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아지들은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반려견'이라 부르지만
예전 우리 부부의 어린 시절에만 해도 '애완견'으로 불렸다.
애완견은 -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며 기르는 개를 의미- 한다고 한다.
그 당시 주변엔 애완견을 기르는 집도 흔치 않았고,
우리 남편 역시 코지를 만나기 전까지 집에서 함께 사는 강아지란 존재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시골강아지, 골목에서 어슬렁 거리던 무서운 중, 대형견들이 우리가 생각하던 '개'에 더 가까웠다.
그런 남편이 갑자기 반려견을 들이고 싶다 말했을 때 나는 반대했다.
결혼 전 친정에서 키우던 시츄가 있었고 결혼 후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무척이나 큰 상실감과 슬픔을 느꼈고 더 이상 그런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남편은 내 아픔을 이해해 주지 못했다.
"사랑하는 반려견"이라는 단어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
아닌 듯하면서 하고 싶은 건 기어이 하고 마는 남편과,
우유부단한 내 성격 탓에 끝내 코지를 입양하는 결론에 이르긴 했기에
지금은 반려견을 들여 즐겁게 살고 있지만...
코지를 입양하기 전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하며 이야기했고,
그중 큰 비중이 반려견과 함께 하기 위해 들어가는 많은 금액의 돈에 관한 것이었다.
반려견을 입양하는 데 있어 절대 떼어놓아선 안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프고 늙고 병들면 시골이나 섬에 버린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자식 같던 아이를 어찌 그렇게 매정하게 버릴 수 있을까 싶지만... 세상 사람들 다 내 맘 같지는 않으니.
우리 남편은 계획형 현실주의자다.
나를 만나 그 계획들이 많이 무너지며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게 됐지만...
일단 모든 걸 계획한다.
코지 입양 전, 만약 강아지가 아프면 어쩔 거냐 물으니 남편은 냉혈한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병원비로 500만 원 이상 쓸 계획이 없다."
기가 찬 나는 그런 소리 할 거면 애초에 입양하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가격을 딱 정해놓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 건가.
만약 병원비가 더 든다면 죽으라고 내놓겠다는 걸까?
아닌 듯하면서 하고 싶은 건 기어이 하고 마는 남편과,
우유부단한 내 성격 탓에 우리 집엔 끝내 코지를 입양하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코지를 입양하고 데려온 지 이틀째 되던 날부터 설사와 혈변을 보게 됐고 병원을 찾았다.
징그러운 기생충까지 있어 치료를 하던 날들엔,
밤에 잠을 재울 때마다 팔뚝보다 작은 저 아이가 밤새 어떻게 될까 봐 두려웠다.
냉혈한 같이 말하던 우리 남편도 잠에 들지 못해 뒤척이며
한 시간마다 일어나 코지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나도 남편이 냉혈한이 아니라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을 몰랐다는 것을 확인했고.
병원비 어쩌고 했던 그 사람은 사라지고 지금은 코지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으로 바로 향한다.
코지 컨디션이 안 좋은 걸 먼저 눈치채는 것도 남편인 걸 보면 확실히 냉혈한은 아니라 다행이네.
작년 코지가 7살이던 해였다.
매번 다니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고 항상 다니던 루트로 걸었다.
야트막한 언덕이 있는 잔디밭에서 '뛰뛰'를 하려고 "코지 잡아라!"를 외치자
코지도 신나서 놀이에 동참해 뛰었다.
10걸음도 뛰기 전.
"깨애앵!"
코지가 비명을 질렀다.
예전 밤송이를 밟았을 때 내 지른 소리보다 더 큰 비명소리를 내곤 왼쪽 뒷다리를 접은 채
디디지도 못하고 나에게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가볍지 않은 아이를 우리 둘이 들쳐 안고 집으로 왔지만
조금만 더 지켜보자며 바로 병원을 데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차도는커녕 집에서도 다리를 들곤 잘 걷지 못하는 코지.
심각함을 느낀 우리는 평소에 다니던 동물병원이 아닌 곧장 2차 동물병원을 찾았다.
2차 동물병원은 고난도 진료·첨단 장비로 중증·수술을 맡는 병원이다.
별일 아닐 거라며 우기고 싶었던 코지의 진당명은 -십자인대파열-이었다.
코지가 많이 아파했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코지에게 너무나 미안했지만...
(코지는 내 사과를 받아줄 수 있을까. 내 마음을 알아줄까.)
잠깐 근육이 아픈 걸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었다.
