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茶道) 수료증까지 끌어모아 캐디가 되기까지

by 서코지


캐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4살 터울의 큰언니의 추천 때문(??)이었다.


초등부터 고등시절까지 학교에서 운동을 했던 나는

지방에 대학을 졸업하고 딱히 할 일도 능력도 없었다.


체육학과를 나오고 딱히 비전 있는 일이 없는 상태.


나는 이른바 '엘리트 체육'이라 불리는

등록된 선수 생활을 했다.

오직 성적만을 목표로 하는

좁은 세계에 소속되어 학창 시절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내겐 특출 난 소질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실업팀도

(지금은 프로팀. 그 당시는 실업팀) 가지 못했고,

지방의 대학을 졸업하곤

딱히 비전 있는 일을 찾지 못했다.


별다른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알바를 하고 있을 때

언니가 갑자기 캐디를 추천했다.


"내 친구가 경기도에서 캐디를 하고 있어."


"그거 예뻐야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좀... 이상한 인식도 있지 않아?(당시 내 인식)"


"전혀! 지금은 그런 거 없데. 그리고 내 친구도 하나도 안 예쁜데... 한번 알아봐 돈도 괜찮게 번데"



솔직히 말하자면...

2000년 중후반 이라지만 캐디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저 골프장의 라운드를 돌며 경기를 도와주는 그런 경기 도우미가 아닌...


큰언니의 말은

그런 인식은 전혀 없단다.


캐디의 수익금과 일하는 것 등을 친구에게 듣곤

운동해서 피지컬은 좋은 동생에게

나름 운동에 관련된 직종을 알려 준 것이리라.


나 역시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이니

운동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

맞을지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물론 수입적인 면도 계산에 들어갔다.


그리고 캐디라는 직업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도 수료증까지 끌어모았던

나의 힘겨운 취업기


캐디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학벌, 자격증 등을 까다롭게 많은 걸 본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캐디가 될 수 있는지,

접근방법부터 어려웠다.

캐디가 되는 방법을 전혀 알 수 없었다.


큰언니는 그저 캐디라는 직업이 있다고 알려 줬을 뿐

나에겐 다른 어떤 정보도 없었기에

인터넷 서치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지금도 검색창에 -캐디-라는 단어를 치면

여러 교육원들이라는 곳이 먼저 나온다.

나도 처음엔 그런 학원이나 교육원이라는 곳을 통해서만 캐디를 할 수 있는지 알았다.


하지만 웹사이트 '다음' 카페에서

캐디들이 많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았고

몇 날, 며칠이고 그곳을 살펴봤다.


그곳은 거의 전국 캐디들이 가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크기였기에

구인, 구직도 활발히 일어나는 곳이었다.


한참을 뒤적거린 뒤

내가 그 당시 내린 결론은


"돈 내고 학원이나 교육원이라는 곳은

절대로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돈을 내면 교육을 해주고 골프장을 알선해 준다는 명목이 있는 곳이 학원이라는 곳인데


당시의 골프장은 신입캐디를 직접 뽑고

자신들의 골프장에 맞는 교육을

약 두 달간 시킨 후 투입하는 시스템이 많았다.


물론 15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꽤 많이 달라진 거 같기도 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곳 포함.

경기권 주변의 골프장들은 신입을 뽑는 곳이

꽤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캐디 교육이 끝나고

1년 정도의 경력을 쌓은 후, 이직률이 높은 직종이 캐디인 것 같다.


이직률이 높은 특성 때문에

1년만 지나도 남아 있는 신입 캐디들이 많지 않다.


점점 캐디를 하겠다는 신입들도 줄고 있는 추세.

시간과 돈을 투자해 신입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골프장들이 늘고 있는 것 같기도...


15년 전에 비해

요즘의 캐디 지원 연령대가 상당히 높아지고

근무 캐디들의 연령대 또한 엄청 높아진 것도 놀랍다.



아무튼 그 당시 신입교육은 두 달간 이어지기 때문에

골프장이 비수기인 12월에

신입을 많이 뽑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간이 비는 여름 동안 잠실에 있는

놀이동산에서 알바를 하며

다음(Daum)에 있는 카페를 통해 정보를 모아

캐디에 대해 알아갔다.


경상도 출신인 내가 서울에서 알바는 하고 있었지만

경기도 지역명은 들어도

정확히 어디 붙어 있는지 알지도 못 한채

'기숙사 1인실 제공'이라는 조건만 보고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갔다.



웃어줬다고 뽑아줄 의무는 없지만...


이천의 한 골프장,

터미널에 내리자 그날 면접 보러 온 사람들을 태우러 온 셔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내 또래의 사람들이 우르르

차를 타고 이동했다.


골프장은 어디든 꽤나 외곽으로 들어가게 마련이니

사회 초년생들이 차를 가지고 있을 리는 없다는 걸

면접 보는 측에서도 알아서인지

터미널 앞에 그렇게 셔틀이 마중 나와 있는 게

으레 있는 일 같았다.


15년이 넘게 지난 일인지라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면접자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5명씩 면접을 보기 위해 룸에 들어가 순서대로 앉았고 면접이 시작됐다.


캐디를 하겠다는 간절함에

내 이력서는 온갖 자격증을 다 적어둔 잡동사니 같았다.

전공을 살려보려 딴 생활체육 자격증,

그 옆엔 학교 교양 수업을 듣기만 하면 준다던

'다도 수료증'까지 당당히 적어 넣었다.



-생활체육 자격증 (배구)

-배구 심판 자격증

-보육교사 자격증

-심폐소생수료증

-다도(茶道) 수료증(????)



뭐라도 하나 더 적어야

취업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최대한 끌어모은 수료증들이었다.



사회초년 생,

면접이란 건 아르바이트할 때나 봤던 것이 전부인지라

두근거리는 심장이 손바닥에 있는 것 같이 뛰었다.

심장이 나대지 말고 적당히 뛰길 바라며

두 손 꼭 쥔 채 앉았다.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4명의 면접관이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도 했다.

5명의 사람들 중에 나에게 가장 흥미를 보였고

질문을 많이 하기에

속으론 벌써 이 골프장의 캐디가 된 것이라 여겼다.


'이 분위기라면 당연히 내가 합격이겠구나.'


다 같이 면접이 끝나고 다 같이 이동하며

다시 터미널 앞에 내려주는 셔틀 안에서

벌써 옆자리의 면접자들과

혹시 이곳의 동료가 될까 싶어

조잘거리며 대화도 나눴다.



골프장에서는 금방 연락이 왔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나에게 그렇게 질문을 많이 하더니?

그렇게 환하게 웃어주더니?

적당히 물어보기나 하던가.


설레발친 나 자신이 어이없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면접관들의 관심은 그저

'다도 수료증이 있는 체육 전공생'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에 대한 철저한 호기심으로 질문을 던졌을 뿐이라는 걸.

내가 캐디에 적합해서 한 질문들이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내 첫 캐디 면접은 그렇게 허탈한 김칫국 들이키기로 끝이 났다.




그리고 두 번째 간 곳도 경기도의 어딘가.


다행인지 몰라도

그곳에선 합격을 했고 1월 초부터 교육을 시작한다는 연락을 받곤 몇 개 없는 이삿짐을 챙겼다.



그렇게 나는 산골 깊은 골짜기의 찬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캐디교육과 생활이

얼마나 나의 멘털을 뒤흔들지도 모른 채

행복회로만 돌리며 캐디생활에 입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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