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이 고픈 미성숙한 약국 매니저 티나

by 티나

1. 약국 직장 동료들


내가 일하는 약국은 매니저 약사인 나와 스텝 약사인 한 할아버지, 그리고 아주머니 약국 보조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약국 보조원은 싱글맘이었는데 지각이 일상화된 사람이었다. 15분 늦는 것은 기본이었고 어느 날은 한 시간도 늦게 출근했다. 약국 문을 열자마자 나는 혼자서 밀려드는 약국 업무를 모두 떠맡으며 참을 인을 백번, 아니 10만 번쯤 떠올렸다. 업무에 심대한 지장이 올 정도였기 때문에 여러 번 지각 사항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고 경고도 줘보았지만,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이 시골 마을에서 이 사람을 해고하면 나는 더 힘들어질 것이 뻔했다. 그래서 살살 달래도 보았지만 싱글맘으로서 사는 것이 힘들다며 본인의 잘못을 회피하기 일쑤였던 그 직원과는 더 이상 상종하기 싫어서 입을 꾹 다물고 사무적으로만 대하게 되었다.


나의 스탭 약사로 있던 분은 70대의 남자 약사분이셨는데 그전 약국 매니저와 아주 오랜 시간 이 약국에서 일을 해온 분이었다. 동네 사람들을 다 알고 여러 환자들이 존경하는 분이어서 진상 환자가 있을 때 혹은 회사에서 불가능한 지시 사항들을 내릴 때, 여러 가지로 나에게 도움을 주셨다. 약사로서는 일처리가 꼼꼼하지 않으시고 처방전이 잘못 기입되어 환자에게 다르게 전달된 적이 꽤 많으셨지만, 인간적으로는 참 인자하시고 배울 점이 많으신 분이었다. 내가 이 약국에서 2년 정도 일했을 즈음, 이 스탭 약사는 약사 50주년 기념 감사패를 주 약사 협회에서 받으셨다. 내가 선물로 드린 넥타이를 하시고 기념사진을 찍은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배가 아프셔서 며칠을 병가를 내셨고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한 결과 대장암 판정을 받으셨다. 이미 진전이 많이 된 상태였고 다른 장기에도 전이가 되었다고 했다. 결국 약국에서 병가를 내신 지 1달 만에 돌아가셨고 그분의 장례식에 나는 나의 상사와 함께 참석했다. 사람의 한 일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 있다는 것이 한없이 답답해져 왔다. 나도 영주권만 따면 이 힘든 직장에서 빨리 그만두고 더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 때는 이 약사님과 비슷한 병에 걸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나의 상사는 여자 대장부였다. 내가 그분을 만난 건 매니저가 되기 몇 달 전이었다. 그분은 10년 동안 약국 매니저로 일했었다고 했다. 야망에 불타는 신입약사로서 나는 그분을 동경했다. 이전에 만난 다른 상사와는 다르게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성심성의껏 언제든 금방 대답해 주었기 때문이다. 판단력이 매우 뛰어나고 일처리도 꼼꼼해서 나도 그분처럼 일을 잘하고 싶었다. 배울 점이 많은 상사를 만난 것이 감사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분에게 인정받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잠을 줄이며 휴일에 와서 업무를 처리하며 회사에서 하루에 10 통도 넘게 보내는 여러 이메일들에 답장을 하며 일에 푹 빠져 살았다. 미국 리테일 약국에서 예방 주사는 큰 마진이 남는 서비스인지라 나는 회사에서 세우는 예방 접종 목표를 초과 달성하려 노력했다. 나의 노력이 통했는지 결국 꼴찌에서 두 번째였던 약국을 결국 1등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건강한 약국을 만드는데 3년이 걸렸고 나는 훌륭한 상사에게 인정받는 멋진 부하직원이 되는 것만 같았다.


2. 직장 상사에게 인내심의 뚜껑이 열리다


영주권 진행은 큰 장애물 없이 잘 진행되어 가고 회사에서 나름 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나는 상사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폐렴 예방 접종을 집중적으로 신경 쓰라는 이메일이었다. 집중 접종기간이었기에 매일 예방 접종 건수를 보고해야 했다. 회사에 큰 기여를 하는 일이기에 나는 이 예방 접종 건수를 잘 채우려고 애썼다. 어떤 환자들이 폐렴 접종을 받을 대상인지 더 꼼꼼히 살펴보고 더 설득력 있게 얘기해 보며 목표를 달성해 나갔다. 그 무렵 돌아가신 스탭 약사분을 대신하여 약대를 갓 졸업한 신입 약사가 스태프로 오게 되었는데 일이 서툰 신입 약사가 처방전 업무를 빠르게 하지 못하는 바람에 업무도 배로 늘었다. 보통 대부분의 선배 약사들은 배 째라는 마음으로 약국 문을 닫고 나서 밀린 업무들을 처리하지 않고 집에 가곤 했다. 회사에서 우리에게 적절한 대우를 안 해주는데 왜 돈을 주지도 않는 시간에 일을 해주냐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예방 접종 목표도 무시하기 일쑤였다. 어차피 예방 접종 목표에서 1등을 해봤자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피곤하게 업무량을 더 늘리냐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회사에서 시키는 여러 지시 사항과 목표들을 달성하려 부단히 노력해 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존경하는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 같다. 너무 힘들게 목표를 달성하고 있던 그날은 이메일에 환자들이 너무 늘어서 업무가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다음날 아침 와있는 이메일 답장에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약국과 1시간 떨어져 있는 같은 지역 약국의 처방전 수와 비교하면서 너의 약국과 그 약국은 처방전 수는 비슷하지만 너의 약국은 약국 보조원 시간이 몇 시간 더 많지 않으냐며 그 약국은 불평을 안 하는데 너는 왜 불평이냐는 식의 말이었다.


