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을 감도는 적막한 분위기, 과연 우린 속마음을 말할 수 있을까?
예전에 외국인 팀장 밑에서 일할 때에는 '1on1'이라는 이름으로 적어도 분기에 한 번은 팀장과 일대일 면담을 했다. 일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팀장이 지켜본 나의 보완점은 무엇인지, 커리어 측면에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할지 등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흔한 K-직장인에게는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나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다니’ 싶은 감동이랄까.
그 팀장을 떠나 다른 팀으로 옮긴 후에는 일대일 면담은커녕 팀장과 말을 나눌 기회도 거의 없었다. 너무 바쁘기도 했고, 그나마 일대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건 가끔 번개처럼 잡히는 저녁 술자리였다. 늦게까지 일하던 서넛이 모여 사는 얘기, 회사 욕, 아이 얘기, 재테크 얘기나 하던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자리에선 "우리가 남이가"라는 암묵적 룰 속에서 "내가 너 신경 쓰는 거 알지?"라는 뉘앙스를 주고받는 식이었다. 커리어나 고민 같은 주제는 '싸나이'로서 절대 꺼내선 안 되는 금기였다. 능글맞게 고민이라니, 싸나이가 그 정도는 버텨야지. 회사에 충성해야지. '너'라는 건 회사에 없어. 그런 군대식 마인드에 찌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관리자가 되고 나니 부서원들과는 주간회의도 하고 티타임도 하지만, 일대일로 얘기하는 기회를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괜히 단둘이 회의실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하면 “누가 퇴사하나 보다” 같은 소문이 돌기 십상이니까. 실제로 힘들어 못 버티는 상황이 아니면, 조용히 참고 일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난 팀원들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었다. 술 한 잔 기운에 기대지 않고, 맨 정신으로 그들의 고민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시간이 좋았고, 해보고 싶었으니까. 나는 그런 걸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팀원들에게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더 이상 내 커리어를 뭔가 새로 개발하긴 어렵지만, 그들은 아직 가능성이 많지 않은가. 조금은 아빠 같은 마음이랄까.
팀원들에게 다음 주에 1인당 30분씩 일대일 면담을 하겠다고 공지하고 일정을 쭉 잡아보니 순식간에 며칠이 사라졌다. “아… 이건 야근 예약이구나.” 한숨이 나왔지만, 이왕 시간 쓰는 거 잘 써보자 싶어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최근 읽은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는 책에서는 인간관계에서는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길 원한다고. 듣는다는 건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들기보다는 함께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 태도가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관계를 돈독히 만든다. 면담에서는 내가 ‘을’이라는 마음으로 임하기로 했다. 회의 때는 내가 할 말이 많지만, 이 시간만큼은 오롯이 그들의 시간이다.
연초에 평가 방향을 공유하면서 루틴한 업무 외에도 특별히 해보고 싶은 일을 고민해 보자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연말에 갑자기 “그때 이야기한 거 정리해 주세요, 평가에 반영하겠습니다”라고 하면 100% 벼락치기 성과만 나온다. 그래서 이번 면담에서는 “지금까지 어떤 특별한 업무를 구상했고, 현재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를 설명해 달라”라고 사전에 안내했다. 아직 아무도 별도로 보고한 사람은 없지만, 대부분 면담을 앞두고 부랴부랴 준비할 거라 예상된다.
회사에는 참 다양한 유형의 사람이 있다. 관리자의 눈으로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배우려는 의욕이 강한 사람'과 '성공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 배우려는 열의가 없는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기회를 줘도 반응이 없다. 반대로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은 더 높은 자리에 갈 수 있는 방법에 눈을 반짝인다. 그래서 난 평소 팀원들과의 대화 속에서 들은 말들을 바탕으로, 각자에게 어울리는 이야깃거리를 준비했다. 나중에 “팀장이 무슨 얘기하더라?”며 서로 얘기할 텐데, 다 똑같은 말을 들었다면 실망하겠지. ‘어차피 복붙이잖아.’ 그런 말을 듣지 않도록 여러 레퍼토리를 준비했다.
