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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누가 전화로 영어공부해?

by 구르미


확실히 예전과 영어 공부하는 방법이 바뀐 것을 실감한다.

예전에는 영문법 책을 보고, 영자 신문을 읽고, 학원에 가서 배웠었지만

요즘은 유튜브에 넘쳐나는 영어 강좌를 보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GPT와 대화한다.


그런 면에서 전화영어는 유행상 한물 간 플랫폼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화상도 아니고 전화 영어를 한다고 뭐가 늘겠어? 라며 무시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회사에서 지원해 준다길래 주 2회 각 20분 세션을 수강해 보았다.



시작


첫 선생님은 미국에 거주하는 남자였는데, 사실 좀 별로였다. 성의가 없다고 하는 게 맞았다.

"How was your day?" 매번 이 질문으로 시작해서 내가 뭔갈 말하면 영혼 없는 리액션으로, okay, great, awsome을 날려준 후 교재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날 스크립트를 내가 읽었고, 주요 표현을 설명해 주고, 그 표현을 활용해서 말을 해보는 것으로 끝났다. 19분이 되면 타이머를 걸어놨는지 재빠르게 수업을 종료하고 See you agin을 날려주셨다. 첫 달을 해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꼭 내가 전화로 해야 하나?'


스크립트가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녔고, 물론 의무적으로 하게 된다는 장점은 있지만 뭔가 좀 아까웠다. 그래서 내가 한번 고민해 봤다.


'어떻게 하면 전화영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몇 가지 철칙을 정하고 새로운 강사로 변경 후 새로운 달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1. 의미 없는 정해진 문장 읽기는 그만

예문으로 나오는 문장은 수업 전 먼저 읽고 수업 때는 굳이 그걸 읽진 않기로 했다. 내가 발음 교정을 받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걸 읽는다고 5분가량을 쓰는 게 아까웠다. 대신 이렇게 하기 위해선 예습이 중요하다. 먼저 읽어보고 신기한 표현을 찾아보고 그걸 중점적으로 써서 말해보자.


2. 외울만한 Key expression 선별하기

매 단원마다 5개 정도의 Key expression이 나오고 한 달이면 40개다. 과연 이걸 내가 다 외워서 쓸 수 있을까? 아마 한 개라도 잘 기억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화영어 선생님에게 이렇게 물어보기로 했다. "Is this expression commonly used in the States?" 이게 진짜로 잘 쓰이는 것만 고르기 위함이었다. 마치 예전에 유행했던, '우선순위 영단어'처럼. '이 말은 진짜 많이 쓰는 말이야'라는 것은 외워두고, '이건 나도 처음 듣는데?' 하는 건 과감히 넘어가자.


3. 표현의 근원(origin) 궁금해하기

중급 이상의 난이도에서는 보도 듣지도 못한 표현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그 표현을 그냥 단순히 외운다고 하면 나중에 써먹기도 어렵고, 생뚱맞은 상황에서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단순히 표현과 그 뜻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을 함께 물어보기로 했다.

예를 들면, 'Land on your feet'이란 표현은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다'란 뜻인데, 왜....? 저 뜻이지? 란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Why that expression means like that? Can you explain in detail? Do you know where it comes from?" 이런 식으로 물을 수 있다.

실제로 'Land on your feet'은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리를 펴고 착지하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힘든 상황이지만 잘 극복한 것을 말하는 것이라, 어려운 일을 잘 헤쳐나간 사람에게, "You did it, you land on your feet!"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 듣기보단 말하기 위주로

전화영어는 철저히 말하기 위주여야 한다. 듣기는 더 좋은 교재가 많다. 뉴스를 들어도 되고, 영어로 된 콘텐츠 들은 무한히 많다. 그런데 말하기는 상대적으로 할만한 플랫폼이 많이 없다. 혼자 AI랑 말해도 되긴 하지만, 사람 수준의 반응은 아니다.

그래서 전화영어에서는 가급적 선생님의 수다는 미리미리 끊어주고, 어떻게든 머릿속에서 할 말을 생각하고 문장으로 끝까지 말해야 한다.


5. 의도적으로 풀버전 문장을 만들어 말하기

만약 내가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면, 굳이 길게 말하지 않고 중요 단어만 강조해서 말하고 필요하다면 바디랭귀지를 써서라도 말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전화영어는 시각이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말로만 해야 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의사소통이 더 불편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이런 제한은 오히려 영어 공부에는 더 알맞은 상황이 된다. 일부러라도 문장을 완벽히 만들어서 말하려고 노력해 보기로 했다. 시제, 단/복수, 동명사/분사 등을 따져서 말해야 유치원 영어에서 졸업할 수 있다. 실제 대화였다면 상대방이 답답해 할 수 있겠지만, 우린 돈을 내고 하는 전화영어이기에, 조금은 답답한 영어를 해보자. 그게 내 영어를 향상시킬 것이다.