나는 상사에게 이런 식의 대우를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동네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약국과 매 계절마다 관광객이 오고 안 오고에 따라 방문환자 수가 출렁대는 우리 약국은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단순히 숫자만으로 비교를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가 존경하는 상사가 맞나 싶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그 답장에 아무런 이메일도 보내지 않았다.


대신 비교를 당한 그 약국에 전화해서 약국 매니저와 일주일 동안 바꿔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정말 이 약국의 상황이 내가 일하는 약국과 비슷한지 객관적으로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회사에서 교체 근무를 허락받고 그 약국에서 일을 해보니 역시나 내가 옳았다. 약국을 이용하는 환자들이 크게 변동이 없는 안정된 동네의 그 약국에서는 전화 통화도 대부분 간단했고 처방전 업무도 수월했다. 내가 일하는 약국은 휴양지 마을에 있어서 환자도 매번 새로운 환자들의 유입이 많고 전화 통화도 대부분 여러 요청 사항이나 질문이 있어서 긴 편이어서 처방전 수에 비해 업무량이 더 많았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매출이나 숫자 몇 개만으로 비교를 하다니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사과는 사과끼리 비교해야 하는데 사과와 수박을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라는 것인가?


3. 시들해지는 약국 매니저 티나


몇 주 후, 상사가 우리 약국을 방문하던 날 나는 평상시와 다르게 시큰둥했고 나의 태도의 온도 차이를 느낀 상사가 면담을 요청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솔직히 오랫동안 존경해 왔던 당신이기에 더욱더 실망이 아주 큽니다. 단순히 처방전 수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다른 약국과 비교를 하며 내가 그 약국 매니저보다 열등하다고 하셨는데 잘 납득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번에 일주일 동안 그 약국에서 일을 해봤는데 하나도 같은 구석이 없었어요. 일 년 내내 환자 수가 일정하고 업무량이 적은 약국이랑 여름에만 잠깐 환자 수가 늘었다가 겨울이 되면 확 줄어드는 여기랑 천편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목표달성하려고 매일같이 연장근무까지 했는데 이제 이 일을 하는 것이 지쳐갑니다. 내가 마주친 다른 직원들도 힘겨워하고 있어요. 이런데도 당신은 약국의 정상화를 위한 이 수치화할 수 없는 수고를 알아주기는커녕 열등하다고요? 윗선에서 숫자만 찾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환자들한테 행복하게 대할 수 있겠나요? 우리한테 친절은 사치입니다. 내가 왜 이 직업을 택했는지 후회가 많이 됩니다!”


그 말을 내뱉으며 나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그 상사는 크게 놀라며 본인은 나를 열등하게 만들려고 자극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며 안아주려 했다. 나는 그만 가시는 것이 좋겠다고 단호히 말했고 눈물을 추스르며 다시 일을 하러 약국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나의 상사와의 관계는 사무적으로 변했다. 나의 짝사랑이 식었다고 해야 할까? 다른 부서 동료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의 나를 보고 싱글벙글이라고 불렀었는데 어느 날부터 내가 어두워졌다고 하며 괜찮냐고 물었다. 왜 예전처럼 잘 웃지 않냐고. 그렇게 나는 시들어가고 있던 것이다.




이 시절 저는 맡은 일에 책임감을 다해 잘하고 싶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컸던 사회 초년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존경하던 상사가 다른 약국과 비교를 하며 저의 자존심을 깎아버리는 바람에 열정이 사그라들게 되었던 것 같아요. 미성숙한 부하 약사 매니저가 터뜨리는 울분을 들어주신 상사에게 지금은 참 감사한 생각이 들어요. 제가 있는 힘을 다해 일을 해 본 경험은 귀한 기회였음이 틀림없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외부로부터 받는 인정이 중요했던 이유는 어린 시절의 영향이 컸겠지만,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어떻게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제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인지 서툴렀습니다. 하지만 일에 열정이 사라진 후, 우울하고 시들어가는 저의 일상은 고통스러웠습니다. 다음화에서는 저에게 큰 힘이 되어준 한 귀인과의 이야기로 달달하게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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