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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히, 헷,

EP.09 케이던스

by happy daddy

#1. 이동 간의 군기

하나, 둘, 셋, 넷 이게 아니다.

군인은 항상 규율과 제식에 의해 움직임을 갖는다. 이 말의 의미는 곧 내 맘대로 보행하지 못하고 이동 간에도(그것이 구보가 되든, 행진이 되든) 항상 각을 잡고, 군가 혹은 구령에 맞게 진행을 한다. 이것은 군인이 되자마자 논산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반복과 훈련 그리고 시행착오로 이뤄진다. (feat. 될 때까지)


그러면서 항상 오와 열을(쉽게 말해 줄이다. 가로, 세로) 일치시켜 이동한다. 구대별(카투사는 소대 표현대신 구대로 표현을 하고 한 기수당 4개의 구대로 편성되어 있다.) 구대장이 Cadence를 하며 지휘를 하게 된다.

군가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구령을 붙인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처음에는 길게 했다가 점점 짧게 하는 것이 특징이고 중간에 추임새로 하나(하나) 둘 (둘) 셋(셋) 넷(넷) 이렇게 넣어주면 훌륭하다. 그러다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면(?) 군가도 넣어주고, 박수도 쳐가며 이어간다.


그런데 KRTC에서는 이런 식으로 구령을 붙이지 않는다. 지금도 이렇게 구령을 붙이는지 모르지만, 당시는

하,
히,
헷,
하, 히히, 헷 메~
하히 헷 메~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무슨 외계어인지 몰랐다. 미군 케이던스하고도 다른 것 같고 도대체 처음에는 박자를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웬 갑가지 하가 나오고 히가 나오는지 엇박자 스타일인데 처음 평택에서 기차

내려서 버스로 캠프 험프리스 까지 이동할 때도 카투사 교관이 케이던스를 하는데 참 적응 안 됐다.


이 구령에 맞춰 발을 맞추고 가야 하는데 앞서도 말했지만 엇박자기 때문에 발을 맞추는 것도 신경 쓰지 않으면 발이 꼬인다. 이것도 나중에 익숙해지면 무리 없이 발을 맞추지만 지금도 왜 저런 구령을 붙이는지 알 수 없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아시는 분 계시면 덧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이 구령을 구대장도 익혀서 이동시 음률을 붙이는데 아무래도 교관들이 할 때 복식호흡으로 크고 단단한 소리는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교육이 익숙해지고 차츰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우리 몸이 습관에 익숙해질 무렵 동기생들 저마다 이 케이던스를 흉내 내며 연습하고 실제 누가 더 교관처럼 잘 따라 하는지 테스트도 해봤다. 아직은 신분이 교육생이고 자대에 가기 전이라 제약이 많은 상태라 이런 거 하나라도 동기들 하고 재미 삼아 웃으며 서로 코치하고 시간을 보낸 게 지금 생각해도 참 건전(?)한 것 같다. 벌써 30년 전이라, 현재와 비교할 수 없는 분위기지만 라떼는 그랬었다.


#2. 종교생활을 하다.

여기는 교회도 진짜 사회랑 같네

주일에는 각자의 종교 행사 활동을 하는 자유가 보장되어 나는 몇몇 동기들과 함께 교회로 갔다.

그런데 이것도 먼저 순서가 있어 오전에는 미군들이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카투사들이 예배를 드린다.

논산에서는 교회가 굉장히 크고,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그때 당시 초코파이 (롯* 초코파이 말고 오*온 초코파이)를 먹는 재미도 쏠쏠했고 매일 짬밥만 먹다가 주일날 교회에서 주는 간식은 정말 고된 훈련의 오아시스 같았다.


물론 캠프 험프리스 안에 있는 교회에서도 간식을 주고 초코파이 외에 다양하고 많은 간식도 제공이 되었는데 논산에서의 맛이 안 난다. 똑같은 것을 먹어도 그렇고 오히려 더 좋은 것을 먹어도 그렇다. 이미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에 놓이고 논산에서처럼 매일 치열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훈련을 받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나름 짬밥 좀 (아니 짬빵이 맞겠다 빵 먹었으니......) 먹었다고 그런지 아무튼 나 말고 동기들도 그렇게 막 목숨 걸고 달려들지 않았다. (지난 화에서 말했듯이 Canteen에서 간단한 과자 식사 라면 같은 것을 사 먹을 수 있기 때문)


피아노 반주를 못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민간 크리스천을 한 명 섭외를 해서(아마 군종병이 했을 거다) 찬양할 때 반주도 같이 하는데 이것도 논산에서는 조금 다른 분위기이다. 거기는 찬송도 전투적으로 '실로암' (유튜브에서 논산 훈련소 실로암)을 찾아보기 바란다.


예배 후 이 민간인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것이 동기생들은 큰 낙이었다. 지금처럼 휴대폰도 없고 오직 편지로만 왕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배를 마친 후 배럭스에 도착하여 캔틴에 들어 동기들과 함께 라면과 콜라 한 명 마시고 하루를 마감하는 게 큰 낙이었다. 그러면서 다가올 PT 테스트와 영어 시험도 서서히 빡세게 준비할 때가 왔고 결국 그 결과로 나중에 자대 배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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