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고 싶은 선생님
요즘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거쳐 온다. 내가 자라던 그 시절엔 어린이집이란 단어조차 낯설었고, 그저 학교에 있는 병설유치원이란 공간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내게는 먼 이야기였다.
형편상 다닐 수 없었던 병설유치원. 원복을 입고 유치원에 다니던 사촌의 모습이 그렇게나 부러웠던 적이 없었다. 유치원은 나와는 동떨어진 세상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1년이 흘러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산수유나무가 많았던 기억도 난다.
솔직히 1학년의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2학년은 조금 다르다. 반장이 되었고, 구구단을 열심히 외웠다, 그리고 너무도 예뻤던 담임선생님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나의 2학년과 6학년을 맡으셨던 터라, 졸업앨범에도 계셨고 성함도 또렷이 기억난다. 수소문 끝에 몇 년 전 연락이 다았고 전화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찾고 싶은 선생님은 따로 계셨다.
지금은 못쓰지만 그때의 나는 글씨를 예쁘게 썼던 모양이다. 칠판 글씨도 또박또박 잘 쓴다고 칭찬을 받았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ㅇㅇ야, 유치원에 가서 내일 알림장 내용을 칠판에 써줄래?" 그때만 해도 분필로 글씨를 썼었다.
2년 전,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유치원을? 내가? 내가 그 문을 열게 될 줄은 몰랐다. 비록 학생이 아니라 칠판 글씨 쓰는 아이로서였지만, 나는 꿈꾸던 세상에 첫 발을 디뎠다.
처음 유치원 문을 열던 날, 짧은 커트 머리에 키가 크시고 피부가 고우신 단정한 모습의 유치원 선생님께서 날 반겨주셨다. 교실 안은 아기자기한 소꿉놀이, 인형들, 교구들이 한가득이었다. 그저 보기만 해도 동화 속의 공간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ㅇㅇ야, 네가 칠판 글씨를 참 예쁘게 쓴다기에, 너희 담임선생님께 부탁드려 봤단다. 혹시 매일 와서 유치원 알림장(가정통신문 같은 안내 사항을 적는 일) 내용을 칠판에 써줄 수 있겠니?"
나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부터 나만의 특별한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는 왜 그 일을 직접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집에 가기 전 매일, 유치원에 들러 칠판에 또박또박 글씨를 적었다. 선생님은 내게 잘 썼다며 칭찬해 주시고, 간식도 챙겨 주셨다. 가끔 시간 여유가 있으면, 혼자 장난감을 만지며 놀기도 했다.
나만의 천국이었다.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림일기를 정성껏 써 내려갔다. 매일의 장면을 그려 넣고 예쁘게 색칠도 하고 나름의 문장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일기장엔 늘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혔고, 그 아래엔 담임선생님의 한 줄 칭찬이 적혀 있었다.
그 짧은 글 한 줄이 그렇게 기뻤고, 더 잘 쓰고 싶다는 마음도 자랐다.
개학 후, 다시 유치원으로 향했다. 익숙한 교실 문을 열자 유치원 선생님께서 반갑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방학 동안 키가 많이 컸구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정말로 부쩍 자란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날 선생님은 말했다.
"2학기부터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단다."
"정말요?"
"그래 아마 다른 선생님이 오실 거야"
나는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졌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나름 정이 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유치원 선생님이 쇼핑백을 주셨다. 쇼핑백안에는 연한 블루색 원피스 한 벌과 빨간 구두 한 켤레가 들어있었다. 그 옷과 구두는 신데렐라 옷 보다 예뻤다. 다섯 남매의 막내였던 나는 늘 물려받은 옷만 입었기에 예쁜 옷과 구두는 내게 그림의 떡 같은 존재였다. 그 선생님은 그런 내 모습을 어쩌면 알아보셨던 걸까?
집에 가서 엄마한테 자랑을 했다.
"엄마! 선생님이 나한테 예쁜 원피스랑 구두를 줬어!"
그날 세상을 다 가진 행복한 아이가 되었다.
그 원피스와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가던 날의 내 모습, 그 옷에서 은은하게 풍기던 새 옷 냄새까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날, 유치원 선생님도
"ㅇㅇ야, 너무 예쁘구나~" 하며 좋아해 주셨다.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에는 따뜻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날의 햇살, 내 걸음걸이, 괜스레 더 예쁘게 걷던 나, 그리고 속으로 몇 번이나 중얼거렸던 말
"나, 진짜 예쁘지 않아?"
그 향기와 기분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잊히질 않는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성함도 모르고, 졸업앨범에도 없는 그분. 어쩌면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어린 시절에 따뜻한 분으로 남아 계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