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pal 5
생각해 보면 네팔 여행기 첫 글 제목이 ‘버킷리스트 (Burket List)’였다. 나는 그 제목에 걸맞게 낭만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까?
어찌 됐건 네팔 여행의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킷리스트에서 이 목록은 삭제해도 될듯하다.
트레킹 4일 차. 드디어 ABC (Annapurna Base Camp)에 도착한 날이다. 해발 3000m을 넘어선 이후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숨은 더 빨리 찼고 MBC (Machhapuchchhre Bass Camp)를 넘으면 금방 도착할 줄 알았던 ABC는 눈에 보이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멀어져 가는 듯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것을 반겨주는 나마스떼 표지판이 있는 곳은 응달이었고 우중충해서 괜히 스산했다. 첫 몇 분은 표지판 뒤에 위치한 안나푸르나 봉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사람들도 너무 많아서 사람 없는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는 건 눈치게임이었고, 히말라야임을 느끼게 해주는 차가운 공기가 그제야 실감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예상과 한참 달랐던 1월의 ABC를 마주했을 땐 탄식이 나왔다고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눈으로 가득 덮여있을 거라는 산은 희끗희끗 새치처럼 얼룩덜룩했고, 눈을 밟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가방 저 깊숙이 박혀있는 아이젠처럼 고이 넣어야만 했다. 더 우스운 건 만년설을 찾아 히말라야를 오르고 내리던 날,
한국에는 폭설이 내렸다는 사실.
내가 사랑하는 두 가지, 테니스와 야구. 호주오픈 로고 핀배지와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 핀배지를 달고 산을 올랐다.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향해 예전만큼 가슴이 뛰진 않았다. 테니스 실력은 더 이상 늘지 않는 것 같고, 야구장엘 가도 예전처럼 설레지 않는다. 익숙해져 버린 걸까. 네팔 여행도 그렇게 기억될까 봐 조바심이 났지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네팔을 그리워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기 때문일까, 여행은 뭐든 좋은 경험이 되는 이유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다.
아마도 ‘낭만’때문이겠지.
어느 한 작가는 ‘굳이 데이’라는 걸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낭만을 찾으려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뒤집어서 생각하면 귀찮지만 하는 일이 낭만. 맞는 말 같다. 네팔여행은 힘들고 고생했던 기억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하고 결국 해냈기에 낭만이 되었다.
나는 또 하나의 낭만을 손에 쥐었다.
얼마 전 요즘 대학생들의 로망은 ‘취업하기’라는 걸 들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신빙성이 있는 말인가 싶었다가도 며칠 뒤, 학기 초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열람실에 꽉 차있는 학생들을 보고 조금은 체감했다. 나의 대학생 때 로망은 ‘동기들과 밤새서 음악 이야기 하기, 7월 14일 프랑스혁명기념일에 에펠탑 앞에서 불꽃놀이 보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살 빼서 민소매 입기’ 정도? 취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음대를 나온 탓일까 현실성은 떨어지는 것들이다. 여전히 지금의 삶과 정 반대의 모습을 동경하며 산다. 여전히 낭만을 쫒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