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솔직하고 좀더 진지한 자기성찰이 필요해 보이니
나는 어떻게 말하는지
다시한번 깊숙이 들여다보자
내가 말하는 방식은
한마디로
무뇌아식의 말하기였다
뇌에 다다르기 전에 입으로 출력되는 무뇌
지식인이 되기 위하여 노력을 해왔던 것 같은데
말의 영역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다소 감정적이며
생각보다 말이 먼저 되는
어른스런 목소리와 말투로 포장하였지만
성숙 앞에서 멈춰버린 사회 초년생 티를 갓 벗은
대리 정도
조금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받아들이자
내 말이 문제라면 말을 바꾸면 되지
일단 빨리 바꾸자
하는 다소 즉흥적인 답을 내고 나니
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이 정답일지언정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말이라고 하는 것의
습관의 뿌리가 어찌나 깊은지
조급한 마음에 하는 발연기의 부끄러움은
하는 사람 듣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의 것이었다
하는 나도 어색하고
듣는 아이들도 어색해하고
고요하고 나른한 주말 아침에
요란한 파티복을 입고
폭죽을 터뜨리며 잠에서 깬 아이들을 맞이하는
삐에로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 왜그래요 갑자기
그냥 원래대로 해도 돼요
이걸 내가 계속 할 수 있을까
이게 맞는 방법일까
너무 조급했나
진심을 전하기는커녕 웃음거리만 되지 않을까
하아 어찌하나
시끄럽고 어지러운 마음탓에
조금씩 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식사준비에 한창이다 뒤돌아보면
둘째의 저지레 한바탕
첫째의 알 수 없는 동생 비꼬기
첫째와 둘째의 끝도 없는 말꼬리잡기
티격태격 보기싫은 다툼
밥 먹기 싫어하는 느적대는 행동들
아직도 자리잡지 못한 기본적인 생활습관들
그런 일상의 모든 순간
한숨으로 시작해서
짜증으로 덧입힌 가시돋힌 말로 쏟아내었던
익숙하게 길이난 말보따리들이
단전에서부터 질서정연하게
차례차례
목구멍으로 올라와
대기조를 갖추었는데
그 순간,
멈칫!
...
헙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말 따위는
1도 생각안남
그런데 일단
그래 일단
하지말자
말만, 아니 말이라도 일단 참아보자
모르겠다
일단 아무말도
지금은 하지
말자
말을 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습관을 따라 길들여온 단어와 구문들이
생각을 하지 않고도 시험문제의 답처럼
줄줄줄 누구보다 빨리 정확하게 나올 수 있는데
세포에 새겨지고 장착된 그것들을 참는 것은
피가 거꾸로 솟듯이
말도 안되는 일
불가능 같았다
시작도 기억 안 나는
한 번,
불가능이라 고집했던
두 번,
정말 가능한가 의심했던
세 번
아무생각 말고 일단 멈추자 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세 번 일어났을 때
그때야 비로소
이전에 생각을 거치지 못한
가시돋힌 말을 쏟아 부었던
내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숨을 내뱉는 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겔3:26-27, 개역한글]
26 내가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벙어리 되어 그들의 책망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27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선지자 에스겔은 무려 7년이 넘는 기간동안
벙어리로 지내며
말씀을 전하라고 하실 때에만 말을 할 수 있었다
패역한 이스라엘 족속임에도
선지자 에스겔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책망하지 못하게
그 입을 봉하신 것이다
말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은 결과적으로
너무나 괴롭고 참기힘든 과제였으나
나에게 지난 나를 보여주는 가장 큰소리의 울림이 되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렵기만 한 육아에서
이렇게 시작하는 건가요?하는
아주 작은 희망의 첫걸음이 되었다
<마더와이즈,지혜>의 두번째 주에
전쟁을 맞이한 여호사밧 왕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그것은 여호사밧 왕이 전쟁에서 대승을 이루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성경은 거대한 적의 무리가 코앞에 다가왔을 때
여호사밧이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기도하며
이 전쟁이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인식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문제가 내가 해결해야할 것이 아니라니
그걸 누가 해결해줘
무슨 소리야 내가 못하면 해결 못하는 거지
하는 소리가 내 안에도 살아있음을 고백한다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손아귀의 힘을 바짝 주고 안간힘을 쓰는
안쓰럽게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나
누구에게 터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결도 못하고 제자리를 돌거면서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내는 줄 모르고
문제가 나에게 속한 것이라고 할 때
해결되지 못한다
해결될 문제였다면 애초에 그럴만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놀라 멍하게 주저앉아 손놓고 있는
혹은 온갖 방법 다 써봐도 도저히 안 풀리는
우리의, 나만의, 나의 '그' 문제
그건 이제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내가 연약하기에
이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고백이
그 첫걸음이 아닐까
엄마 도와줘, 혹은 아빠 도와줘
나혼자서 못하겠어 실패할까봐 무서워
이렇게 큰 일 앞에서 아무생각도 안나 도와줘
나보다 나를 잘 아는,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 손내미는
작은 믿음이 그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때 비로소
그래 우리딸 엄마가 도와줄게
힘들 때는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걱정하지마, 엄마가 하는 것 잘보렴
[삼상17:47, 개역한글]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
아직도 엄마 눈에 어린 우리 아들
말을 멈추고 나니
그간 너무 모진 말만 한 게 보이더라
그렇게 시들어가는 너희 마음에
아직은 어떤 따뜻한 물을, 얼마만큼의 다정한 영양제를 줘야할지 모르겠지만
브레이크를 걸어볼게
그리고 우리 같이
조금씩
숨을 쉬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