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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위로

잔치국수 한 그릇

by 빛나다온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 하나쯤은 있을 테죠?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잔치국수다. 국수도 종류가 참 많지만, 나는 따끈한 잔치국수를 제일 좋아한다. 맑은 멸치국물에 잘 삶아진 면발, 계란지단과 김가루, 갖가지 야채 고명을 얹어 먹는 그 한 그릇. 담백하면서도 속을 데워주는 그 맛은 언제 먹어도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학교 급식에도 한 달에 한 번, 수요일 특식으로 잔치국수가 나온다. 그날만큼은 아이들보다 내가 더 설레는지도 모른다. 배식판 위에 국수 그릇이 놓이는 순간, 속으로 감탄이 튀어나온다.
와~ 잔치국수다!


젓가락을 들고 후루룩 한 입, 또 한 입. 따끈한 국물은 어느새 차가운 속을 부드럽게 데운다. 짧은 점심시간이지만, 그날만큼은 잔치라도 열린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언제 국수 한 그릇 먹여줄 거냐'는 말처럼 국수는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한 의미를 담아왔다. 결혼식에서도 국수를 먹는 풍습은, 긴 면발처럼 신랑신부의 사랑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결혼식 뷔페를 가도 늘 마지막엔 국수 냄비 앞으로 향한다. 작은 냄비에 소담하게 담긴 잔치국수 한 그릇. 모양은 달라도, 그 앞에 서는 순간 나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어릴 적, 엄마가 삶아주신 국수의 맛은 아직도 선명하다. 뒷마당 수돗가에서 헹궈내던 면발, 그릇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


국수 불기 전에 얼른 먹어라.
엄마의 그 말 한마디가 지금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잘게 썬 김장김치나, 갓 담근 겉절이와 함께 먹던 그 시절 국수는 지금 먹는 어떤 국수보다도 깊은 맛이었다.

그 따뜻한 온기를 다시 느끼고 싶어 집에서 자주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내가 만든 잔치국수 ^^


가족들에겐 그저 평범한 한 끼일지 몰라도, 나에겐 엄마의 사랑이 담긴 추억의 한 그릇이다.

커보니 알겠다. '엄마의 맛'이라는 게 단지 요리 솜씨만은 아니었다는 걸. 그건 사랑과 정성이었다. 나도 그런 맛을 낼 수 있을까? 가족들이 날 떠올리면 생각나는 음식의 맛이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예전에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전쟁 같은 대피 상황에서 국수 면이 최고의 비상식량으로 꼽힌다고 했다. 끓인 물이 없어도 찬물에 담가 놓으면 불어서 속을 든든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시간이 지나도 부드럽게 살아나는 면발처럼, 우리의 기억도 따뜻하게 되살아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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