첫 타자는 요즘 얼굴 표정이 가장 어두워 보였던 민수님이었다.
“팀장님, 제가 회사 생활을 8년 정도 했는데 이렇게 1:1 면담은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항상 해야지 마음만 먹다가 너무 늦었죠. 민수님, 이 시간은 오롯이 민수님을 위한 시간이에요. 요즘 힘들거나 고민되는 일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간단한 인사로 시작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일은 괜찮습니다. 휴가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고, 업무 관련해서 팀장님께서 방향을 자주 잡아주시는 것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은 결혼 준비 때문에 필수 업무 위주로만 일하게 된 것 같습니다.”
“민수님이 우리 팀 온 지도 벌써 2년쯤 됐죠? 전엔 설비 운용팀에 계셨고.”
“네, 중간에 환경팀도 있었고요. 이제는 제 전공보다 타 부서 경험이 더 길어졌네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인지 헷갈립니다.”
“그럴 수 있죠. 민수님도 타 회사 같으면 과장급인데, 어느 순간 그냥 주어진 일을 하게 되다 보면 내가 뭘 잘하는지 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가끔 자신을 '이적시장에 나온 선수'라고 가정해 보라고 해요. 과연 민수님은 시장에서 매력적인 선수일까?”
“글쎄요… 매력은 별로 없는 선수 같은데요. 뭐랄까, 그냥 여기서 계속 뛰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저는 ‘회사에 종속되는 삶’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사는 민수님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아요. 지금은 잘 나가는 회사라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세상이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훈련이 필요해요. 가령, 지금 이직을 고려한다면 어떤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은지, 어떤 경쟁력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셨나요?”
“신사업 쪽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방향을 정리해서 의사결정에 기여할 수 있는 일요. 근데 지금은 그쪽 일을 맡을 기회가 없죠.”
“그 일 자체를 맡는 게 꼭 전부는 아니에요. 우리 센터에서도 신사업 관련 자료는 공유되고 있으니, 이미 나온 자료들을 읽어보며 내가 만든다고 생각하고 분석해 보는 연습부터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호기심을 갖고 그 자료가 왜 그렇게 구성됐는지, 내가 유사한 자료를 만든다면 어떤 정보를 수집하고 어떤 구조로 정리할지를 고민하면서요.”
말을 하면서 나 자신도 놀랐다. 사실 생각해 둔 멘트가 아니었는데, 말하다 보니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꽤 그럴듯했다. 회사의 장점 중 하나는 내부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작성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노력 여하에 따라 자료를 공부하고 재구성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실제로 그 업무를 하지 않았더라도 자신만의 ‘커리어’로 만들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집요하게 해 보느냐’다.
그리고 민수님에게는 이렇게 제안했다.
"요즘 핫한 AI 관련 신사업을 해본다고 가정하고 기존 사업개발의 보고서를 중심으로 제안서를 한번 만들어 보세요. 수요를 어떻게 예측하고, 경쟁사 등 공급은 어떤 상황이고, 수익 모델은 어떻게 될지. 어차피 사업개발팀으로 간다고 해도 기존 보고서를 참고해서 만들 테니 이렇게 시작해 봅시다. 어차피 그 팀에 민수님 동기들도 있죠?"
"네, 친한 동기가 거기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해도 될까요? 일도 많은데.."
"당연히 일이 먼저죠. 대신 이건 민수님이 시간을 내서 해보세요. 억지로 시키고 싶진 않아요. 제 입장에서 우리 팀에 도움 될 일은 아니니까요. 대신 민수님에게는 도움이 될 일일 거라고 자신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업무 끝내고 시간 내서 꼭 해보고 보여드리겠습니다."
이후 민수님이 맡고 있는 업무 중 미진한 부분을 점검하고, 특별 업무에 대해선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예정된 30분을 훌쩍 넘겨 45분이 지났지만, 다행히 다음 면담까지 30분 간격을 비워둔 덕에 여유 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면담 후 이야기했던 핵심 내용을 메모장에 정리해 두었다. 이 메모는 다음 면담 때 아주 중요한 마중물이 된다. “그때 이런 얘기하셨었죠?”라는 한마디에, 팀원은 “팀장님이 날 기억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수님은 전형적인 ‘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다. 공채 출신에게서 자주 보이는 유형인데, 맡은 일은 충실히 하지만, 그 외 영역엔 잘 벗어나지 않는다. 회사 입장에선 고마운 인재지만, 전체로 보면 다소 아쉽다. 너무 평범한 구성원은 결국 조직에도 특별한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수님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피드백을 줄 생각이다.
