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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의 은총을 기도하며

한나의 바느질을 묵상하기

by 민들레홀씨
구스타프 클림트, The Three Ages of Woman(1905)


7월이 되었다

한해의 반을 보낸 시점에서

지난 6개월을 돌아보니

이제껏 살아온 인생 중에서

가장 어렵고 내밀한 문제를 마주하고

답을 찾고자 몸부림치며 치열하게 보낸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드러나는 문제들은 표면적인 현상들이었고

뿌리를 찾아 들어가 보니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했단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부족했다 할지라도

자녀를 낳고 양육함에 있어

부모 됨에 대한 올바른 입장이 정리되었어야 했건만

아니, 거창하게 부모 됨 이전에

사람을 대하는 진실되고 진중한 태도가 건강하게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어야 했지만

부모탓 남 탓으로 돌리느라 그러지 못했다


지난 6개월 지나면서

나의 양육에서 변화되고자 노력한 또 하나의 영역은

자녀, 그들을 자유로이 '내려놓는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자녀가 곧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자녀에 대한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했고

자녀의 아픔과 슬픔이 곧 나에게 동일한

아니 더 깊은 상처가 되는 경험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 아프면 나는 병난다

식의 동일화


자녀가 남, 다시 말해 타인이라는 생각이

쉽게 잘 안 든다

이것은 자녀와 나와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는 반증이고

그만큼 자녀도 나에게 제법 의지하고 있다는 말일 텐데

그래서인지 나와 자녀를 분리하는 작업이 아직 어렵다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존재

나와 다른 인격체

이것이 안 되니 건강한 관계가 어려운가 보다


거기에 더해,

태생이 둘째인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위아래 사이에서

내 위치를 재며 계산하며 나의 존재를 인지해왔고

이런 태도가 아이를 키우는 데

고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없다


자녀와 내가 분리되지 못한 채 동일시하는 심리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태도가 만나서

타인의 기준으로 엄마가 아이를 구속하는

불행한 형태가 돼버렸다


내 아이에 맞춘 기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기준이 되면

사는 것이 상 피곤해진다

기준이 수시로 바뀌고 변화에 민감해지고

아이에 대한 평가가 곧 나에 대한 평가가 되므로

엄마는 늘 다그치고 아이는 혼란해진다


이렇게 되면

집이 에너지를 충전하거나 쉬는 공간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맞춤형 훈지'가 되는 것이다

감정 따위는 이 전쟁에서 중요한 게 아닌 게 되고

오로지 효율과 경쟁과 평가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 감정의 동물임이 자명한데

그 명제를 부인하였으므로

결과 또한 거짓됨이 연해지는 것이다


감정을 느끼고 인지하지 못하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게 되고

억눌린 감정은 폭발하거나 혹은 깊이 침전하거나


부모는 아이의 인생을 꼭 쥐고

모두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얼 느끼고 있는지 모른 채

타인의 시선이라는 CCTV에 발이 묶여

이도저도 못하는 불안을 안고 살게 된다



출처 wonkeun5820 네이버블로그

<마더와이즈 지혜>의 6주 차에

자녀와의 관계에 대한 챕터에서

성경의 여러 곳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아기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어머니 사라/불임/아들 이삭

°어머니 리브가/불임/아들 야곱

°어머니 라헬/불임/아들 요셉

°어머니 마노아의 아내/불임/아들 삼손

°어머니 한나/불임/아들 사무엘

°어머니 엘리사벳/불임/아들 요한


나이가 들었거나

젊었으나 태가 닫는 등

불임의 이유는 다양했으나

오래도록 기다리는 자녀를 갖지 못한 어머니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태를 열 잉태한

이삭 야곱 요셉 삼손 사무엘 요한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처녀의 몸에서 잉태된 예수까지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도 예언을 통해 아이를 낳으면

부모 자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불임이었기에

생명을 잉태하는 순간 되려

아이 인생의 주도권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아이는 내 소유의 아이가 아니다

이 아이는 엄마인 내가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다

나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 뿐

이 아이의 인생은 그분이 이끌어 가신다



그릇을 만든 토기장이가 자신의 그릇을 가장 잘 알듯이

인간을 만든 신이기에

인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성애가 탑재된 엄마에게 아이를 내려놓는 일이

그분이 인간 역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함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는 것을 그 누가 알 수 있었으랴


기도하는 어머니로 준비시키고

불임을 뛰어넘어 생명을 잉태하고

자녀를 자신의 소유가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는 것

자녀의 미래는 창조의 순간 뿌리신 이의 씨앗대로

역사하는 것이라는 믿음


흑암에서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반짝이는 빛과 같이 이 아이를 계획하셨고

나를 통해 태어나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신 것

어쩌면 나는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그분께 자녀의 인생을 맡기며

묵묵히 기도하는 중보자여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출처 wonkeun5820 네이버블로그


한나의 일상을 그려본다


불임의 한나는 기도로 아들 사무엘을 얻었으나

사무엘이 3세가 되자 제사장의 집에 맡기며

금쪽같은 아들을 놓아주었다

한참 이쁜 나이 3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보내고

한나의 일상은 어떠했을까


[삼상 2:19, 개역한글]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한나는 매년 아들 사무엘에게

겉옷, 제사장이 될 아들의 제복과 같은 겉옷을

손수 만들어 입혔다

매년 쑥쑥 커가는 아들을 생각하며

올해 내가 만날 때는 아마 이 정도 자라 있겠지

내년 만나기 전까지는 이만큼 자라겠지 생각하며

하루하루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며 느꼈을

애틋함과 애정과 사랑

그리고 기도와 눈물이 그려진다

단 하루도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으리라




남이 보기에 그럴듯한 자녀로 키우는 것이 아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아이의 고유한 성품과 은사대로 자라기를

그 길을 축복하며 기도하는 엄마가 되기를

진심을 담아 기도해본다


내가 낳았으니 내 소유라는

오만하고 부끄러운 엄마가 아닌

나를 통해 세상에 나왔으나

너는 너의 빛으로 너의 삶을 자유롭게 살기를

감정의 잣대로 마구 흔들리는 내 힘이 아닌

그분의 은총으로 너를 내려놓음으로써

조금 더 성숙하는 엄마가 되기를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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