가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졌다. 다만, 괜히 선두 그룹과 섞여 뛰는 상황만은 생기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고 있다.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어떤 대회에서는 도무지 활용할 수 없을 것 같은 기괴한 색상의 허리색을 주기도 하고, 최근에는 브랜드도 없는 땀복을 사은품으로 준다는 이야기도 봤다.
말이 사은품이지, 결국 참가비에 포함된 비용일 텐데, 비용 절감을 위해 어디선가 재고를 떼어다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실 가장 무난한 건 대회 이름이 적힌 티셔츠나 싱글렛이다. 훈련할 때 입어도 좋고, 잠옷으로 입어도 충분하다. 반면 브랜드조차 없는 제품은 대체로 퀄리티가 아쉬운 경우가 많아, 신청 전에 꼭 확인하는 편이다.
주최·주관사가 어디인지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운영 경험이 부족하거나, 이전 대회에서 악평이 많았다면 같은 시기에 다른 대회가 있는지부터 찾아보게 된다.
급수, 동선, 화장실, 출발·도착 관리 같은 기본적인 운영이 흔들리면, 아무리 좋은 코스라도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되기 어렵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다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다면 주차라도 수월해야 한다. 특히 날이 추울수록 차는 그 자체로 훌륭한 대기 공간이 된다.
사람은 많은데 대기할 곳은 부족하고, 바람까지 불어오면 출발 전 컨디션 관리가 정말 힘들어진다. 여기에 화장실까지 부족하다면, 출발 전 화장실이 필수인 나에게는 꽤 고된 대회가 된다.
몇 번 대회를 나가다 보니, 완주 메달이 서재 한쪽에 트로피처럼 걸려 있다. 그래서 이왕이면 예쁜 메달이 좋다.
3.1절에 열리는 어떤 대회의 경우, 너무 대놓고 태극 문양을 사용해 촌스럽다는 인상을 받아 신청하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완주는 기억으로 남지만, 메달은 그 기억을 꺼내보는 물건이니까.
낭만 러너 심진석 선수는 마라톤이 취미이지만 거의 매주 대회에 나간다고 한다. 그 열정은 존경스럽지만, 나에게는 쉽지 않은 방식이다.
나이가 들수록 회복력은 확실히 느려지고, 길게 달린 뒤에는 반드시 휴식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나는 대회 간격을 최소 두 달 이상 두려고 한다. 비용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으니, 자주 나갈 수 없는 만큼 한 번 한 번을 더 신중하게 고르게 된다.
사실 유명한 대회는 대체로 평타 이상은 한다. 문제는 신청이 어렵다는 점뿐이다.
그래도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춘천 마라톤만큼은 꼭 한 번 신청해 볼 수 있기를, 조용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