이번 면담의 주인공은 우리 팀 막내인 유진님이었다. 입사 2년 차지만 일머리가 빠르고 실행력이 좋은 편이라, 처음엔 기대 이상으로 많은 일을 맡겼다. 그런데 요즘은 뭔가 주저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주어진 일은 해내지만, 새롭게 제안하거나 도전하려는 의지가 예전보다 줄어든 느낌이었다.
“유진님, 요즘은 어때요? 일하면서 답답하거나 막히는 부분은 없어요?”
“음... 그런 건 없어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요즘 약간 무기력하달까요.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데,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예상했던 대로였다. 성과도 있고 피드백도 긍정적인데, 막상 ‘다음 스텝’을 그리지 못하는 상태.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이런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늘 잘해왔기 때문에 딱히 혼난 적도 없고, 그래서 멈춰 있는 이유를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유진님은 일 잘해요. 그런 분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게 있어요. ‘나는 일은 잘하는데 왜 방향이 없을까?’라는 생각에 빠지는 거예요.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목표가 흐릿한 상태거든요. 요즘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상이 있어요?”
“사실… 정확히는 없어요. 전에는 막연히 ‘기획자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기획을 하고 싶은지,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까지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기획은 결국 ‘남이 안 한 걸 먼저 생각해 보고, 설득 가능한 형태로 구성해서 실행까지 끌고 가는’ 일이에요. 그걸 잘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해요. 첫째, 관심. 둘째, 구조화하는 연습. 셋째, 실행력. 관심은 이미 많으니까, 이제 필요한 건 두 번째, 세 번째겠죠.”
나는 이전에 유진님이 작성한 자료 중에서 구조가 아쉬웠던 예시를 하나 꺼내 들었다. 전체 흐름은 나쁘지 않았지만, 핵심 메시지가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아 발표할 때 맥이 끊겼던 자료였다. 유진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시에도 아쉬움을 느꼈다고 했다.
“유진님에게 특별 업무로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요. 지금 진행 중인 A 프로젝트 있죠? 그 사업 검토 자료를 이번엔 제가 아니라 유진님이 먼저 1차 초안을 만들어보면 어때요? 기존 양식도 드리고, 필요하면 틀도 같이 짜드릴게요.”
“어... 해보고 싶어요. 겁은 나는데요, 도전해보고 싶어요.”
막연함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구체적인 과제가 생기면 다시 살아난다. 이 면담의 목적은 바로 그 ‘다음 계단’을 함께 찾아주는 데 있다. 유진님은 도전을 원했지만, 그 도전의 첫 단추를 누가 꿰어줄지는 몰랐다. 그 역할이 관리자의 몫이라면, 그 정도 수고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면담이 끝난 뒤, 유진님은 나가며 조용히 말했다.
“사실 오늘 같은 얘기를 누군가와 해본 게 처음이에요. 팀장님이 제 얘기를 이렇게 오래 들어주실 줄은 몰랐어요.”
나도 그 말을 들으며 다시 다짐했다. 이런 게 당연해져야 팀원들도 나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겠지?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해보자!
하루에 3건씩 하기로 했기에 그날 마지막은 입사 5년 차, 우리 팀의 실무 베테랑인 상우님이었다. 핵심 업무에 강하고, 위기 대응도 빠르다. 다만, 자신이 성과를 낼 수 있는 일만 고르는 성향이 있어, 조직 입장에서는 ‘신뢰는 가지만 맡기기 망설여지는’ 리스크도 있었다. 무엇보다 요즘 들어 '우리 팀의 차기 리더는 누군가요?'라는 눈빛이 자주 느껴졌다.
