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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저 육아휴직 다녀오겠습니다.

팀장도 육아휴직 가고 싶다.

by 구르미


동민님은 내가 이 팀으로 옮기기 전까지 같이 일했던 적이 없었던 분이었지만, 심리적으로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바로 어린이집 동기였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게는 조리원 동기끼리 동지애, 의리 같은 게 있다고 하던데, 아이의 어린이집 동기도 그와 비슷한 유대감이 있다. 내 회사에 있는 어린이집이었기 때문에 매번 어린이집 등원은 내 몫이었고, 전날 밤 잘 자지 못했던 날이면 아이는 끝없는 짜증을 부리며, 오늘은 어린이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입구에서 난리를 피운다. 아침에 높은 분과 회의라도 있거나 하면 나 역시도 극도의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그냥 아이를 선생님에게 인계만 하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빠 밉다며 대성통곡하는 애를 두고 뒤돌아 서는 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가 뭐 하러 일을 하는 건가 하는 자괴감 마저 들곤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동민님이 왔다. 동민님 아들 서준이는 항상 밝다. 웃으며 오다가 울고 있는 우리 아들을 보고는, 준서야 같이 들어가자. 하고 조금은 어색한 인사를 한다. 같이 놀 생각에 준서도 울음을 그치고 들어간다. 그럴 때마다 난 자연스럽게 커피를 샀고, 동민님은 나에게 귀인이었다. 웃으며 들어가는 준서를 보면 그날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니 커피쯤이야 100잔도 사줄 수 있다.


그랬던 동민님과 같은 팀으로 옮기게 되고 팀장이 되면서 묘한 믿음이 있었다. 동민님은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으로 내가 의지하는 좋은 팀원이었다. 그런데, 그 동민님이 오늘 나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팀장님, 다음 달에 셋째가 태어나서 와이프 혼자서는 케어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 다녀오겠습니다."


그렇다. 동민님은 서준이 다음에 딸을 낳고, 이번에는 아들이 태어난다. 아이가 혼자인 나로서는 참 부러운 조합인데.. 그런데..? 육아휴직?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묻는다.


"아, 그러게 벌써 그게 다음 달이네. 축하해요. 그런데, 혹시 얼마나 쓸 생각이에요?"

"첫째가 이번에 초등학교 들어가서 첫째 챙기랴 둘째 어린이집 챙기고 하다 보면 정신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1년 정도 쓰고 오려고요."

"아, 그래요. 다시 한번 축하하고, 잘 다녀와요. 인수인계 해야 하니 자료 잘 모아서 지혜님한테 잘 인수인계 해주고요. 내가 특별히 휴직 중에는 연락 안 할게~"


동민님이 팀에서 정말 큰 일을 해오고 있었지만, 예전처럼 육아휴직을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세상이고, 어차피 없으면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면 처음이 힘들지 결국은 돌아간다. 고작 한 명이 빠지는 건 그나마 괜찮다. 일은 괜찮은데, 괜히 내 맘이 안 괜찮네.


우리 아들도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시기기에 육아휴직을 쓰는 게 이해는 된다. 거기다가 애가 셋이니.. 근데 왠지 부럽다. 집은 있지만, 이게 내 집인지 은행 집인지 모를 상황이라 매달 날아오는 대출금 알림을 보면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꾼다. 그래도 예전 보단 좋아지긴 했지. 휴직 중에 일할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라에서 돈도 주고, 쓰려고 마음먹으면 초등학생 때까지는 한 명당 2년까지도 쓸 수 있다. 거기에 돌아올 땐 무조건 기존 팀으로 돌아가는 게 원칙이고, 본인이 원치 않는 전배는 불법이다. 그래, 이 정도는 해야지 육아휴직을 쓰지.


근데 팀장 입장에서는 육아휴직은 속세무민이라고 볼 수 있다. 육아휴직 후 돌아와서 다시 팀장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내가 휴직을 하면 새로운 사람이 팀장으로 올 것이고, 휴직한 기간 동안 그 친구는 열심히 여기에 적응하고 성과를 내겠지. 내가 만약 돌아온다고 해도 잘 굴러가고 있는데 굳이 그 사람을 다시 면포직 시키고 날 올려줄 리 없다. 운 좋게 다른 곳에 새로운 팀이 생기거나, 공석이 생긴다면 거기로 갈 수도 있겠지만, 벌써 그 자리를 탐내고 물밑 작업을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에, 믿을 만한 나를 끌어주는 임원이 없다면 복직 후 예전 같은 자리를 꿈같은 이야기이다.


오죽하면 임원의 전제조건이 딩크족이겠는가. 아이를 돌볼 시간이나, 육아휴직 같은 것 없이 전적으로 회사를 위해 충성해야 임원에 경쟁할 수 있는 입장권 정도 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까지 해서 임원을 하고 싶진 않다. 준서랑 같이 했던 시간, 같이 할 시간은 임원 따위 보다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니.


씁쓸한 마음에 민수 팀장을 불렀다.


"민수 팀장, 우리 팀에 동민님 육아휴직 간다더라고."

"아, 그러게. 셋째라고 했지? 좋을 때네, 우리가 신입일 땐 육아휴직은 생각도 못했는데."

"그럼 지금은 생각하냐? 금수저 아니면 못하는 거 아냐?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가야 하는데."

"그렇지. 난 외벌이라 더 생각도 못해. 이번에 중학교 가는데 이젠 더 못 보겠네."

"그나마 넌 일찍 결혼해서 벌써 중학생이구나. 준서는 이제 초등학생인데."

"그러나 저러나 애랑 친해지기 어려운 건 똑같아 ㅋㅋ 아, 너 예전에 옆팀에 있었던 상철님 기억해?"

"아, 그 쌍둥이 아빠? 육아휴직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안 보이네. 육휴 후에 이직했나?"

"아니, 아직 육아휴직 가있어. 올해가 4년째. 완전 풀로 채워서 쓸 건가 봐."

"와, 그게 가능해? 그분 금수저였나?"

"아니, 아예 캐나다로 갔다더라고. 육아휴직 하고 이민처럼 간 거지. 그분 형수님이 음악 전공해서, 거기에서 교민들한테 음악 가르치면서 생활한다더라고. 상철님은 아이들 픽업해 주고. 캐나다엔 그런 게 없었어서 엄청 인기라더라고. 애들도 완전히 캐나다 사람 다 됐고."

"와, 부럽다. 근데 차마 그걸 한다고 그 도전을 할 자신이 없다."

"아무나 하면 다 하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해야지. 버티면서 돈 버는 거."

"그러게, 잘 버티고, 이따 순댓국에 소주나 한잔 하자."

"안돼, 오늘은 아이가 치킨 사서 오라고 해서, 오늘도 안 지키면 난 그냥 집에서 쫓아낸다고 했어."

"그래, 내가 널 재워줄 순 없으니 다음에 보자."

"그래, 너도 일찍 가서 준서랑 놀아줘~"


어느 순간 Work & Life balance가 아니라 Work & Son balance가 된 것 같다. 일도 잘해야 하는데, 아들과도 잘 지내야 하고. 흔하게 보는 유학을 보내지도 않았지만 기러기 아빠처럼 안되려면 일처럼 아들과도 더 노력해야겠지. 오늘은 뭐 하고 놀아줘야 할까? 그나마 공룡이나 로봇 놀이는 졸업하고 조금은 더 고차원적인 놀이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은 같이 축구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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