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병아리들과 맞이한 3월

소설 세라비 주인공들과 함께

by 빛나다온

돌봄 교실의 3월은 시계추가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르게 돌아가는 듯하다. 챙겨야 할 서류와 휘몰아치는 일정 속에서도 항상 신기하게도 머릿속에는 착 달라붙는 것이 있다. 바로 새로 만난 1학년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다. 다른 건 외우기 쉽지 않아 자꾸 깜빡거려도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그 이름이 금세 마음의 지도에 새겨진다.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줄 때마다 낯설어하던 교실에 비로소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매년 아이들을 마주하지만 신기하게도 해마다 그 분위기가 참 다르다. 지금은 의젓해진 2학년 아이들이 작년 이맘때 보여주었던 모습이 듬직함이었다면 올해의 1학년들은 그야말로 햇병아리 그 자체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가 하면 자원봉사자 선생님을 향해 천진난만하게 "이모"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순수한 모습 앞에선 내 마음도 덩달아 맑게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이 햇병아리들과의 본격적인 첫 활동 시간. 나는 아이들 앞에 특별한 선물을 펼쳐 놓았다. 바로 '마봉 드 포레' 작가님께 선물 받은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메모패드들이었다.


https://brunch.co.kr/@narang7942da/180



"자, 여기에 예쁜 그림이 그려진 종이가 있지?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걸 하나씩 골라서 너희들이 그리고 싶은 걸 자유롭게 그려보는 거야! 이 그림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란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아이들은 대부분 공주님 왕자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종이 위에서 아이들만의 마법 같은 상상력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들이 고른 종이는 대부분 '세라비' 메모패드였다. 공주님이 제일 예쁘다고 한다. ㅎ 마치 자신들도 이 아름다운 종이의 주인공이 된 듯 비장한 표정으로 색연필을 쥐었다.

가장 먼저 완성한 그림은 공주님 일러스트 주변을 알록달록한 꽃과 나비로 채워 넣은 아이였다.


빨강, 노랑, 파랑, 연두색의 단순한 조합이지만 공주님을 지켜주는 든든한 정원 같았다.

또 다른 아이는 아예 종이 전체를 알록달록한 무지개색 사선으로 가득 채웠다.


공주님이 사는 세상이 이렇게나 다채롭고 밝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거침없는 손놀림에서 아이의 밝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공주님 일러스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멘토스 마을을 건설한 아이도 있었다.


종이를 찢어 지붕을 만들고 그 위에 연두색, 분홍색, 진분홍색 사탕을 나란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맨 아래에 삐뚤빼뚤하지만 정성스럽게 쓴 멘토스 마을이라는 글자. 세라비는 이 달콤한 마을의 배경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또 다른 종이 위에는 우뚝 솟은 나무 한 그루가 그려졌다. 그런데 이 나무 자세히 보니 커다란 두 눈이 달려 있다. 공주님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듯한 아니 어쩌면 이 교실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듬직하면서도 귀여운 '눈 달린 나무'였다.


엄마. 할머니께 편지를 쓴 학생도 있고


또 다른 아이는 공주님 일러스트 주변을 태극 문양을 연상시키는 빨간색과 파란색 조각들로 채워 넣었다. 마치 우리나라를 지키는 비장한 공주님의 모습을 상상한 걸까? 아니면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의 조합이었을까? 아이들의 상상력은 정말 종잡을 수 없어 더 매력적이다.

남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건 '레이' 메모패드였다. ㅎ

"얘들아! 선생님은 '게로스' 메모패드를 골랐는데 왜 고르지를 않니...ㅎㅎ"

돌봄 교실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이 제법 따뜻해졌다. 이제 아이들도 제법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나 역시 아이들의 속도에 발을 맞춰간다. 마봉 드 포레 님의 아름다운 메모패드는 아이들의 손을 거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비록 삐뚤빼뚤하고 서툴지만 그 안에는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순수한 희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반복되는 학기 초의 풍경이겠지만 나에게는 매년 다른 색깔의 봄이다. 올해는 이 햇병아리들이 어떤 빛깔로 성장해 갈까. 어떤 행운들이 나를 기다릴까. 메모패드 위에 자신만의 세상을 그려나가던 그 진지하고 순수한 눈동자에 내 마음을 비춰보며 다시 노랗게 피어나는 돌봄 교실을 맞이해 본다.

넘 예쁘고 귀여워요. ^^


돌봄교실 아이들 활동지 모음


돌봄교실 봄맞이 환경미화


학교 화단에 핀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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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