“팀장님, 요즘 신입들 일 잘 챙기시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저도 이제, 단순히 일만 잘하는 위치는 벗어나고 싶어요. 다음 단계로 가야 하지 않겠어요?”
“맞아요, 상우님은 실무는 탄탄하게 하시니까 그런 고민이 나오는 시점이죠. 그런데 요즘은 ‘그다음 단계’가 단순히 승진이 아니잖아요.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 건가요?”
“사실 요즘 팀장님처럼 프로젝트 오너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판단권도 갖고, 방향도 설계하고요. 저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감 있는 태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래요, 한번 맡아보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상우님은 단 한 번도, 결과가 불확실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에 먼저 손을 든 적이 없었다.
“저도 상우님 역량은 믿어요. 근데 오너십이라는 건… ‘보상이 확정되지 않아도, 조직에 필요한 일이라면 먼저 뛰어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요즘 상우님이 맡은 일들을 보면, 단기 성과 중심으로는 탁월한데, 후배 키우기나 실패할 수 있는 구조 설계는 좀 피하시는 경향이 보여요.”
“음… 그건 좀, 맞는 말씀이네요. 근데 그게 꼭 나쁜 건가요? 저는 ‘일단 성과를 내야 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그 태도, 절대 나쁜 거 아니에요. 다만 ‘성과를 만들 줄 아는 사람’과 ‘사람을 성장시키는 사람’은 커리어 트랙이 달라요. 상우님이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지에 따라, 지금부터 쌓아야 하는 게 달라질 수 있어요.”
나는 최근 우리가 진행 중인 신규 전략안 수립 건을 예로 들었다. 부서 간 협의도 많고, 당장 성과로 환산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몇몇 팀원은 자원했지만, 상우님은 빠르게 거절한 기록이 있었다.
“그때 전략안 TF 왜 안 하셨는지 기억나요?”
“솔직히 말하면… 시간 대비 성과가 잘 안 보일 것 같았어요. 기획 부서가 주도하는 느낌도 있었고요.”
“좋아요. 그 판단이 틀렸다고는 안 해요. 근데 조직은 그 '비효율을 견딘 사람'에게 기회를 줘요. 그게 리더십의 자격 조건이기도 하니까요.”
침묵이 잠시 흘렀다. 나는 말을 이었다.
“다음 분기엔 실험적인 프로젝트 하나가 생길 예정이에요.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조직에 의미 있는 흔적은 남길 수 있는 일이에요. 상우님이 맡아볼 의향 있어요?”
“… 팀장님, 솔직히 말하면 겁나요. 근데, 이번엔 한번 해볼게요. 결과 안 나오면 실망하지 마세요.”
“실망 안 해요. 이번엔 ‘과정’을 보려고요.”
그날 면담의 핵심은 ‘성과와 과정의 균형’을 되짚어주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승진을 원했던 상우님은, 정작 승진을 가능케 하는 밑작업에는 몸을 사리고 있었다. 내가 해준 건, 그 미묘한 지점을 정중히 짚어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면담 말미, 상우님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다음번엔 누가 뭘 안 하려 할 때, 제가 먼저 손 들어볼게요. 어쩌면 그게 시작일 수도 있겠네요.”
사람은 누구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직장인의 삶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물론 ‘월급’이지만, 월급을 포함하는 더 본질적인 개념은 ‘인정’이다. 그 인정은 보상, 평가, 승진, 연봉 인상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문제는 그 ‘인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A를 줄 순 없다. 그렇다고 나머지를 방치하면 팀 전체의 사기는 점점 떨어진다.
하지만 하나는 모두에게 줄 수 있다. 바로 관심이다. 나만 조금 더 고생하면 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관심을 주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고, ‘쓸모 있는 조언’을 건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고 느낀다. 비록 금전적 보상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나는 더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이 얼마나 값싸고도 강력한 당근인가. 밥 사주고 술 사줘 봐야 뱃살만 나온다.
내가 더 많이 알아야 더 좋은 조언도 해줄 수 있기에 앞으로 책도 더 많이 보고 공부도 많이 해봐야겠단 다짐을 하며, 밀린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시스템에 로그인해본다. 아, 퇴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