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과 장작불
매미가 울 때면 산, 들, 강으로 쏘다니며 놀았던 어릴 때 여름이 떠오른다. 특히 여름의 강은 워터파크 못지않은 장소였다.
걸어서 20분이면 닿는 강은 조금 더 내려가면 바다와 만나고, 장마철에 불어난 물이 다리를 삼키곤 했었다. 잔잔한 날이면 물결이 햇빛에 반짝였고 그곳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그리고 그 속엔 나만의 특별한 간식인 민물 뱀장어가 있었다.
“야, 저기 봐! 뱀장어(민물장어)다!”
친구의 외침에 나는 주저 없이 무릎까지 풍덩 들어갔다. 뜨거운 햇볕도, 흠뻑 젖은 치마도 개의치 않았다.
신기하게 뱀은 무서워하면서, 과학실험 시간에 돌봄 교실 아이들이 뱀을 만지듯이, 나도 그땐 뱀처럼 생긴 뱀장어를 잡았나 보다. 미끌거려서 잡기 어려울 땐 양말을 장갑처럼 손에 끼우고 물속을 더듬었다. 양말 속으로 전해지는 꿈틀거림과 힘찬 몸부림 그건 잡아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잡은 뱀장어(민물장어)는 버드나무 가지에 꿰어 메고 돌아왔다. 손끝의 비릿함 버드나무 잎으로 불던 휘파람 소리, 물에 젖은 신발을 신고 집으로 오던 그 모든 것이 여름 공기에 실려 멀리 퍼졌다.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장작불을 피우셨다. 내가 잡은 장어를 보며 웃으신 뒤, 석쇠 위에 올려 소금만 뿌린 후 통째로 구워주셨다. '탁탁' 불꽃이 튀고, '치익' 기름이 떨어질 땐 집안 가득 고소한 냄새가 번졌다. 한입 베어 물면 그 맛은 세상 어떤 간식으로도 대신할 수 없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몸을 움직이고 활동적인 걸 좋아하게 됐다. 수영을 시작으로 에어로빅, 스피닝, 필라테스, 라틴댄스, 셔플댄스를 거쳐 지금은 폴댄스와 플라잉요가까지 하고 있으니까
"체력이 진짜 좋은 거 같아요. 비결이 뭐예요?"
학교 선생님들이 묻곤 한다.
"운동도 있지만...어릴 때 사계절 내내 맞던 강바람과 뜨거운 햇살 아래서 놀았거든요.
그리고 장작불 위에 구워 먹던 뱀장어 덕이 아닐까요?"
"그 귀~한 걸 먹었다고요?"
상대는 눈이 동그래져 신기해한다.
"그땐 귀한 줄도 모르고 자주 먹었죠."
지금도 장어를 먹으면 그 여름이 생각난다. 붉은 노을, 매미와 개구리 소리, 얼굴을 스치던 강바람 그건 배부름보다 먼저 오는 행복이었고, 나를 키운 최고의 보약이었다.
이제 그 강도, 뱀장어도, 장작불도 눈을 감아야만 만날 수 있는 스치는 기억들이다. 그래서 여름이면 늘 궁금해진다.
지금 그 강은 어떻게 변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