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알려준 도시락의 진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인사 다음으로 하는 말은 늘 비슷하다.
"선생님, 점심 언제 먹어요?"
아침을 먹고 왔을 텐데도,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언제나 점심이다. 그만큼 점심시간은 방학중에 누릴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꾹꾹 참아온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집에서 정성껏 싸준 도시락을 꺼낸다. 작년까진 부모 요청에 따라 자부담으로 업체 도시락을 주문했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도시락 사진을 부모님께 찍어 보내드리면 잘 나온다고 반응도 좋았다. 당연히 맛도 있었고 가격대비 훌륭했지만, 아이들은 반 이상을 남기기 일쑤였다. 처음 일주일은 맛있다며 잘 먹었다. 시간이 지나자 숟가락이 점점 무거워졌다. 결국 남는 게 많아졌고, 잔반 처리도 문제였다.
이번 방학에는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해 오도록 운영 방침을 바꾸었다. 부모님들은 아침마다 도시락 때문에 힘드실 테지만 아이들은 왠지 신이 난 듯했다. 아이들 각자의 도시락에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알록달록한 맛있는 반찬들이 곱게 채워져 있었다.
점심을 먹다가 문득 궁금했다.
작년에 업체 도시락을 먹어본 2학년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얘들아, 업체 도시락이랑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랑 뭐가 더 맛있어?"
대답은 이미 예상했지만, 아이들의 솔직한 생각이 듣고 싶었다. 주저하지 않고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당연히 엄마가 싸준 게 더 맛있죠!"
"그렇지? 근데 뭐가 그렇게 맛있어? 업체 도시락도 반찬이 잘 나왔고 깍두기도 따로 주고 국도 나왔잖아!"
그러자 평소 책을 많이 읽고 장래엔 꼭 서울대학교에 가겠다고하는 똑 부러지는 예진(가명)이가 진지하게 말한다.
"일단, 밥이요. 밥이 달라요. 밥이 먼가 더 쫀득하게 맛있고 반찬도 맛있어요. 반찬은 한 개만 싸줘도 맛있어요. 이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그 말에 난 놀라며 '엄마 밥'이 가진 위대하고 위대한 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와~~ 그래? 예진이는 밥맛을 아는구나~" 하고 감탄하자, 시현이랑 다른아이들도 대답한다.
"업체 도시락은 첨엔 맛있는데 자꾸 먹으니 질려요. 엄마밥은 안 질려요"
"엄마 밥은 양반김만 있어도 맛있어요."
"저는 김치만 있어도 꿀맛이에요!"
이에 질세라 시온이도 번쩍 손을 들더니 외쳤다.
"근데 선생님, 친구들이랑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이야~~ 시온이(가명)도 뭘 좀 아는구나!"
비록 임시교실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엄마 도시락이라 더 맛있었던 것도 있다.
난 또 궁금해졌다.
“그럼, 엄마 밥이랑 학교 급식 중에 뭐가 더 맛있어?”
예진이가 먼저 대답했다.
"너무 어려운 거 아니에요? 엄마 밥은 솔직히 맛있죠. 맛있는데 엄마는 해주는 반찬만 딱 해주시잖아요. 급식은 다양하게 나오니까 비교를 하면 안돼요."
건호도(가명) 맞장구치며 자기 생각을 보탰다.
"맞아요. 급식은 매일 메뉴가 바뀌니까 좋아요. 돈가스랑 치킨도 자주 나오고요. 엄마 밥은 김치만 있어도 맛있긴 해요. 그래서 저도 둘 다 비슷해요!"
"그렇지? 그건 선생님한테도 어려운 질문이네."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내 점심 도시락을 챙겨야 했다. 김밥도 싸와서 아이들이랑 나눠먹고 이것저것 챙기려니 나도 아침마다 신경 쓰였다.
오늘은 삶은 달걀 두 개와 과일 샐러드 그리고 직접 만든 검은콩물, 나름 푸짐하다고 생각했는데 앞에 앉은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선생님, 오늘은 왜 밥이 없어요?"
나는 일부로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아~ 선생님은 다이어트 중이라 그렇지~"
예진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한다
“애앵? 선생님이 왜 다이어트를 해요. 전혀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시현이(가명)도 한마디 거든다.
"맞아요. 선생님은 지금도 충분히 예뻐요!”
"어머~~ 정말? 고마워!"
역시 내편인 듬직한 우리 2학년들이다. 예진이(가명)와 시현이(가명)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의 말엔 솔직함이 담겨 있다고 믿고 싶기에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사실 아이들이 건넨 말들은 꾸밈없이 들은 그대로 적은 것이라 나 역시 그 순간을 고스란히 글에 옮기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가족처럼 조금 더 정을 쌓아갔다. 엄마가 싸준 아이들의 도시락에는 밥알 하나에도 엄마의 마음이 배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 밥'은 최고의 맛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말하는 밥맛은 결국 정성과 사랑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따끈따끈한 밥이 든 보온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아이들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을 볼 때면 1등 맛집은 미슐랭이 아니라 바로 '엄마표 밥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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