이런저런 내 마음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중 병원비라는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병원비를 무시하지 못했기에 집에서 차도가 생기기를 바란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다.
남편에게 냉혈한이라 해놓고 오히려 내가 말 못 하는 아이를 하루 종일 방치해 놨던 것이다.
수술 방법은 나사를 박는 것과 코지 무릎뼈를 깎고, 돌려서 붙이는 방법이 있다 하셨다.
듣기만 해도 무서운 수술 방법들이지만
아직 팔팔하게 뛸 수 있는 코지를 위해 뼈를 깎고 돌리는 방법으로 결정했다.
(나사를 박는 건, 뛰는 아이들에겐 2년 안에 재수술받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수술받기로 한 날 코지를 굶기고 병원에 맡기고 일주일간 입원을 시키기로
결정했기에 일단 병원에 가지 않고 전화를 기다렸다.
코지는 아직 젊지만 전신마취를 하는 큰 수술이기에
'아무 일도 없이 잘 깨어 날 수 있게 해 주세요'
나도 모르게 빌고 있었다.
(나는 무교다.)
병원 측에선 수술은 잘 끝났지만 코지가 전신마취를 하고 많이 아파 지금은 정신이 없는 것 같다고 했고
우린 수술 당일엔 가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 면회를 가서 만난 코지는... 너무나 안쓰러웠다.
너무 아픈 수술을 했기에 진통제를 주셔서 그런지 우리조차 잘 못 알아보는 눈빛.
그렇게 식탐이 강한 아이가 밥을 안 먹어서 통조림을 줘도 먹지 않는다는 말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커졌다.
조금만 방에 갇혀 저 조그마한 다리에 주삿바늘을 꽂고 무언가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걸
지켜보자니 내 속이 쓰렸다.
일주일 입원시키기로 했지만 당장에 집에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진통제를 맞고 있어야 하기에 이틑날도 입원이었다.
진통제 효과인지 몽롱한 표정으로 우리 근처도 오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코지를 두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떠났다.
코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매일 병원으로 면회를 다녔다.
살면서 강아지 면회를 가게 될 줄이야. 언제 또 이런 일을 겪어 볼까 싶지만
두 번 다신 없어도 될 일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 부부는 코지를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기로 했다.
실외 배변을 하는 코지를 면회 갔을 때 밖으로 잠시 데리고 나가자
얼마나 오래 참았던지 쉼 없이 소변을 누는 아이를 보고,
넥카라를 풀어주자 몇 시간째 물을 한 번도 못 먹었는지 큰 그릇의 물그릇을 싹 비우는 아이를 보고,
배가 고파도 넥카라가 있어 먹지 못해 허겁지겁 먹어치우던 아이를 보고,
엄마랑 아빠만 하염없이 멍 한 눈을 한 채 기다리던 아이를 보곤,
우리 부부는 다음엔 무슨 일이 있어도 입원시켜두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병원에 계신 선생님들께 코지만을 위해 하루에 몇 번씩 실외배변을 시켜달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코지가 밥과 물을 잘 먹을 수 있게 하루에 몇 번이라도 지켜봐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나에겐 아들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밥도 물도 못 얻어먹는,
말 못 하는 코지가 고생했을 것을 생각하니 그들에게 조금은 서운 한 것도 사실이었다.
수술 전 18kg이던 코지는 수술 일주일 후 15.8kg이 되어서 퇴원했다.
그 후로도 코지는 넥카라를 잠깐 벗겨둔 아빠 때문에 수술부위 실밥을 다 물어뜯어놓아서
의료용 스테이플러를 다시 박는 고통을 겪어야 했고, 그때의 트라우마가 컸던 건지
그 이후부터 병원을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스테이플러를 제거할 때는 아픈 게 아닌데도 어찌나 엄살을 부리는지
처치실 바깥에 있는 모든 모든 분들이(나 포함) 놀라서 안쪽을 기웃거릴 만큼 소리를 질러댔다.
의사 선생님이 코지 엄살에 사색이 되어서 진땀을 흘리며 나오시곤 말하셨다.
"전혀 아픈 처치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큰 수술 이후 우리 부부는 코지에게 펫보험을 들어줬다.
한 달 금액이 결코 저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 비싸다고 느낀다.
하지만 코지를 병원에 데려갈 때마다 은연중에 병원비 지출을 계산하며 머뭇거리는
우리 자신이 싫어졌기에,
동물병원 문턱을 조금이라도 낮춰보려는 마음으로 보험을 들게 됐다.
이 세상에 아프다고 버려지는 강아지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안 아프면 더 좋겠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