다시 시작


강사 변경을 요청 후 새롭게 선정된 선생님은 캘리포니아에 사는 애가 셋 엄마 겸 간호사 준비생이었다. CA 시간으로 새벽 6시에 전화영어를 하고 애들을 돌보고 학교에 가서 간호사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빈번하게 하품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가끔은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나름 즐겁게 수업을 했다.


위에 언급했던 철칙을 지키며, 처음 10분은 그날의 일상을 말하는 small talk, 다음 10분은 그날 교제에서 내가 선정한 idiom을 위주로 설명을 듣고, 그 근원을 같이 이야기하며 미국식 background 관한 대화를 이어갔다. 6개월 정도를 같이 하면서 도움도 많이 됐고, 마치 친구가 된 것처럼 전화가 즐거웠는데, 결국 6개월 후에 다른 선생님으로 변경했다.


그 이유는, '다른 영어'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사실 교제 중심으로 대화하는 게 특별하진 않다. 그리고 피드백도 엄청 상세한 피드백을 얻긴 어렵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을 상대할 테니 일부 기계적일 수밖에 없다. 그걸 이해하기에 그 선생님을 탓하고 싶진 않지만,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며 또 다른 방향으로 말하기/듣기를 늘리고 싶었다. 개인적으론 처음 적응이 조금 귀찮긴 하지만 전화영어를 계속한다면 4~6개월 정도에는 선생님을 변경하는 걸 추천한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변화


그렇게 세 번째 선생님을 만났고, 그 선생님은 바르셀로나에 사는 남편이 미국사람인 영문 전공 여자였다. 또 비슷한 수업이 되겠지 했는데, 이 선생님은 조금 달랐다.


1. 돌발 질문

지금까지 선생님들은 모두 How was your day?라는 말로 주도권을 나에게 넘겨주고 청자 모드로 돌입하던

일이 많았는데, 몇 가지 인사 후 저 선생님은 이걸 물어봤다.

"How do you think about 'SURROGATE'?"

Surrogate?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다른 여자가 대신 수정한 난자를 받아 임신을 해주는 것으로 말하자면 대리모였다. 그게 미국에서는 최근 이슈가 되었고, 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어떻게 어떻게 아는 단어로 말을 만들어 답을 했다.

연예인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던데 유전적으로는 내 아이가 맞긴 하지만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에도 추억이 있으니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면 난 반대한다. 이런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단어도 생소해서 어찌어찌 아는 단어로 새로운 표현을 만들고.. 아주 잔땀 뺐었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나라의 학원 문제에 대해서 말했고, 계엄에 대한 것도 물어봤고,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 문제까지 물어봤다. 매번 듣고 생각은 봤었지만 영어로 말해보지 않을 주제를 물어봤다.

그래서 그에게 물어봤다. "넌 이런 걸 일부러 찾는 거야?" 그의 대답은, "네가 한 번도 영어로 말하지 않았을 것 같은 주제를 일부러 찾아봐. 그럼 네가 매우 당황하겠지. 근데 그렇게 해야 니 언어가 늘어. 대화는 언제 어떤 주제로 할지 모르거든."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런 선생님이 만든 의외성이 전화영어의 또 다른 장점인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한 가지 추가했다.


2. 에세이 쓰기

내가 하는 전화 영어에는 Writing 첨삭 부분이 있었다. 요즘에야 첨삭은 GPT가 너무 잘해줘서 큰 필요가 없었기에 그냥 안 했었는데, 돌발 질문을 받고 대답하다 보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더 떠올랐다. 그래서 돌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에세이처럼 영어로 쭉 작성해 보고, GPT를 활용해 문법을 조금 수정한 후 Writing에 올렸다. 그럼 그 내용에 대해 다음 시간에 또 짧게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더 풍부하게 했다. 내 생각을 글로 써본다는 것이 그것도 영어적으로 쓴다는 것은 영어에 더 다가가기 매우 좋은 수단인 것 같다.



벌써 전화 영어를 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엄청 대단한 것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매주 정해진 시간에 공부를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다. 야근을 하다가도 잠깐 회의실에 들어가 전화 영어를 한 적도 있고, 집에 가는 길에 걸으며 한 적도, 회식 중에 잠깐 나와서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선한 의무감이 내 실력을 더 늘려줬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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