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동기 4인방
#1. 1st 15th Field Artillery Service Battery
15 포병 1대대 지원포대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본격적인 군생활을 하게 되는 자대로 배치되고 내가 근무할 부대는 미 2사단 內
포병여단이고 15 포병 1대대이다. 15 포병은 당시 M109A1 팔라딘 자주포 155mm (요즘 한참 잘 나가는 K9 자주포와 같은 155mm 구경이다.)로 구성되어 있고 본부포대, A, B, C, 그리고 SVC(Service 약자) 5개 포대로 구성되어 있다.
* 일반적인 군대의 조직 단위는 보병 중심으로 분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사단, 군단, 군 소속으로 확장이 되고 한 개 소대는 대략 30명 기준이고 4개 소대가 모여 중대로 편성되어 4개 중대가 모이면 1개 대대 병력이 약 480명 수준이 된다. 포병은 중대를 포대로 분류하고 본부포대는 육군으로 치면 본부중대가 된다.
지원포대는 정비, 탄약, 식당, 보급 관리가 메인이고 우리 기수 동기 7명이 함께 왔고 본부포대 3명, 지원포대 4명으로 나눴다. 그래도 내가 있는 지원포대에 동기 4명이 함께 왔다는 것은 큰 위안거리이다. 반대로 누군가 고문관이 되면 꼬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바로 실무에 들어가지 못하고 ROKA STAFF 오피스에서 3-4일 정도 교육을 받게 되는데 주로 한국군 정훈교육과 미군과 근무하게 되면서 주의하게 될 점 뭐 그 정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이때는 아침점호도 따로 받지 않고 바로 ROKA STAFF에 가서 교육을 받는데 이게 마지막이라 보면 된다.
ROKA (Republic of Korea Army 대한민국 국인이라는 뜻이다.) STAFF는 한국군 중사 한분이 계시고 대대에 파견 나온 간부로 보면 되고 여단에서는 소령님 한분이 또 계시기도 하다. 카투사들도 결국은 한국군이기 때문에 한국군 인사 복무규정에 따라 징계, 인사, 교육, 정훈 들어가기 때문에 어느 부대에 가도 ROKA STAFF관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는 미군과 더 많은 근무를 하기 때문에 미군 지휘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지만 法적으로는 한국군 소속이라 양쪽 다 규칙과 규례를 잘 따라야 한다. (나중에 더 설명할 기회가 있다.)
15 포병은 자주포 부대로 전투 중심의 부대라 훈련도 많고 (1년에 150여 일은 필드로 나가는 것 같다. 진짜 훈련을 밥먹듯이 한다.) 훈련이 많으니 지원포대도 같이 따라가게 된다. 미 2사단은 비록 보병 사단이지만 그 편제를 보면 기계화여단도 2개나 있고, 포병여단도 배치되어 있어 화력은 일반 보병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당시 KTA에서 교관들이 하신 말씀에 미 2사단 화력이 한국육군 몇 개 기계화 사단과 맞먹는다고 했는데(비하가 아니라 실제 그만큼 미 2사단 화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동두천에 있는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 그리고 의정부 캠프 스탠리 등 한강 이북에 있는 주한미군 전투부대의 규모와 수준은 가히 짐작이 안 갈 정도이다.
첫 사격, 선봉장 포대
15 포병 1대대의 역할은 첫 공격, 선봉장의 역할이다.
'닥공'을 알고 있는가? 닥치고 공격의 의미로 前 최강희 감독이 전북 현대 축구를 이끌 때 공격적인 운영을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고 이것이 유행이 되어 다른 스포츠 게임에서도 표현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근무했었던 15 포병도 닥공이라면 닥공이다.
원래 전쟁의 시작이 포병의 공격으로 시작이 되고 우리 부대도 선제공격을 통해 기선제압, 정확하고 신속한 일제 사역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방어와 반격작전을 수행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 육군에서 가장 최전방에 배치된 부대가 미 2사단이고 그 안에서 포병은 15 포병과 17 포병이 가장 직접적인 지원 포대로 싸워서 이기는 부대가 되기 위해 훈련도 많고 정말 빡세게 그리고 부대 자부심이 대단히 많은 부대였다.
Second to None 세계 최강이라는 (2등은 없다는...) 사단 구호도 무시무시한데
First to Fire 자대 구호도 전쟁의 선봉장 느낌이 강해서 그야말로 다이내믹하고 액티브하다.
전반적으로 전투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프라이드 강해서 그때부터 나는 아, 내 군생활은 편안히 그냥 묻어두고 조용지 지내기는 글렀구나 이미 체념을 하게 되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나대지 말고 조용히 따라가면 중간은 간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그게 통하지 않을 듯했다.
그렇다. 내가 느낀 것 중 하나가 미국인들은 진취적이고, 개방성이 있고, 도전적이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중요한 가치관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뿐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자기주장이 강하고 토론을 수시로 자기 의견을 개진하며 상대방이 나와 다른 의견이 나왔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며 논리로 서로 말하며 나가는 것이 정말 내가 어렸을 때 받은 주입식 교육과는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것은 뭐가 더 좋다, 뭐가 더 훌륭하다 그렇게 나누고 싶지 않다. 문제를 풀어가고 삶을 대하는 방식과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도전을 격려하고 실패를 장려하고 그래서 천재가 만들어지면 그 1% 천재가 전체를 먹여 살리는 선 순환 구조가 되어가는 것 같다.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천재 1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는데 그런 천재를 만드는 인프라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자유와 경쟁 그리고 창의성 아래 날개를 달고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설이 길었는데 어쨌든 그런 문화로 만들어진 미국의 군대로 개방, 도전, 창의 그런 자양분들이 많아 자부심도 개쩔고, 긍정적인 것도 개쩐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많아 미국제일주의 미국우선주의도 많지만 장점을 보고 배우고 단점은 배우지 그냥 넘겨 버리면 된다. 단점만 주목해서 반대하고 목멜 이유가 없다.
이제 막 자대 배치된 신병이었지만 컬처쇼크는 정말 매일 받는 것 같다.
논산에서 군복, 군화를 처음 지급받았을 때 조교가 하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맞는 것을 찾지 말고, 네가 맞추는 것이라고 그렇다 군대는 내가 맞춰가야 하고 여기도 내가 다른 문화에 맞춰가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남은 군생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먹지 않으면 불평과 불만으로 2년을 원망하며 보낼 것 같은데 다행히 나는 지루한 것보다는 새롭고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크기에 잘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회로가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