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반 남았다.
코지의 개인기는 얼마 없다.
흔히 아이들이 다 하는 손, 앉아, 엎드려, 돌아, 짖어, 빵야... 정도인 것 같다.
간식 앞에서 "기다려!"는 아주 잠시 할 수 있고(정말 잠시도 기다린 거라고 쳐준다면)
사실 위의 개인기들도 내 손에 간식이 들려 있어야 그나마 고분고분해 주는 편이다.
코지에게 개인기를 부탁드리면 일단 부탁한 자의 손을 꼭! 확인한다.
간식이 들려있는 게 확인되면 일단 한 번은 냉큼 들어주고,
만약 간식이 없다면 재차 개인기를 부탁드려야 한다.
코지의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아 보이지만 한 번은 들어준다.
만약 간식도 없으면서 두 번 부탁을 하면 "왕! 왕!" 짖으며 마음에
안 드는 티를 팍팍 내곤 들어주긴 한다.
얼마나 화를 잘 내는지.
"왕! 왕왕왕! 왈!(간식도 안 주면서 왜 시켜! 간식 내놔!)"
큰소리로 외치며 억지로 개인기를 해주신다.
아주 그냥 상전이다.
아기 강아지 시절.
"이리 와" 한마디에도 쫄래쫄래 오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부름이 통할 리가 없다.
흰자가 보일 만큼 옆으로 흘겨보곤 오지 않거나 귀를 곤두세우곤 못 들은 척 무시한다.
(아마도) 대한민국 모든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두 단어
"간식" "산책"
코지 역시 두 단어에는 기가 막히게 반응한다.
산책이나 "가자"라는 단어를 까딱 잘못해 실수로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강제 외출행이 시작되고,
간식이라는 단어를 잘못 언급하는 순간,
코지는 강아지가 아닌, '돼지'가 되어 간다.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기가 막히게 좋아하는 단어들을 알아듣는 통에 우리 부부는
우리만의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산책은 그냥 "고아웃(GO OUT)"
간식은 그냥 "스낵"
이라고 대충 영어단어를 섞어 바꿔 부르고,
코지를 지칭할 때는 '음슬롱거'라 부르고 있다.
음슬롱거는 우리 부부가 남아공(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잠시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작은아버지 댁의 정원사 이름이다.
정확한 뜻은 우리도 모르지만
코지라는 이름과 정말 달라 코지가 아예 알아들을 수 없는 이름을 찾다가 나온 이름이다.
코지와 정말 안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아 부를 때마다 내 웃음 버튼인지라
남편이 열심히 불러댔고 그러다 보니 지금은 코지=음슬롱거가 되었다.
다행히 아직은 코지가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 음슬롱거 인지 전혀 눈치도 못 채고 있다.
엄마가 부를 때는 왕자님, 혹은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산책을 다녀오면 발바닥을 닦기 싫어
"으으응!" 하면서도 한발 한발 들어주고,
응가 한 뒤 물티슈를 꺼내 들고 "똥꼬"라는 단어를 꺼내면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의 앉아있는
한쪽 다리에 배를 걸치고 엉덩이를 편하게 닦을 수 있게 기다려준다.
코지는 산책을 자주 가는 공원 주차장에 차가 도착할 때쯤이면 항상 우렁차게 짖어댔다.
헛짓음이 심함 웰시코기 인지라 그런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코지와 함께 한지 얼마 지났을 때 도대체 왜 공원 주창장에 들어가는 오른쪽 깜빡이만
켜면 짖는 것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그 맘 때쯤, 마침 강아지 언어를 해석해 준다는 기계가 내 손안에 들어왔다.
남편은 그런 게 될 리가 없다며 믿지 않았지만,
반신반의하며 사용해 봤더니...
화면엔 놀랍게도 이런 문구가 떠 있었다.
"너무 신나! 신나!"
(세상에! 이게 정말 코지의 마음일까?)
친정에서 키웠던 시츄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에,
강아지들이 화가 났거나 위협을 느꼈을 때만 짖는 줄 알았던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강아지들이 너무 신나서 짖을 수도 있구나.
나 또한 강아지들에 대해, 코지에 대해 너무 몰랐다.
코지는 지금도 오랜만에 보거나 낮선분들과 인사하면 더 만져달라.
더 아는 척해달라고 짖기도 한다.
차를 타고 외출을 하던 어느 날.
낯선 길을 가던 때 남편이 말했다.
"코지가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목적지-라는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
"에이. 설마..."
나는 믿지 못했다. 설마 무슨 강아지가 네비가 말하는 목적지를 알아들을 리가.
목적지에 도착해 가자 네비에선
"700m 앞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라는 멘트가 나왔고 코지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짖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우린 코지를 차에 잠시 두고 볼일을 본 적들이 있었는데 코지는
자신이 차에 있으니 데리고 내리라고 어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혹은 놀러 왔다 생각하고 "신난다"라고 외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코지는 지금도 여전히 '목적지'를 알아듣곤 짖는 아이라
우리는 항상 목적지 1km 정도 전에는 네비를 종료하거나 음소거를 이용해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다.
내 귀는 소중하니까.
코지 탄생 8년이 되어간다.
코지는 그 세월만큼 우리의 언어를 알아듣고
마음을 알아주고
행동을 읽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내가 코지에 대해서 알아가는 동안 코지도 우리를 그렇게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반 사람이 다 된 느낌...
그래서 이젠 코지를 그저 "개"로만 대할 수 없는 것 같다.
"코지 너! 사실 내 말 다 알아듣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