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골프장 비수기와 나의 '제로(Zero)' 소득

일하지 않는 자 무일푼이리라.

by 서코지


1월.

골프장 비수기가 다가왔다.


골프는 12월부터 2월까지가 가장 비수기 시즌이다.


야외에서,

그것도 산을 깎아 만든 골프장이

거의 대부분인 한국에선

추운 겨울 꽁꽁 얼어붙은 산속에서 딱딱한 공을 치긴 힘들어지는 시기다.


골프장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겨울에 꽤 긴 휴장을 가진다.


골프장 문을 닫고 아예 영업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또다시 소득이 없는 비수기가 찾아왔다.



직장인들은 그런 우리에게

'부럽다' 말한다.

약 2달간의 휴가가 주어지니까.

하지만 다양한 사연이 있듯이

비수기를 마냥 반가워 할 수 없는 캐디들도 있다.



"일하지 않는 자 무일푼이리라."




우리나라 골프장들 중 휴장이 있는 곳 보다

없는 곳이 더 많다.


일단 남쪽에 있는 골프장들은 상대적으로 더 따뜻한 기후를 가졌고 눈도 거의 오지 않으니

휴장 하는 곳이 없을 것이고,


내가 있는 경기도만 해도 겨울영업하는 곳이 꽤 있다.


휴장을 하더라도 짧게 2주 정도 하는 골프장도 있다.



내가 근무 중인 곳은 그래도 나름 캐디들의 복지에 힘써주려는 곳인지라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겨울 휴장비를 지원해 준다.


당연히 전혀 지원해주지 않는 골프장들도 있고

더 많은 지원금을 주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엔 수백 개의 골프장들이 있는지라

골프장에서 정한 룰에 따라 돌아가는 시스템은

서로가 무척 다양하다.


아무튼 우리 역시 휴장비 조금 지원해 주는 정도고

그것을 제외하면

일용직인 우리의 수입은 무일푼이 되어 버리기에

휴장이 시작하면 단기 알바를 하는 캐디들도 꽤 있고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




성수기에 성대결절로 병가라니?


나는 작년 봄

성대에 생긴 폴립과

(성대에 조그맣게 생긴 혹 같은 것이다.)

결절 때문에 수술을 하게 되면서

거의 4달간 일을 못한 채 병가를 신청했다.


심하게 갈라지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 때문에

손님들과 마주하기 힘들고 부끄러웠다.


회사에 병가를 내고 쉬는 동안

역시 나의 소득은 '제로'


고작 5개월 정도밖에 일하지 못한 25년도였다.


"몸관리도 능력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린 시절 운동 할 때부터 들어왔던..

정말 싫어하는 말이다.


그 말도 맞지만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아픈 것도 서러운데 눈치까지 봐야 하니 눈물이 찔끔 나온다.


특히나 내가 목을 많이 혹사한 것도 아닌 듯한데..


라운드를 하며 "굿샷"을 외쳐주고,

큰 소리로 외치며 거리를 불러주고,

위험한 곳으로 가는 공 방향으로 "볼!"을 외쳐주는

일을 한다지만

성대에 결절이 생기고 폴립이 생긴다는 건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노래방에서의 열창으로 인한 혹도 아니기에

조금 의아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렇게 갑자기 생긴 폴립은 나를 갑작스럽게

백수로 만들어 버렸다.


병가를 신청하며 직장에는 죄송하다 고개 조아렸고,

남편에게는 갑자기 생긴 가정의 자금 공백에

미안함이 들었고,

나 자신에게는 답답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캐디는 일을 한 만큼 번다.


이 정직하고 무서운 규칙 앞에서

병가로 인해 쉬어버린 나는

'소득제로'라는

힘든 진실이 다가왔다.



나는 '일을 많이 하지 않는 캐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을 많이 하지 못하는 캐디'라고

반박하고 싶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많이 사용해 버려

닳아버린 무릎 연골이 끝내 견디지 못하고

-퇴행성 관절염-

이라는 병명으로 나타났다.


일을 많이 하면 무릎이 심하게 부어오르고

물이 차올라 지끈거리는 통증이 동반된다.


처음 관절염이 왔던 30대 초반.

약을 먹고 보호대를 차고 일하기를 몇 년...


무릎에 찬 물을 빼고,

주사를 맞으며 일하기를 몇 년...


이대로는 캐디를 그만둬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배운 건 캐디밖에 없는 막막함 앞에서

쉽게 그만둘 수도 없었다.

그 막다른 길 속에서 나는

그냥 일을 조금 줄이고 남은 무릎 연골을

'아껴 쓰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일을 조금 줄이고 어쨌든 캐디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은 게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캐디들은 많으면 하루에 두 번씩 일을 할 수 있다.

(우린 그걸 투 two라고 부른다)


나는 그 두 번을 하지 않고

최대한 하루에 한 번만 하는 쪽으로

일을 줄이는 걸 선택했다.


주머니 사정도 줄고

무릎의 통증도 줄었다.



올해는

그런 나에게 한창 (한 번씩이라도) 일하며

돈 벌어야 하는 시기에

성대 결절까지 나타나서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겨울.

캐디들에겐 '보릿고개'같은 비수기가 왔다.


지금까지 벌어둔 돈으로 알차게 살아야 하는 겨울.

다들 제각각으로 비수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국내외 여행을 다니는 사람,

생활비를 위해 단기 알바를 뛰는 사람,

미뤄뒀던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도 있다.


캐디의 성수기 시즌은

한 달에 4번도 쉬기 힘든

일로 가득한 일의 연속들이다.


그래서 캐디들의

비수기엔 여러 가지 이유로,

미뤄두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몰아서 하게 되는 계절이다.



나는...

길 것 같던 휴장이 곧 끝나고,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은 골프장 성수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대비하고 있다.


아픈 무릎에 주사를 맞고,

성대가 멀쩡하게 버텨주기를 바라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건강을 지키는 것도 나의 몫이라는 말은 싫지만

계속 되새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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